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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9/13 06:14:13
Name   [익명]
Subject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기력증 같은 걸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 살면서 '하고 싶다' 내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극히 드무네요. 우울증세가 있었을 땐 그 일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우울감이 좋아지고 나서도 여전하고요.

어느 정도냐면 학업도 직업활동도 취미에도 사람간의 교류까지 전부 흥미가 없고, 아니 나아가 왜 세상 사람들이 저런 것들에 몰두하는지 솔직히 납득이 잘 안될 정도라서요.

그렇다고 식충이는 아니고 최소한의 생활비랑 월세를 벌기는 하고 또 거기서 불성실한 것도 아닌데, 그게 이십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아르바이트 이상 가는 의지가 없네요. 정말 드물게 연락이 닿는 옛날 친구들은 벌써 연차가 꽤 쌓인 애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취준생답게 바쁘게 사는 듯한데 그런 걸 보면 자괴감이나 열등감이 들기 앞서 딴 세상 사람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요. 물론 머리로는 걔들이 정상이고 제가 비정상인 걸 알고 있긴 하지만요.

저도 일단 외부에는 공무원 준비하는 걸로 알려져 있긴 한데요, 솔직히 제대로 펴본적도 없고 해야될 이유도 못찾겠어요. 급여는 액수를 떠나 별 유인도 안되고,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조직사회에, 합격의 난이도까지 생각하면 경제성이 너무 떨어져서요. 편의점 알바 8시간하고 집에와서 아무 방해없이 뒹굴대는 지금 상태를 버릴 가치가 있는건지. 안정성이라는 뜬구름 잡는 장점 말고는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저는 생산직에 보다 맞는 거 같긴 합니다. 근데 그건 또 아무나 되나요. 아무나 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제조업은 사그라들 일만 남았고 때문에 근무환경이나 급여조건도 공무원은 커녕 지금 상태 이하일 확률이 높잖아요. 지금 상태를 떨칠 유인은 역시 없음.

다만 지금 마음이 무거운 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있긴 해서요. 관심도 없는 공무원 준비생 코스프레하는 것도 이제 피곤하고.

제가 게으르고 안이하단 걸 부정하진 않아요. 세상이나 부모님이 알아서 해주겠지 같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런데 대체 어떻게 정신적 메커니즘이 발달했길래 남들과 같은 식으로 자라지 않고 몇 년 안에 길바닥에서 얼어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생각을 갖게 된건지, 궁금하다고 해야할지 착잡하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심란하네요.

가끔 인터넷에서 저랑 비슷한, 그러니까 무직에 나이는 차는데 학력이나 스펙도 없는 사람들이 상담글을 올리는 걸 보는데 그런데 달리는 답변은 진짜 건질게 더 없거든요. '나는 더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지금 그럭저럭 먹고 산다' '세상 쉽지 않다' '게으른 거 남탓하지 마라' '노후대비는 어쩌시려구' 등등.. 뭐 잘났다 자랑하려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아나..알아요, 아는데, 그걸 안다고 하고 싶다거나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니깐.
여러분 그러니까 이해안된다, 왜 그렇게 사냐까지는 괜찮은데 이런 식으로 잘못됐다는 듯 책망하진 말아주세요.

요즘엔 걍 이렇게 도태되다가 적당한 때에 죽는게 나도 좋고 세상도 좋은 그림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걸 자살 충동이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1


삼공파일
지금 이 상태에서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그런 욕망을 투사할 대상이 없는 것이 고민이 아닐까요? 사실 세상에는 그런 대상이 마땅치 않지요. 나를 향한 외부자극은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문제라는 것만큼 한가하고 쓸데없는 고민도 없지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집이 쫄딱 망하거나 몸이 아프거나, 글쓴분이 상상할 수 있는 나쁜일 중에서 마음을 동하게 할 수 있는 제일 심한 건 뭘까요?
[글쓴이]
조금 생각해 봤는데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상상만으로는 마음이 동할지 어떨지 알 수가 없네요. 양친 중 한 분이 3년 전 병으로 사망하셨는데 솔직히 그때라고 어떤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도 아니라서..
배 곯아본 적 없이(결핍에 대한 갈망 없이) 자라서 배가 불렀다는 생각은 간혹 하는데, 그렇다고 지금 당장 결핍 상태에 놓인다한들 사고방식이 바뀔 것 같지도 않네요.
삼공파일
그랬군요... 부모님 이야기가 있어서 이미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네요. 미안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정도로 슬프고 충격적인 일도 사실 관성을 이기긴 힘들죠. 제가 볼 때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입니다. 문제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게 필요해요.
dOnAsOnG
현상황을 외면하고싶은 마음이 한치도 없나요? 그러니까 좀더 발전적으로 살고싶은마음이 조금도 안든다는거죠?
저는 스스로 자립만 할수있다면 어떻게살든 자기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부모님께도 폐끼치지 말아야죠.
그리고 자신을 버리거나하진 마세요.
이런말이 정말 싫겠지만...
현실을 외면하지말고 도망치지마세요.
[글쓴이]
스스로가 불행함을 알고 있지만 억지로 부정하는 건지 예전부터 고민을 좀 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일, 최소한의 돈, 최소한의 공간, 이 모두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거거든요. 물론 어릴 때 그리던 것과 형태는 좀 다르지만. 오히려 남들과 같은 욕망이 있는 척 행세를 해야한다는 게 스트레스의 요인입니다. 도망이라면 이걸 도망친다고 할텐데 그게 아니라 '저 밖에선 저리도 치열하게 사는 데 너는 왜 네 생각 속에서만 갇혀 있니'라는 뜻에서의 도망치지 말라는 말씀이라면, 그게 도망인지도 모르겠고 왜 도망치면 안되는지도 납득이 안됩니다.
다만 부모님에 대한 금전적인 부채의식은 있긴 합니다. 일단은 지원을 안 받아도 되는 상황까지는 왔네요. 받았던 만큼이라도 돌려드리기는 해야죠.
dOnAsOnG
솔직히 욕심없이 사는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안좋은 선택을 할까봐 그러죠.
마지막말은 사족이었네요.
도망치는것에 대한건 문제를 만났을때 회피하지말란거였어요..
노인정(20대초반)
.
[글쓴이]
논리적으로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이 일도 못하고 그나마 모아놓은 돈도 떨어지는 때가 온다는 건 알고 있으면서도, 저로서도 그게 불안감으로 연결되지 않는 게 신기합니다.
어릴 때 배를 좀 곯아보거나 경쟁심이 강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떨까 싶네요.
CONTAXS2
설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AMA에 답글 다는 것도 안하시진 않겠죠? ^^
저도 이 드립을 칠까 했는데, 글이 너무 진지해서 ㄷㄷㄷㄷㄷㄷ
[글쓴이]
어제 유독 잠을 설쳐서 본문만 적었다 눈붙이고 지금 답글 다는 중이에요.
유리소년
제가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인생 여정에 확실한 목적이 없어서?
장난감
동기부여가 필요해보이네요.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저도 뭘 위해 살아가는건가 의문을 가졌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다릅니다.
제 경우엔 연애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삶은 커다란 철학적 목적이나, 거대한 성공의 꿈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한거 같아요.

To do List에서 체크를 채워가며 오르가즘을 느낀다든지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깔끔함에 눈물을 흘린다든지

이런 소소한 것에서부터 의미를 찾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은거 같아요.
[글쓴이]
네 지금 방 상태가 최악인데 진짜 이번주 안으로는 치워야겠어요. 매주 혹은 매달 리스트를 만들긴 하는데 막상 닥치면 대개는 그냥 드러눕는게 좋음 ㅋㅋ;
사악군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하는 건 하기 싫은 것보다는 낫죠. 무미건조하게 살면 어떻습니까 본인이 심심하게 사는게 별 신경쓰이지 않으시면 그렇게 사셔도 되죠 뭐.
코끼리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데 코끼리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 가지고 싶은게 뭐냐고 물었더니 코끼리를 포기하는 마음이라 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초에 코끼리를 원하지 않으시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약하시니 남는 시간을 가능한 자유롭게 써보시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주무셔도 되고 티비나 게임하시거나 지루하시면 걸어서 처음보는 동네에 가보신다거나. 집에... 더 보기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하는 건 하기 싫은 것보다는 낫죠. 무미건조하게 살면 어떻습니까 본인이 심심하게 사는게 별 신경쓰이지 않으시면 그렇게 사셔도 되죠 뭐.
코끼리를 유지할 능력이 없는데 코끼리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 가지고 싶은게 뭐냐고 물었더니 코끼리를 포기하는 마음이라 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애초에 코끼리를 원하지 않으시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약하시니 남는 시간을 가능한 자유롭게 써보시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주무셔도 되고 티비나 게임하시거나 지루하시면 걸어서 처음보는 동네에 가보신다거나. 집에서 편의점까지
몇발자국인지 세본다거나. 손등의 땀구멍이 몇개인지 세본다거나, 봉사활동을 해보신다거나. 연속해서 얼마나 잘 수 있는지 시험해보신다거나.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월급날에 좋아하는 음식 맛집 제패를 하러 다니시는 건 어떤가요.

최소한의 생활비와 월세는 버신다니 뭐 그걸로 되지 않았습니까.
굳이 애써 동기를 찾으실 필요 없습니다. 밥벌이만으로 충분하다 느끼시면 그렇게 하세요. 상황이 바뀌면 또 거기 적응해서 기반을 잡은 다음 다시 그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 좋을 일, 그리고 사회에도 좋을 일이라 생각하시는 것 마저 안하셔도 됩니다.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대체 뭔지 아직 모르는 상태인지, 정말 없는 건지 알 수 없으니... 듣고 보고 읽는 건 질리고 재미 없더라도 계속 하셔야죠. 이것마저 게으르다면? 조만간 고민이란 것 자체가 사라지게 될테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확실한 건... 죽는 건 언제가되든 한 번 하게 되는 일이니 미뤄두어도 된다는 거죠.
엉덩이가뜨거워
그냥 그대로 사는것도 옳지 않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마음가는대로 사는 것도 좋습니다. 스트레스에 강한 거부감이 든다면 굳이 감수할 필요도 없구요.
최소한의 자기관리, 자기생활만 내팽겨 치지 않는다면 딱히 문제가 없는듯해영
Erzenico
AMA를 '한다'는 선택에는 망설임이 없으셨나요?
으핫핫핫
그저 하고 싶은 게 없으신 거라면.. 정상입니다. 본인 밥벌이도 하시고 타인에게 피해주는 것도 없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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