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2/07 16:07:18수정됨
Name   Mariage Frères
Subject   계속 새로운 물로 갈아주어야 해요.
언제나처럼 그대가 없는 오후가 지나가요. 이 일요일은 지겹지도 않은지 당신의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요일을 다시 떠오르게 해요. 내가 당신을 내가 있는 곳에서 기다렸던 그 시간이 되면, 그리고 당신을 이 자리에서 떠나보낸 그 시간이 되면 나는 멍하니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추스르는 척 하면서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데에 시간을 쓰곤 하죠. 그대는 이제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을텐데.

그대가 있던 자리엔, 그대의 향이 머물던 자리엔 이제 내가 곳곳에 놓아둔 방향제의 향이 맴돌고 있어요. 아무 것도 놓지 않기에는 내가 너무 미운 냄새만 풍길 것 같아요. 당신과 함께 골랐던 향은 이제 당신을 스쳐지나갈 일이 있는 날에만 뿌리고 있어요. 이런 미련 당신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늘 앉았던 포엥은 이제 당신을 떠올리지 않을거에요. 나는 그 포엥을 버릴까 수없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고 대신 포엥 옆에 사이드 테이블을 놓고, 당신이 종종 집에서 태운다고 했던 양키캔들을 놓았어요. 그리고, 그 옆에다가 벌써 반년째 자그마한 꽃병을 놓고 꽃을 사다 꽂아둔답니다. 당신도 꽃의 향기를 꼭 맡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꽃집 사장님이 알려준대로, 매일매일 차가운 물을 갈아서 채워넣고 있어요. 꽃다발 속에는 줄기가 튼튼한 것과 무른 것, 굵은 것과 가느다란 것이 마구 섞여 있어 물에 잠겨 있을 때 줄기가 짓무르고 물을 더럽힐 수가 있기 있으니 항상 잘 바라보아야 한다고.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짓무른 부분은 잘라내거나, 약해진 줄기를 가진 꽃은 빼내어야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었어요. 새로운 물로 갈아줄 때마다 꽃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 갑자기 향기를 더 낸답니다. 당신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아요. 난 참 게으른 사람이고, 우리의 짧은 만남 속에서도 새로운 기쁨을 주지 못한 것을. 내가 이 꽃병에 매일 새로운 물을 갈아주듯, 난 우리의 사랑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어야 했어요. 그러지 못했으니, 당신의 마음이 다치는 것을 몰랐고, 또 당신의 사랑이 시들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제 어찌할 수 없지만, 난 새로운 물을 우리의 사랑에 주어야만 했어요. 아니면 짧은 사랑으로 끝나지 않게 우리의 사랑을 꽃병에 잘라서 넣는 대신 내가 단단한 땅이 되어 그 사랑을 더 크게 자랄 수 있게 했어야만 했죠. 그걸 이제서야 알게된 내가 너무 미워요. 떠난 당신이 미운게 아니라.



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161 창작계절은 돌고 돌며 아이코스도 돌고 돌아. 3 심해냉장고 20/11/22 4287 7
    8974 일상/생각계속 운동 하면서 떠오른 십계명 18 화이트카페모카 19/03/19 4410 1
    11400 일상/생각계속 새로운 물로 갈아주어야 해요. 9 Mariage Frères 21/02/07 3869 4
    4489 일상/생각계란값. 중간상인들은 정말 폭리를 취하는 걸까? 6 Leeka 16/12/31 3355 2
    3208 기타계란 한판이 넘도록 살아온 평생이지만 몇가지 확실히 깨닫게 되는게 있더군요. 18 klaus 16/07/06 4293 0
    6306 일상/생각경험주의와 실증주의의 몇 가지 문제 15 二ッキョウ니쿄 17/09/19 8637 6
    3255 정치경향 김서영 기자 유감 42 당근매니아 16/07/13 10047 16
    10828 사회경찰청 “로스쿨 경찰, 직무유기 문제없다”…사준모, 감사원 감사 청구 8 다군 20/07/30 4551 2
    10665 역사경찰사와 영국성 3 코리몬테아스 20/06/08 3820 7
    9484 사회경찰관 허위 초과근무와 부정수령 내부 고발자 경찰관 입니다. (인증샷 포함) 42 멈추지말자고 19/07/29 5721 51
    1565 정치경찰 시위대 진압 부서에 책임을 어떻게 물릴까요? 24 까페레인 15/11/15 5404 2
    636 정치경찰 "녹색번호판 마티즈 재연 실험... CCTV선 흰색으로 12 블랙이글 15/07/23 7830 0
    7736 여행경주 열대과일 체험장 아침 18/06/23 5332 0
    14124 일상/생각경제학 박사과정 첫 학기를 맞이하며 11 카르스 23/08/29 3369 33
    12101 일상/생각경제적 1%가 되는 길 10 lonely INTJ 21/09/20 4117 5
    600 경제경제인 사면 검토..... 18 솔지은 15/07/16 6606 0
    14489 경제경제 팁 #3. 탄소중립포인트를 가입하세요 13 Leeka 24/02/27 1860 3
    14487 경제경제 팁 #2. 무지성 무제한 단일카드를 쓰는 분들을 위한 정보 40 Leeka 24/02/26 4162 7
    14486 경제경제 팁 #1. 신용카드의 연회비 이야기 25 Leeka 24/02/26 2245 0
    1011 일상/생각경인선 사고로 인한 교통 대란 2 西木野真姫 15/09/16 5246 0
    4015 역사경신대기근은 왜 역사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걸까요? 11 늘좋은하루 16/10/26 7675 0
    10499 정치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19 보리건빵 20/04/16 4548 1
    5344 기타경복궁 한복 번개 후기 19 열대어 17/04/02 3763 8
    5343 일상/생각경복궁 모임 간단후기. 8 선율 17/04/02 3374 8
    12028 기타경기지사가 설마…세금이니까 '2000억 펑크' 별 거 아닌가요 17 Profit(Profit) 21/08/30 4133 8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