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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5/17 01:56:16수정됨 |
Name | joel |
Subject | 축구로 숫자놀음을 할 수 있을까? 세번째 생각, 공간과 압박. |
공간이란 뭘까요. 너무 뻔하죠. 비어 있는 거. 그럼 압박은 뭘까요. 압박은 현대 축구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축구 평론이라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당연시 되는 개념인데, 축알못인 제 입장에선 이 단어가 정확하게 정의되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여기선 이를 정의하기 위해 굳이 미헬스나 사키, 펩을 끌어들이진 않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그 어떤 전술이나 배경을 가지고 있다한들 결국 압박이란 상대 선수를 향해 달려드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한 번에 하나의 공간에만 서 있을 수 있으니 압박이란 공간을 좁힘과 동시에 넓히는 행위이고, 상대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동시에 허용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압박이라는 단어를 '자신이 기존에 점유하고 있던 공간에서 그보다 더 점유가치가 높은 공간을 향해 이동하는 행위 중에서 상대 선수를 향해 달려드는 경우' 라고 정의해 보겠습니다. 그 점유가치는 공과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구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축구에서 역습을 당할 시 수비의 기본은 수비수가 공격수의 앞을 막아서며 시간을 끄는 동안 뒤에서 합류하는 아군의 지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비수와 수비수 뒷공간이 수비측에게 있어 점유가치가 가장 높은 위험지역인 반면 공의 뒤에 있는 공간은 일단 내줘도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상대편 진영에서 압박을 가할 때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보통 미드필더들을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끌어올려 압박을 거는 팀은 어쩔 수 없이 뒷공간(미드필더-수비수 사이 공간 또는 수비수 뒷공간)을 내주게 되는데 이 뒷공간은 점유가치가 낮기는 커녕 절대로 허용해선 안 되는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왜 압박이란 수단이 유효할까요? 그건 공간이 생기는 즉시 공을 가진 쪽이 이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단 공을 가진 선수가 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아 아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군은 빈공간을 향해 달려가고, 거기로 정확하게 공을 투입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것이 압박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상대가 공을 트래핑 하기도 전에 쇄도해 들어가며 공을 잡고 돌아서지도 못 하게 만들거나, 압박 그 자체로 시야와 패스 경로를 방해하여 백패스나 부정확한 롱패스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만약 압박이 실패해 상대가 압박을 벗겨내게 되면 곧바로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압박이 성행하는 것은 뒷공간을 노출함으로써 갖게 되는 위험보다 상대의 볼배급이 시작되는 공간을 점유하여 패스의 줄기를 원천봉쇄하는 것에서 오는 이점이 더 크기 때문이겠고요. 이렇게 어느 공간을 허용하고 어느 공간을 점거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감독들의 전술입니다. 이토록 공간과 압박이 강조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축구는 발로 하는 운동이기에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잘난 선수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공을 가진 선수의 능력보다도 공간과 압박이 더 중요한 변수가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축구에서 가장 큰 변수인 이 공간과 압박을 숫자로 환산할 수는 없을까? 저는 그것을 '거리'라는 지표와 거기서 파생되는 '시간' '속도' 라는 변수로 나타낼 수 있다고 봅니다. 공간이란 것은 결국 선수와 선수의 거리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선수와 선수의 거리, 공과 선수의 거리, 선수의 속도, 공의 속도 등의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다면 이를 가공해 굉장히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더 하기 위해 너무나도 유명한 영상 하나 보고 갑시다. 축구팬들이라면 영상을 안 봐도 아실 법한 98 월드컵 베르캄프의 3터치 슛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 베르캄프는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상대 골문 앞에서 일단 한 번 트래핑 하고, 살짝 뒤로 빼서 수비수 아얄라를 벗겨내고, 마지막으로 슛을 해서 골을 집어넣습니다. 이것은 분명 축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자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기예입니다만 우리는 좀 삐딱하게 바라봅시다. 여기서 수비수 아얄라는 아무 책임이 없을까? 분명 저 상황에서 저렇게 정확하게 공을 트래핑해서 차버리면 수비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후방에서 날아온 롱패스입니다. 데 부르의 발에서 떠난 공이 베르캄프에게 도달하기까지 약 3초가 걸렸어요. 그런데 영상을 보시면 아얄라는 베르캄프에게 달라붙긴 했지만 한 박자 늦게 달리기를 시작한 탓에 베르캄프가 공을 만지는 시점에는 달려오던 속도를 죽이지 못 한 상태입니다. 이러니 달려오던 관성 때문에 베르캄프가 한 번 공을 접는 것 만으로도 간단히 제쳐질 수 밖에 없었죠. 만약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베르캄프의 침투를 놓치지 않고 함께 달리기 시작했더라면, 그래서 수비와 베르캄프의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공이 날아오는 3초동안 아르헨티나 수비수들은 좀 더 편안하게 베르캄프가 공을 잡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좀 정확히 말하자면 베르캄프가 공을 만지는 시점에서 수비수의 순간속도가 느렸더라면 베르캄프가 한 번 접는 동작을 취해도 곧바로 방향을 전환해 슛을 막을 수 있었겠죠. 이런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봅시다. A선수가 팀동료 B에게 패스를 보내줍니다. 이 패스를 보고 상대 수비수 C가 B에게 달려와 압박을 가합니다. 여기서 A가 찬 공이 B에게 도달하는 시간을 1초라고 합시다. 그런데 A가 공을 찬 시점에서 B와 C의 거리가 15m쯤 떨어져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초속 15m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속도이니 C는 절대로 B가 공을 잡는 순간까지 B에게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C가 패스를 예측하고 먼저 달려들 수도 있긴 한데 그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합시다. 아무튼 그래서 1.5초쯤 걸려서야 전속력으로 B에게 달라붙었다고 치면, B는 0.5초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됩니다. 이 귀중한 시간동안 위에서 말한 행동들을 할 수 있습니다. 재빨리 공의 속도를 죽여서 다음 동작을 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둔 다음 동료 선수의 위치를 확인하고 패스를 넣어줄 수도 있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C를 한 번의 터치로 벗겨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B와 C가 5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B는 괴롭습니다. C가 초속 5m만 낸다 해도 B에게 따라붙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더 빠르게 달려와 패스 자체를 가로챌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B는 공을 향해 움직이며 공을 받아야 하고 받은 직후에도 공을 쉽게 다루거나 순발력으로 상대를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30m쯤 떨어져 있다면? C의 압박은 B가 넣을 수 있는 모든 패스 선택지를 동시에 막아서는 팀동료들의 집단 압박 없이는 별 효과가 없을 겁니다. 그냥 C가 뒤로 물러나겠죠. 이렇게 하나의 패스가 이어졌을때, 패스가 이뤄지는 시간동안 수비가 공을 받는 상대에게 달라붙기 위해 요구되는 최저속도를 '필요수비속도' 정도로 불러봅시다. 필요수비속도를 측정해 본다면 하나의 패스가 이어졌을때 패스의 종류와 질을 평가할 수가 있을 겁니다. 후방 센터백에게 주는 백패스라면 센터백과 상대 수비수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가 나올 것이고 전방에서 수비수에게 둘러싸여 있는 공격수를 향한 패스는 아주 낮은 속도가 나오겠죠. 이 필요수비속도와 패스 이후의 결과물을 대조한다면 누가 더 잘 했는지도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특정 선수가 전방에서 받았던 패스들의 평균적인 필요수비속도가 높았음에도 상대 수비에게 볼을 뺏기는 일이 잦았다면 그건 받은 선수 잘못이죠. 반대로 평균적인 필요수비속도가 매우 낮았음에도 공을 지켜내고 추가 패스를 이어나가거나 골을 성공시켰다면 받은 선수가 잘 한 거고요. 반대로 특정 수비수가 수비를 성공시켰을 때의 필요수비속도들을 모아본다면 해당 수비수의 능력을 대강 가늠해볼 수 있을 겁니다. 위의 영상에 나온 베르캄프의 골을 여기에 적용해 볼까요. 베르캄프는 후방의 데 부르가 패스를 넣어주기 직전에는 수비수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필요수비속도는 아주 낮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공이 와 봤자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여 끽해야 헤더로 떨궈주기 밖에 못 했겠죠. 하지만 패스 타이밍에 맞춰 순간적으로 질주하면서 수비수를 떨쳐내고 상대 문전 앞에서 귀하디 귀한 '공을 트래핑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리의 힘과 거리가 벌어다 준 시간의 마법입니다. 물론 정확한 롱패스를 공급한 데 부르의 공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에는 A가 B에게 넣어준 패스가 C를 지나쳐서 연결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A와 B를 잇는 직선을 하나 긋습니다. 그리고 C의 위치에서 AB직선까지 직각으로 선을 그어(최단경로)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을 D라고 하고 직선 CD의 길이를 구해봅시다. 그리고 CD의 길이를 A의 발을 떠난 공이 D에 도달한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나눠보죠. 거창하게 썼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A가 B를 향해 패스를 하는 순간, C가 패스의 궤적을 향해 최단경로로 달린다 쳤을 때 패스를 막아서는데 필요한 속도를 구하는 겁니다. 위에서 썼듯이 1초 이후에 15m 앞 지점을 지나가는 공을 막아서라! 이런 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반대로 그 속도가 작을 수록, 그러니까 1초 이후에 5m 앞 지점을 지나는 공을 막아라! 같은 것은 쉬울테고요. 만약 C가 아예 AB를 잇는 직선상에 있다면 초속 0m, 가장 막기 쉬운 공일 거고요. 이것도 일단 편의상 '필요차단속도' 이라고 불러봅시다. 이 잣대를 통해 공격자의 패스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겠죠. 이를테면 필요차단속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패스가 이어졌다면 그것은 그 패스를 넣어준 선수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무언가가 있었다고 봐도 될 겁니다. 수비가 잡기 어렵게 휘어져 들어가는 패스,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빠지는 패스, 공중으로 뜨거나 머리 위를 넘기는 롱패스, 혹은 수비수를 현혹시키고 기습적으로 넣는 패스 등등. 만약 여러명의 선수를 스쳐갔다면 각각의 값을 더한 다음 -1을 곱해 음수로 만든 다음 0에 가까울수록 어려운 패스였다 라거나 기타 수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겠고요. 현실적으로 도저히 사람이 잡는 게 불가능한, 무의미한 값의 위치에 있는 선수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자세한 계산은 수학 능력자들이 해주시겠죠...전 수포자라서... 이 두 가지 수치에서 후방 빌드업을 바라본다면 안정적인 빌드업이란 필요수비속도가 높은 선수를 향해 필요차단속도가 높은 패스를 찔러주는 행위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상대 선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정적으로 공을 받아줄 수 있는 선수를 향해 공을 가로채이지 않을만한 경로로 패스를 시도하는 것을 수치화 할 수 있게 되죠. 때문에 이 수치는 압박을 가하는 쪽의 압박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나를 재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부스케츠처럼 동료들에게 패스 선택지를 제공해 압박을 무효화하는 선수의 능력을 잴 수도 있을 거고요. 여기서 요즘 유행하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x미터 떨어진 아군 선수 혹은 지점을 향해 공을 보내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몇 초인가? 를 산출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패스를 제대로 받으려면 받는 선수에게 도달했을 때 속도가 너무 빠르면 안 되니 패스들의 편차는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수학 능력자들에겐 그리 어렵지도 않은 작업일거고요. 공격시 하프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은 센터백 혹은 미드필더가 전방에 있는 동료를 향해 패스를 찔러주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 시간값을 이용해 각 선수들에게 도달하는 패스의 선택지에서 필요수비속도와 필요차단속도를 구한다면 기대되는 패스의 선택지 그 자체를 평가하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이런 수치들을 적절히 가공한다면 팀단위로 상대에게 허용한 공간의 크기를 가늠하고 압박의 효율을 숫자로 나타내거나 누군가가 수비수를 끌고 침투하며 만들어준 공간 창출의 효과를 수치적으로 알아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공을 가진 선수A가 수비진과 미드필더 사이에 있는 선수 B를 향해 패스를 넣어주기 위해 필요한 예상 시간이 x초인데 x초 이내에 B에게 접근할 수 있는 상대 선수가 없었다 라고 한다면 위험지역에서 공간을 허용했다고 판정하는 거죠. 자, 길게 떠들었지만 여기서 정리합시다. 제가 지금껏 떠들었던 이야기들은 모두 저의 머릿속에서 나온 공상의 산물일 뿐이고 제가 제시한 스탯들도 그저 이런 것도 시도해볼만한 가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이지 이것이 내가 몰랐던 축구의 진실을 밝혀줄거란 기대는 전혀 안 합니다. 그건 결국 천조국의 똑똑하고 시간 많고 축구 좋아하는 수학자들과 구단과 영리사이트에 고용된 능력자들이 하겠죠. 저는 그저 한 사람의 축알못으로서 그들이 진실의 빛을 내려줄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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