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게시판입니다.
Date 15/06/02 17:45:29
Name   kpark
Subject   강렬한 직관의 기억들
직관, 좋아하세요?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예전만큼 야구장에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 정도인 것 같은데...
여태까지 10번 좀 넘게 직관하러 간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들이 있습니다.
명경기냐 하면 그건 아니고 막장 드라마에 속하는데 -_-;; 원래 막장이 기억에 잘 남는 법 아니겠습니까.
각설하고 직관했던 경기들 중 아마 다들 아실 법한 두 경기 감상문입니다.


1. 2011년 6월 17일 - [임찬규가 올라와서 불을 지르다]
임찬규는 LG 비밀번호의 터널이 거의 끝을 향해 가던 2011년(물론 당시에는 더 길어보였지만...) 고졸 루키로서 혜성같이 등장했습니다.
2011년도 신인들을 뽑는 드래프트에서는 양키스와 메츠가 너무 귀찮게 했다며 7억원을 받고 한화에 입단한 유창식(-_-)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유창식이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 마시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11년 고졸 1년차 선수들 중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건 LG의 임찬규였습니다.
처음엔 그저 경험을 쌓게 해줄 요량으로 내보낸 투수가 의외로 배짱있는 투구를 펼치자, LG 박종훈 감독은 그에게 필승조의 중책을 맡깁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다만 그 호시절이 너무 짧았을 뿐... 임찬규는 코칭스태프와 팬들의 희망을 등에 업고 4월과 5월에 너무 많은 공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6월이 됐을때는 체력적인 한계였는지, 초심자의 무기를 파악한 프로 세계의 벽에 막힌 건지, 예전만큼 시원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악몽의 6월 17일. 불타는 금요일이었습니다.
LG는 홈구장 잠실에서 SK를 상대하게 됩니다. 당시 SK는 2007년부터 팀을 이끌어온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3연전의 첫 경기는 상대적으로 열세로 보였던 LG가 8회까지 4:1, 3점차로 앞서가며 좋은 출발을 하는가 싶었습니다.

저는 포수 뒤쪽 일반석에 앉아 LG를 응원하는 선배, SK를 응원하는 선배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며 경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LG 팬이었던 선배는 신나서 선수들 응원가를 완창할 기세였고.
but... 마... 여기까진가 싶어쓰요...

9회 1사 주자없는 상황이 되자 박종훈 감독은 지체없이 필승카드 임찬규를 꺼내듭니다.
그러나.

[밑에서부터 보면 됩니다]



[임찬규 등판]
6번 임훈 - [볼넷]
7번 박윤 - 삼진
8번 박진만 - [안타]
9번 조동화 - [볼넷]
1번 정근우 - [볼넷(밀어내기)]
2번 박재상 - [볼넷(밀어내기)]
3번 최정 - [볼넷(밀어내기)]



-_-;

결국 충격에 휩싸인 LG는 재역전에 성공하지 못한채 그대로 경기를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한 스포츠 일간지의 1면은...






ㅠㅠ

콩의 3연벙만큼, 대인배의 패패승승승만큼 제겐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하루입니다.
LG 팬들에게는 리즈 선수의 16연속 볼 사태 만큼이나 화딱지나는 기억일테고요.

이후 임찬규 선수는 첫 해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하고 있다가 2013년 말 경찰청 야구단에 들어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도중에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아 지금은 재활 중이라고 하네요.
과연 2011년 4, 5월에 조금만 더 관리를 받았다면 선수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2. 2010년 4월 23일 - [유원상, 새하얗게 불태우다]
유원상은 입단 동기 류현진(!)과 더불어 한화의 영건 원투펀치로 크게 기대받았던 선수입니다.
한화 감독을 맡았던 유승안 감독(현 경찰청)의 아들로도 유명했고요.
다만 친구는 미국물을 먹었는데 이 선수는 '가을 전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만 남긴 채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
왜 '가을 전어'냐고요? 가을만 되면 미쳐 날뛰어서 그렇습니다. 다른 계절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걸로;;

어쨌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한화에서 계속 선발로 기회를 받았지만 잠깐잠깐 반짝 활약 빼고는 전혀 성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인내심이 다한 한화 프런트는 2011년 7월 LG로 유원상을 트레이드시키고, LG에서는 2012년 한 해 반짝 필승카드로서 크게 활약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기를 봤던 2010년에는 너무 먼 미래의 얘기였죠...

각설하고 4월 23일, 잠실에서 한화와 LG가 펼친 경기였습니다.
이상하네요 왜 LG 경기지 또...
어쨌든 저는 당시엔 한화 팬이 아니었기에 LG 응원하던 친구 따라 심심풀이로 야구장에 갔습니다.
그땐 몰랐어요, 그게 한 선수의 인생 경기가 되리란 걸...

LG와 한화는 암흑기의 한가운데를 지나던 팀들이었고 특히 한화의 선발 라인업은 화병 유발제 그 자체였습니다.
1번 추승우 2번 전근표 3번 정원석 4번 이도형 5번 최진행... -_-;; 1~9번 중 지금 1군에 남은 건 최진행 밖에 없네요.
근데 이 라인업이 2회에 선취점을, 그것도 무려 4점이나 올립니다!!
네... 제 친구는 이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야구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경기는 별다른 공방 없이 0의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6회 한화가 1점을 더 올리긴 했지만 그 외에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차이라면 한화는 볼넷과 상대의 실책으로 주자가 나가도 점수를 못 올리고 있었는데,
반면 LG는 상대 투수의 역투에 막혀 전혀 공격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

그래도 저랑 친구는 같이 희망을 잃지 않고 LG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저는 친구 따라서).
상대가 누구도 아닌 유원상-_-이었으니까요.
'그래, 아무리 LG가 욕을 먹어도 설마 유원상한테 한 점도 못내겠어?'

그렇게 4회, 5회, 6회가 지나고...












아... 지금도 그 때의 심경을 뭐라고 표현해야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만 쇼크, 레바논 쇼크, 삿포로 참사, 도하 참사 수준의 대사건을 직접 겪은 느낌?
마치 맹모닝을 김치에 싸서 먹는 듯한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생생한 기억?
TPA 코스프레를 눈앞에서 당한 기분?

모르겠지만 제겐 그 날의 유원상은 오직 이 한 경기를 위해 프로야구 인생의 원기옥을 쏟아부은 남자와 같았습니다.
지금은 다시 예전의 전어로 돌아가 LG 팬들 속만 태우고 있는데... 혹시 류현진이 변장해서 오른손으로 던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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