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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5/31 03:55:50
Name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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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범인은 잡았는데 정의는 과연 이루어졌는가? - 실종느와르 M


<나쁜 녀석들>, <실종느와르 M>, <특수 사건 전담반 TEN> 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근 10년간 미드 수입으로 꽤나 재미를 봤던 영화 채널, OCN은 지난 몇 년동안 오리지널 드라마들을 줄줄히 쏟아냈습니다. <신의 퀴즈>와 <특수 사건 전담반 TEN>은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 <리셋>과 <닥터 프로스트>는 망작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OCN이 결과적으로 꽤나 잘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수사물 드라마는 늘 언제나 특유의 감성적인 시선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국내 최초로 메디컬 수사물이라는 타이틀을 단 <신의 퀴즈>는 희귀병을 소재로, 부검의들의 수사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커플, 한진우 박사와 강경희 형사는 인간미 넘치고 따뜻하며 천재적이기까지 한,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위해 일하며, 악당들을 잡아넣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직업과 목숨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뛰어다닙니다. 특히 주인공인 한진우 박사는 매 시즌 엔딩을 맞을 때마다 죽다 살아나거나, 쓰러지거나, 살인자로 몰리거나, 도망자가 될 정도로 개고생을 해서 오히려 판타지로 보일 정도였어요. <특수 사건 전담반 TEN>은 조금 다른 느낌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감성은 여전했습니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려고 한 주인공 여지훈 팀장은 한 미제사건에 미쳐 있는 집착증 환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결국 여 팀장이 이른바 '테이프 살인사건'이라는 미제 살인사건에 목숨을 걸게 된 이유가, 자신의 약혼녀가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특수 사건 전담반 TEN>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지 않았다면, 그래서 연장을 하지 않고 시즌 1의 엔딩이 늘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면, 훨씬 좋은 드라마가 되었겠지만요.

수사물은 아니지만, OCN의 드라마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작년 방영되었던 <나쁜 녀석들>부터였습니다. 인간적인 정에 이끌리지 않고 그야말로 누가 봐도 '악역'인 그들을 때려잡는 과거의 '범죄자'들의 액션을 보면 그야말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나쁜 녀석들>에서는 온전히 선하고 착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의'나, '선' 같은 선천적인 감정보다는 자신의 '욕망' - 이를테면 당장의 수감기간 감형과도 같은 - 을 위해 움직이거나 행동했고, 시청자들은 그 사람들에게 훨씬 더 매료된거죠. 물론 배우들의 좋은 연기도 한 몫 했고, 폭발적인 에피소드들이 전반부에 몰려 있으면서 드라마는 점점 더 과열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재원 검사가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잠재적 가해자인 '사이코패스' 라는 이유만으로 살인마로 몰려야 했고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정문의 사연이 밝혀졌을 때 드라마는 힘을 잃고 맙니다. 폭력과 살인에 감정적인 원인이 결합해서 정당화 하는 것들은 그동안 OCN과 한국 드라마들이 너무 잘 써먹었던 방법이었고, <나쁜 녀석들>은 용두사미에 가까운 드라마가 되고 말았죠. 솔직히 TEN도 그렇고, 나쁜 녀석들도 그렇고 결말이 좀 찜찜하달까 아쉽달까 하는 느낌이 여전히 들어요.



범인은 잡았는데, 정의는 과연 이루어졌는가?




어제 종영한 <실종느와르 M>도 그런 감상적인 느낌이 어느정도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OCN 드라마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괜찮게 봤습니다. 실종느와르는 위에 설명한 드라마들과는 달랐어요. 정제되어 있고, 심심하다고 말할 정도로 깔끔합니다. 폭력도 드물고, 과한 액션도 없으며, 이렇다할 '한 방'도 없습니다. 트릭은 어느정도 작위적이고, 주인공들의 인간 관계는 지나치게 건조합니다. 팀장을 포함한 팀원 세 명은 일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딱히 관계도 없고, 그들은 그저 특수 실종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만 모인 전문가들이죠.

이 건조한 드라마에 힘을 불어주는 것은 바로 주인공, 길수현 팀장입니다. 전 FBI 소속의 특수수사전담팀 팀장, 길수현은 굉장히 입체적이고 난해한 인물입니다. 천재적인 두뇌와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총기 과잉 사용으로 FBI에서도 거의 쫒겨나다시피 한국으로 전출되어 왔죠. 드라마의 주인공이니 당연히 비밀 한두개쯤 가지고 있는 위험한 분위기의 이 남자는, 진짜 어딘가 좀 미친 사람 처럼 보입니다. 암페타민으로 추정되는 약물을 수시로 복용하고, 연쇄살인을 저지른 뒤 마지막 '복수 대상자'와 절벽으로 떨어져 자살하는 범인을 방치하죠. 자신의 아이를 잃게 만든 사람의 아이에게 독극물을 주사하려다 망설이는 범인에게,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오히려 주사하기를 권합니다. 대단히 염세적인 사람이죠. 겉으로 보이기엔 젠틀해 보이면서 멀쩡하고 정의롭기까지 한 사람인데, 범인과 대화를 할 때의 그는 거의 광기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는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오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녹>, <청순한 마음>. 2부씩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에피소드들은 꽤 짜임새 있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시즌 동안 모든 에피소드들이 깔끔한 퀄리티를 유지하긴 쉽지 않은데, 실종느와르는 커다란 한 방이 없는 대신 모든 에피소드들이 깔끔한 편입니다. 첫 에피소드, <감옥에서 온 편지>는 약간 인공적인 냄새가 나긴 했어요. 관객들과의 두뇌싸움을 '의도'한게 아니라 '보여주기'를 위한 작위적인 느낌이 조금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던 건, 120~140분이나 되는 긴 러닝타임 동안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드라마라는 점이었어요. '가해자같은' 피해자, '피해자같은' 가해자. 평범하지 않은 각 에피소드들의 주인공들도 독특하고요.

무엇보다도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범인은 잡았는데, 정의는 과연 이루어졌는가?' 라는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질 않았습니다. 범죄와 범인의 관계보다도,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사회문제를 좀 더 깊이있게 다루고 있죠. 재미있는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수현 팀장의 냉소적인 시선에 버무려져 가라앉고 독특한 분위기를 갖습니다. 다만 OCN의 고질적인 문제일까요. 늘 마지막 회차는 사회권력에 맞서다 좌절하는 주인공들이 그려지고, 결국 풀리지 않은 길수현 팀장의 비밀까지 깔끔하지 못한 엔딩이 좀 아쉬웠네요.

주인공 길수현 역을 맡은 김강우는 6년만에 인생역을 맡은 것 같습니다. 연기도 제법 하고, 외모도 괜찮은데 늘 배역이 딱 이거다 싶은 느낌이 없어서 좀 안타깝기도 했었거든요. 반대로 형사 역을 맡았고, 괜찮을 것 같았던 박희순은 그저 그랬습니다. 정의로운 경찰인데 세븐데이즈의 껄렁한 형사가 너무 생각나기도 했고, 길수현만큼 매력적이지 못한 캐릭터 탓일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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