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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25 17:23:30
Name   환경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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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책읽고 가끔 페북에 올리는데 이제부터는 에고를 내려놓고 ㅋㅋㅋㅋ 홍차넷에도 공유하려합니다.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ㅎㅇ
비문 지적 등 꼬투리와 피드백 환영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원제는 My age of anxiety이며 마음에 드는 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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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공포증, 소화불안, 발표불안, 공황장애, 비행불안, 분리불안, 우울감, 폐소공포증 등 불안장애와 신경증 카탈로그의 모든 항목을 다 가진 것으로 보이는 작가의 평생에 걸친 발버둥의 기록이다. 이 책 또한 불안을 버텨내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스콧 스토셀은 위에서 언급한 화려한 병력의 소유자임과 동시에 하버드를 졸업하고 애틀랜틱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남편이다.

그는 도저히 바닥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불안을 버텨내기 위해, 이를 병적으로 파헤친다. 작가 본인의 결혼식 장면을 묘사하며 시작된 그의 르포르타주는 불안과 우울의 역사와 정신약리학과 정신분석학과 양육환경의 영향과 유전적인 요인 등 불안과 관련된 많은 주제를 꽤나 심도 있는 깊이까지 다루고 있다. (쳐내고 쳐내서 이 정도일 거다)

저자만큼은 아니더라도 - 다음 목록에 부심은 전혀 없지만 -
자의식이 강하고 (나를 향하는 devil’s advocate 역할에 익숙하다),
부끄러움이 많으며 (책에도 나오지만, 한국에서 부끄러움은 하나의 덕목이다),
예민하고 (내이름이 불리면 자주 놀란다),
겁이 많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친모의 딸과 링 - 우물에서 귀신 나오는 그 영화 - 을 보고는 몇 년간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사다코 눈까리가 생각났다),
걱정이 많고 (주변인이 사고를 당하면 어쩌나 염려한다),
약간의 강박이 있고 (자원을 아끼자),
imposter syndrome에 (누구나 대학원생 때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분리불안 (유치원생 때 여섯 시쯤 일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엄마 출근을 눈물로 배웅했다)
정도는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다.

불안은 일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그 일의 결과를 끝없이 걱정하게 만든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선 대뇌피질 전두엽의 과잉 활성화를 관찰할 수 있다는데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내 친구들도 한 전두엽 하지만, 도대체 작가가 겪어온 불안은 어느 정도인 거지. 불안에 시달리느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한 번 더 하겠다는 참전자도 있을 정도라는데, 저런...

불안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인가. 무엇이 여섯살의 나를 매일매일 베란다에서 눈물 한 바가지씩 짜내는 마마보이로 만들었을까. 4부 ‘선천이냐 후천이냐’를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개인의 불안 정도는 초기 애착 대상(흔히 어머니)과 맺는 관계의 성격에 크게 좌우된다는 애착 이론은 당시 주류였던 프로이트의 만물리비도설을 거부한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존 볼비에 의해 발전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 혹은 당연하게도 - 그 또한 애정이 결여된 양육환경에서 자랐다. 결핍과 컴플렉스가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란 도덕책..

허나 분리불안의 문제는 단순 유전의 영향일 수도 있다. 작가의 부모형제 중 여동생 빼고는 불안장애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분리불안은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이전에 읽었던 <바보들의 결탁>이 결국 책으로 만들어지는 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워커 퍼시도 이 부근에서 - 이 책에서 저 책이 연결되는 반가운 순간 - 등장하는데, 그도 이런 유전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워커 퍼시는 과학이 인간의 불행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오늘날의 연구 결과는 분리불안을 포함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면역이 있거나 더 예민한 유전자의 존재를 지지한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그는 마마보이로 태어난 것인가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마마보이가 된 것인가. 다행히 그의 뇌는 닭이나 달걀보다는 훨씬 빠르고 다이나믹하게 재배선된다. 어쨌거나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에서 일단은 위로를 구하자.

불안의 분석과 치료는 정말 복잡한 문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가진 우울과의 경향성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람 머릿속에는 그 밖에도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이 있고 그들의 메커니즘이나 상호작용이 아직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스트레스에 강하거나 약하게 만드는 유전자의 존재도 여럿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에 개개인의 양육환경이나 트라우마 등을 고려하면 불안을 치료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가장 익숙하고 간편한 치료는 약물을 통해 이뤄진다. 일반적인 불안과 공황성 불안(패닉)을 분리해 정신약리학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써 내려간 이미프라민 이후로 수많은 약물이 연구되었는데, 불안장애 라는것이 한 세기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질병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약물의 발견이 또 다른 질병을 만들어내고 장기복용 시 뇌가 수축한다는 등 약물 치료법에 반대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불안치료 역사의 산 증인인 우리 저자에게는 약물이 그 어떤 치료보다 효과가 좋았단다.

책 전반에 걸친 불안의 경험과 그 뿌리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 하버드 학장이었지만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삶을 마친 외고조부, 가뜩이나 예민하게 태어난 그에게는 적절하지 못했던 부모의 양육방식, 불안감에 굴복해버리거나 불안감을 떨쳐내고자 약을 입에 털어 넣었던 여러 순간 - 읽다 보면 자연히 저자에게 연민과 애정을 가지게 된다.

본인의 결혼식에서 기절하면 안 된다고 되뇌며 땀을 뻘뻘 흘릴 때는 이 사람 왜 이러지 싶었는데, 케네디 일가 저택에서 장트러블 접견 직후 알몸에 수건을 두른 채 집주인과 조우하는 장면부터는 친근하게 느껴진다. (너, 내 동료가 돼라!) 비행기에서 겪은 단 10분간의 난기류에 나은 줄 알았던 불안장애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경험담에서는 슬슬 안쓰럽다. 그의 자녀는 작가처럼 비행 공포증이 있다는데 이를 어쩌나. 그의 집안은 대대손손 고통받을 운명인가.

이쯤에서 회복력과 구원이 주제인 책의 마지막 5부를 빼놓을 순 없겠다. 여기에 새뮤얼 존슨이라는 분이 등장한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이 불안을 다루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해 꾸준히 일하고 일찍 일어나는 등 일상의 습관을 관리하려 애썼지만, 평생에 걸쳐 실패한다. 그리고 이 모습에서 우리의 작가는 동질감을 느낀다. 다음은 작가가 발췌한 존슨의 일기 중 한 부분으로, 그가 느낀 동질감을 독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1738년 9월 7일: 아 신이시여…… 제가 나태함 속에 낭비한 시간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1753년 1월 1일: 일찍 일어나고 시간 낭비하지 말 것.
1764년 4월 21일: 이 시간 이후 나의 목표는 1) 게으른 생각을 물리친다. 쉬는 시간에는 쓸모 있는 오락 거리를 한다. 2) 게으름에 빠지지 말 것. 일찍 일어날 것.
이튿날 새벽 3시: 헛된 공포의 고통에서 구해주소서……
1774년 1월 1일 새벽 2시: 8시에 일어나기로…… 삶이 규칙적이지 않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다. 모든 목표가 무너진다.
1781년 1월 2일: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내 소망은 1) 늦어도 8시에는 일어난다. …… 5)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들에 괴로워하는 작가와 불안장애 환자들. 그러나 그들을 괴롭히는 조심성과 불안은 동시에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타인을 배려하게 만들고,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도록 행동케 하는 촉매가 된다. 작가의 불안장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불안에 대한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이 자신의 불안장애를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가진다. 그것이 가진 긍정적 측면을 바라본다. 위대한 인물들이 가졌던 불안과 그들의 업적을 쭉 나열한다든가, 불안이 어떤 대단한 역사적 사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사례를 읊어준다든지, 보다 직접적으로는 자기의 불안을 몇 십 년간 치료해온 W박사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든지 해서. 그에 따르면, ‘어쩌면 불안은 조금은 이상한 종류의 용기의 원천’ 이며 ‘영원한 인간의 조건’이다.


본문 및 감사의 말 발췌.

언젠가 W 박사에게 나한테 총이 있어서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 불안이 줄어들지 않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탈출을 선택지로 확보하게 되면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테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W박사가 동의했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을 날려버릴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영국 의사이자 철학자 레이먼드 탈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 . 구토는 공포를 일으킨다. 우리가 그 나름의 계획에 따라 작동하는 유기체 안에 갇힌 존재라는 걸 요란하게 알려준다.”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배운 셈이다. 키르케고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한다는 생각이 대체 왜 혈액 순환에 영향을 미칠까?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의 부재가 불안을 이해하는 열쇠다. 프로이트, <억압, 증상 그리고 불안>, 1926

코플런 연구팀은 어머니와 아이 관계가 아주 잠깐만 끊어지더라도 신경계 발달에 변화를 일으켜 “성인기의 불안장애가 나타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쉽지만 걱정과 직업 성취도 사이의 긍정적 상관관계는 걱정하는 사람의 지능지수가 높을 때에만 나타난다. 그렇지만 과도한 걱정 자체가 높은 지능지수와 상관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

아내가 이렇게 말하며 정곡을 찔렀다. “난 당신 불안이 싫어. 당신이 불안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싫고. 하지만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당신의 여러 면들이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면 어쩌지?”

존슨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끈질기게 노력했고 정서적 고통 속에서도 생산적으로 계속 글을 쓰면서 어떤 종류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었다. 현대 심리학은 이런 특질이 불안과 우울에 맞서는 강력한 방책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많이 내어놓는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아내 수재너에게 전합니다. …… .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나를 데리고 사는 게 때로 무척 힘들고 보람 없는 일이라는 걸 짐작할 겁니다 .수재너가 그 일을 힘겹게 감당하고 있으니, 그 점에 있어 나는 결코 되갚을 수 없을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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