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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15 13:58:21
Name   kpark
Subject   MLB 올스타전과 한 손님의 이야기


올스타전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와 자리를 빛냅니다. 올해는 신시내티에서 개최됐습니다. 경기 하루 전에는 신시내티 레즈의 토드 프레이져가 홈런 더비에서 우승하며 홈 팬들을 즐겁게 해줬고, 경기 직전 식전 행사에서는 레즈 구단의 전설 자니 벤치, 배리 라킨, 조 모건이 오랜만에 함께 모여 홈 팬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과연 그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의문이 드는 한 명, 피트 로즈였습니다.

피트 로즈는 신시내티 레즈의 전설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입니다. 아니 ‘이름이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스포츠 계에서 가장 용서받기 힘든 중죄 중 하나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팀이 하는 경기를 대상으로 도박을 했던 것입니다. 1987년, 그가 선수로서 은퇴한 지 1년 뒤에 드러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제명됐고,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안타 기록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게 됐습니다.

로즈는 최근 몇 년 사이 메이저리그에 복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 메이저리그 수장이 된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공개적으로 로즈의 복권에 대해 고려해보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팬들의 반응도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스포츠 매체 ESPN의 온라인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81%가 ‘로즈의 영구 제명을 용서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설문 참가자 500,990명).

그리고 오늘 신시내티에 모습을 드러낸 로즈는 홈 팬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앞서 나타난 세 명의 전설보다도 더 뚜렷하게 크게 들릴 정도로 가장 큰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야유도 섞여있었지만, 환호와 박수가 더 컸습니다. 전국에 방송된 TV 화면에는 ‘MLB 역대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4,256)’, ‘17회 올스타 선정’이라는 자막이 선명하게 못박혀 있었습니다. 모건, 라킨, 벤치 역시 그와 손뼉을 마주치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는 ‘신시내티의 프랜차이즈 4’라는 소개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적어도 오늘, 그는 복권으로의 길에 한 발짝 발을 들여다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녕 이런 환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요? 현대 스포츠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금지약물 복용입니다. 깨끗해야 할 승부의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도박은 그보다도 더 악질적인 행위입니다. 게다가 선수 1인이 아닌 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감독이 도박을 한다면 이는 더 치명적입니다(심지어 얼마 전에는 로즈가 선수 시절에도 도박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굳이 이런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미국의 팬들은 이미 로즈의 죄를 잊은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지나서 기억이 흐릿해진 걸까요. 아니면 당시 배신감을 느낀 팬들이 야구를 보지 않게 된 걸까요. 아니면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오늘 로즈의 출연을 보면서 금지약물로 징계를 받은 선수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는 2번이나 거짓말을 했었고, 그에 따라 무려 1년이나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버텨내고 다시 돌아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호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돌아온 로드리게스를 향한 뉴욕 팬들의 분노는 과거보다는 미약하게나마 누그러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결국 좋은 성적 때문일 겁니다. 이제 로드리게스는 양키스 타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라는 식의 미국 스포츠 문화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로저 클레멘스, 배리 본즈 이후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았지만 다시 돌아와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을 대하는 팬들과 매체의 시선 중에는 ‘잘못은 했어도, 그에 따른 벌은 받았으니 그 뒤는 용서해야 한다’는 기준이 서있습니다. 우리가 법률에 대해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한 번은 용서해야 한다는 미국 사회 특유의 관용이 스포츠에도 녹아 있습니다. 반대로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로드리게스와 라이언 브런은 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신시내티 팬들은 로즈에게 주어진 처벌이 과도하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결백하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평생 제명이란 처벌은 그가 이룬 업적을 너무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그 역시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란 시선일지도요.

하지만 로즈는 처음에 자신의 도박 사실을 부인했고, 그러다 관련 물증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나서야 모든 걸 시인했습니다. 팬들을 기만했다는 점에서 알렉스 로드리게스, 라이언 브런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둘과 로즈가 다른 점은, 로즈가 저지른 범죄는 메이저리그 공식 규약에 의해 ‘영구적인 제명’이라는 징계를 받도록 못박혀 있다는 점입니다.

이 짧은 내용을 써가는 와중에 피트 로즈를 위한 변명을 찾아보려 애써 봤습니다. 하지만 ‘그의 타격 소질만큼은 명예의 전당 감’이라는 한 팬의 옹호 외에는 어떤 논리도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더 씁쓸함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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