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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2/23 22:26:43 |
Name | 안경쓴녀석 |
Subject | 불안에 대한 단상 |
오늘 저녁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안 가야되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데, 아직 폐쇄단계는 아니기도 하고 해서 마스크를 쓰고 갔습니다. 애초에 서울대교구 모든 본당은 현재 마스크를 안 쓰면 출입 자체가 안 됩니다. 저는 아프거나 감기기운이 있거나 열이 있는 건 아니고, 제가 사는 구는 확진자가 나온 곳은 아직 아니니 일단은 가봤습니다. 막상 가니까 평소 미사의 1/3도 안 온거 같습니다. 아니 사람 수를 눈으로 셀 수 있는 정도입니다. 성당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로의자 4개가 들어가는 본당인데, 말그대로 텅텅 비었습니다. 입구에서 마스크 썼는지 확인을 하며, 손소독제가 나와있습니다. 성가책은 전부 회수되어 없고, 주보도 집었으면 집으로 가져가야 하고, 예물봉투도 쓰지 않습니다. 교리실, 회합실, 성물방 등 사무실과 성전과 같은 핵심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은 폐쇄되었습니다. 모든 소모임, 교육 등도 연기되었습니다. 성체 모실 때도 마스크를 쓰고 나가며, 분배하는 분이나 받는 신자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설자가 전합니다. 적막함 그 자체입니다. 마음속으로나마 자신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평화를 누려야 할 시간인데,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듭니다. 마음속에 있던 작은 불안들이 더 커집니다. 이런 게 세기말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고 좀 그렇습니다. 사람이 적고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뭘 해도 웅얼웅얼, 미사곡은 가장 간단하게만 쓰고 그러니까 분위기도 축 처지는거 같습니다. 신부님은 강론 때 강론 쓰신 걸 두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복음 강론보다도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십니다. 신부님도 이런 미사는 처음이시다 보니 당황스럽다면서, 다들 마스크를 쓰고 오니까 약간 무섭기도 하다 이러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결국 우리가 진짜로 찾아야할 것은 무엇인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도 하시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도 심란해서 그냥 듣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는데 강론을 마치는 부분은 확실하게 기억이 나더군요. ~~다음 주에도 미사를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야 합니다. 행복하세요. 물론 이 말을 듣고 바로 확 불안감이 없어지고 기분이 나아진다던가 그러지는 않았는데, 마음속으로 약간? 움직이긴 하더라구요. 아 그래 너무 떨 건 없다. 적어도 우리 구까지는 아직 퍼지진 않았고(확진자가 15분 거리 시설에 들른 적은 있습니다), 마스크도 주섬주섬 사놔서 있고, 소독제 팔아서 샀고, 아직은 가족 중에 아픈 사람도 없고 하니까요. 돈은 좀 문제지만 조금씩은 벌고 있고, 몇 달을 갈지 모르는 문제인데 지금부터 벌써 과도하게 공포를 가질 이유는 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결국은 공포라는 건 반복을 먹고 자라는 괴물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 곧 다 좋아질거야 하는 근거없는 낙관을 했다간 큰일이 나겠지만, 혼자서 세상 다 멸망할 것처럼 덜덜 떠는것도 그렇게 생산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으로 활동은 하고, 주변에 사람 원래부터 없는 공터는 많으니까 걷기라도 꾸준히 하고, 꾸준히 마스크나 먹을거 마실거 체크하고 그러면서 살아나가는 힘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가장 생산적인 것이겠지 하는 뭐 그런 생각. 거창하게 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냥 넋두리가 길어졌습니다. 사태가 길어질 거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존버...가 최선인 거 같습니다. 물론 분위기는 완전 세기말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포탄이 떨어지거나, 어디 나라 전체에 먹을 게 다 떨어지고 그런 상황은 아니잖아요. 딱 있는 그대로 판단하고, 귀는 항상 열어두고 자기 주변을 챙기면서 한두달 이상을 보는 그냥 그런 대비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맞는거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사는 곳은 재난구역은 아니니까요. 여유가 되면 주변도 돕고 그래야겠지만 그럴 여유까지는 아쉽게도 없어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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