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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2/18 22:31:11수정됨 |
Name | 코리몬테아스 |
Subject | 시카리오 - 현실에서 눈을 돌리다 |
영화가 폭력을 전시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그것을 비판합니다. 폭력의 강도가 커질수록 비판의 강도도 커지죠. 문제는 폭력을 영화의 맥락에서 정당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일으킵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편하게 영화를 만들면 오히려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죠. 아니면 그 일을 아주 잘 하거나. 시카리오의 세계는 이분법적입니다. 중남미 카르텔의 무법이라는 자연(自然)을 질서의 세계에 있었던 케이트가 경험하고 오는 이야기죠. 그 세계는 영화가 만들어낸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입니다.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죠. 그래서 영화의 폭력들은 현실을 모사했다는 이유로 정당화됩니다. 관객들은 케이트의 시선으로 이 여행을 따라가고요. 질서 세계의 주민인 케이트는 자연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이드로 맷과 알레한드로가 붙어있긴 하지만, ‘가만히 있어.’ ‘보면 알거야.’가 디폴트고, 여행주의사항을 물어보니 ‘시계를 보라’는 등의 신비로운 대답을 하는 별로 도움되지 않는 가이드입니다. 가이드 외의 자연을 알고 있거나, 혹은 그곳의 거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자연은 케이트와 분리됩니다. 카르텔 사파리의 순진한 관광객인 케이트를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케이트가 후아레즈에 들어오자마자, 설명충 동승자는 도축장의 고기들처럼 목이 잘려 도로변에 매달린 시체를 보고 ‘카르텔은 영리해. 저건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인거야.’라거나 총소리를 듣고 ‘저건 폭죽 소리가 아니야’같은 말을 하거든요. 분명 10분 전에 케이트는 처음부터 현장에서 구른 인물이고 5번의 총격전을 겪었고, 마약 사건을 쫒아 왔다는 배경이 나왔는 데. 영화가 바로 전에 한 말도 무시할 정도로 자신의 도식에 충실하다니! 케이트는 마지막까지 이 역할에 충실하여 메데인이란 이름을 듣고도 진실을 추리할 능력이 없어 맷에게 떠먹여지거나 합니다. 폭력은 사파리안에서 격리되어 있다가 케이트에게 손을 뻗습니다. 차창밖이나 고문실에만 있던 맹수들이 우리에서 뛰어나와, 술집에서 만난 남자로 위장해 케이트를 위협하는 순간 관광은 체험이 됩니다. 케이트가 속했던 질서의 세상에 자연이 숨어들어 있다는 의미심장함은, 결국 우리의 안전은 카르텔을 통제함으로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결말을 강화하기 위한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이란 거죠. 이후에도 몇 번이나 케이트는 자연에 의해 육체와 신념을 모두 정복당합니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변호할 수 있습니다. 몇 개의 폭력은 사실적이기 보다는 작위적이었고,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설정을 까먹었고, 몇 개의 성차별적인 맥락이 있는 것 같지만.. 불편했어도 의미있고 재밌는 체험이었으니까. 영화에서 중요한 건 결국 ‘스크린 앞에서의 체험’이 아니겠어요? 맷이 밝히는 ‘충격적 반전’이 진부하다고 불평해도, 카르텔 문제를 다루는 미국 영화라면 다뤄야 하는 최소한의 자기고백 정도로 대충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케이트를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알레한드로에 있습니다. 처음엔 단지 신비로웠던 검사출신의 알레한드로는 영화가 진행되며 점점 전능해집니다. 그의 사격은 적의 심장을 뚫고, 미래를 내다보고 행동하며, 한 말은 이루어집니다. 냉정한 프로페셔널이 현실에서 가지는 위상으로 봐주기엔, 케이트를 구출하는 장면에서 좀 선을 넘은 거 같지만.. 어쨌든 영화의 도식안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 맷이 세상의 진실을 거창하게 설명하면서 그의 구슬픈 가족사가 설명됩니다. 그리고 2시간 영화에서 1시간 40분동안 종종 삽입된 실비오 가족 이야기 외에는 케이트만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아무 전조 없이 알레한드로를 따라갑니다. 앞뒤 맥락을 고려하면 그 해 영화 최악의 화면전환상을 주고 싶은 부분이죠. 화면 안의 알레한드로는 마약 카르텔의 집에 침입하여 경비들을 모두 제압하고, 카르텔 두목과 그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개인적 비극과 복수라는 맥락을 현실과 얼마나 트레이드 오프했는지.. 알레한드로는 팀원도 없이 혼자 들어가 낭만적인 복수를 즐길 시간이 충분히 주어집니다. 이제 무엇이 그 폭력을 정당화했는 지는 애매합니다. 시카리오가 배트맨이 등장해 복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요? 그럼 케이트는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했던 거죠? 이게 현실이니까 눈뜨고 잘 보고 감당하라 하지 않았나요? 폭력이 복수를 성공시키기 위한 재료였다는 해석의 가능성 때문에 케이트에게 행해진 모든 일들의 질은 훨씬 나빠집니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시카리오는 알레한드로와 케이트를 한 번 더 대면시킵니다. 그는 사기 사파리 체험을 환불해주거나 사과하러 온 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케이트를 능욕하러 왔죠. 영화는 여전히 ‘현실’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믿지만, 전 그저 알레한드로가 왜 그런 전능한 힘을 휘두르는 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영화는 그 대답으로 실비오의 아들을 보여주며 ‘이게 현실’이라는 구차한 거짓말을 또 합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실비오의 가족을 마지막에도 배치하면 알레한드로의 복수극 앞에서도 사파리를 지탱할 수 있다고 믿은 걸까요? 바로 전에 알레한드로의 '극기'를 통해 모든 걸 이루는 복수극으로 도망쳤으면서. 그렇게 건조한 사막의 냄새로 시작했던 영화는 마초의 불쾌한 홀아비 냄새를 남기며 끝납니다. p.s 빌뇌브는 컨택트에서 비슷한 짓을 또 저지릅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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