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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9/18 00:38:54수정됨
Name   일상생활가능
Subject   D.P 감상평
<D.P> 열풍은 선풍적이라는 식상한 말보단 태풍에 가까웠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군대 이야기, 그것도 태양의 후예 같은 것도 아닌 암울하기 짝이 없는 주제로 이정도의 파급력을 낸 것은 분명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원작 만화를 몇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이 걸작이 더 빛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던 저로서도 뿌듯한 일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제가 내린 결론은 이 드라마는 인상깊은 드라마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아니구나, 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주인공의 포지션.

<D.P>의 주인공은 원작 만화의 군대 물정 다 아는 시커먼 상꺾이 아니라 표정관리 못하고 단체생활에서 성질 못죽이는 열혈계 이병으로 나오죠. 드라마라는 매체 특성상 캐릭터가 바뀌는 것 자체는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는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그대로 따온 바람에 바뀐 안준호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졌다는 거죠.

원작처럼 안준호는 내리갈굼을 커트합니다. 상병이 아니라 이병이! 하극상 이야기가 아니라 조석봉에게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습니까'라고 말하는 부분이 너무 어색하단 겁니다. 옳든 그르든 100일 휴가나 나갔을까 싶은 애기가 할 말이 아닌 겁니다. 원작에서 부조리와 내리갈굼에 고뇌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안준호의 모습에 이입되는 건 부조리에 녹아든 동기와의 대화가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병 커버쳐줬다고 잘난 줄 알지 마라. 걔 너 활동 나가면 더 털렸다. 너 걔 끝까지 책임질거 아니지 않냐.' 가해자를 천연덕스럽게 바꿔버리는 이 화법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 혹은 방관자였을 독자를 찌릿하게 자극하는 반면, 드라마의 상황은 냉정하게 보면 지 잘난 맛에 사는 후임이 유약한 맞선임 잡아먹는 것에 불과하죠. 아닌 말로 DP조 첫 사수도 줘패버렸으면서 본원인 황장수는 왜 못건드렸답니까.

20대 초반에 베테랑 강력계 형사를 방불케하는 능력을 선보이는 상병 안준호보다 열혈파 풋내기 이병 안준호의 우당탕쿠당탕 디피 생활이 더 먹힐 소재고 현실적이다 라는 지적도 타당하지만 최소 일병은 달고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안준호 캐릭터를 완전히 재창조했어야 했습니다.


두번째, 원작에 지나치게 기대는 감독.

<D.P>는 '어 이거 원작에서 봤던건데' 하는 장면이 엄청 많이 나옵니다. 좋게 말하면 원작 재현도가 높은 거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캐릭터만 똑 떼놓고 변했기에 딱히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감독의 오리지널리티에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특히 3화 "그 여자"는 기본 구도는 원작에서 따왔으면서 변주를 한 것이 갑자기 <타짜>를 만들어버렸죠. 화사한 여배우들이 나오면서 분위기 전환은 됐지만요.

3화는 가장 불성실한 에피소드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지적할만한 건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완성도 내지 식상함입니다. 임지섭 대위는 힘 빡 준 것에 비해 솔직히 왜 있는지도 모르겠는 캐릭터고, 한호열 상병은 어디서 본 말을 빌리자면 또 고광렬입니다. 간부들 회동씬으로 바뀌면 드라마는 <내부자들>이 됩니다.

감독의 전작이 F1 그 대사로 유명한 <뺑반>이라고 놀라는 반응이 있던데 저는 <뺑반>은 보지 않았지만 대충 명대사병 걸린 사람이구나하고 이해하면 <D.P>의 연출도 납득이 갑니다. 개별 화든 전체 흐름이든 플롯은 대충 정해져있고, 오리지널한 상황은 클리셰로 뒤덮이고, 그러면 연출자 입장에서 자아를 내보일 가장 쉬운 방법은 명대사 한방인 거겠죠. 그런데 그 명대사조차도 원작에서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옮겨옵니다. 그러면 대사로 까일 일은 없겠으나, 솔직히 게으른 선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영상물이 원작을 너무 바꿔서 문제라는 마당에 원작을 너무 차용한게 문제인 작품은 또 처음이네요. 6화라는 짧은 화수에 원작의 많은 부분을 담고자 하다보니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 플롯을 이끄는 게 아니라 플롯에 캐릭터들이 이끌리는 느낌도 강하고요.

'수통도 안바뀌는데 (군대가) 무슨...' 이 대사는 작중 최고 명대사로 꼽힙니다. 만화에서 이 문답이 흡입력 있었던 건 투신하는 탈영병인 오성환 이병이 친구인 군종병(병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견딜 수 있는 것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개소리나 들었다는, 마음의 편지를 투고했지만 간부가 그 개봉을 (가혹행위 일당인) 병사한테 떠넘겨서 상황만 악화되었을 뿐이라는 사전 배경이 있었고, 그를 통해 독자는 내부에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군부대라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이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수통 얘기가 나오는 건 '블랙팬서는 대대로 와칸다의 수호자였다' 같은 간접적 언급이죠. 실제로 실망한 건 바뀌지 않는 수통때문이 아니지만, 외부인인 DP조에게 얘기를 해서 뭐하냐 같은 감정인거죠.

그런데 드라마에서 조석봉은 그러한 묘사가 보이지 않으니, 진짜로 군대가 안바뀔 근거를 수통에서 찾는 셈이 됩니다. 시청자가 여기 공감하는 것은 '군대는 바뀌지 않는다'라는 사전 전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지 작품 내적으로만 따지면 좀 성급한 결론이죠. 복수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마음의 편지나 사단 신고센터 같은 곳에 투고했다 실패하는 묘사도 없으니, 연출자가 어떻게든 클라이맥스에 이 대사를 넣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5~6화의 고어한 연출 또한 결론을 위해 상황을 꾸겨넣는, 좋지 않은 작품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곁다리지만 논란이 되었던 황장수 세븐일레븐 알바씬도 그러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방증하고요.


종합해보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인상깊고 재밌게 본 드라마를 원작 팬이라는 입장에 서서 너무 박하게 보는 것 아니냐, 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D.P>의 두 주연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는 '얘들이 군인 느낌이 안난다'는 겁니다.

드라마건 원작 만화건 이걸 군대 부조리 고발물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반쪽짜리 감상이라고 봅니다. 탈영병을 잡는 것도 같은 병사, 똑같이 부조리에 시달리고 국가에겐 인간보단 자원으로 취급받는 처지에 회유와 체포에 나서야한다는 상황 자체가 지닌 부조리함이 <D.P>라는 제목이 내포한 바일 것입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선 이들이 병사 신분이라는 사실이 그저 양념에 불과합니다. 햇병아리 안준호가 상병들 상뱀이라고 부르는거 되게 어색합니다. 얘들이 병사라는 한계점에 발목을 잡히는 부분이 없어요. 그것이 오히려 이들을 극의 주역이 아닌 관측자로 만듭니다.

이들이 만약 경찰이라면, 즉 월급받고 커리어가 쌓이는 입장이라면 체포에 열정적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병사들은 남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설명이 있긴 하죠. 근무태만하다 첫 임무를 탈영병의 사망으로 놓친 트라우마라는 원작 설정. 하지만 원작에선 그뿐만이 아니에요. 개인 휴가까지 탈영병 추적에 쓰는 안준호의 미친 짓을, 그 자신 역시 가족의 굴레라는 짐에서 탈주하는 입장이라는 묘사를 통해 설득력을 배가하거든요. 드라마에도 같은 설정이 있다지만 그 묘사는 '안준호의 가정 환경이 안 좋음. 휴가 뺀 건 간부의 부조리임.' 이라는 선에서 그치니 비교가 안되고요. 그냥 안준호 개인사는 빼버리거나 시즌2로 미뤘어야 했다고 봅니다.

작품 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영상화가 너무 늦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작 만화가 연재된 시기는 2015년이고 한 해 전엔 군 가혹행위 역사에 잊혀지지 않을 두 사건이 있었죠. 그리고 웹툰이 영상화 되기까지 6년 동안, 이 시기는 군대 생활 환경에 있어 그 어떤 시기보다도 큰 변화가 있었던 때였고요.

솔직히, 가장 바뀌지 않는 것은 군대나 국방부보다 '군대는 바뀌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그리고 고정관념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탈체포조는 이미 없어지는 추세였고 이번에 공식적으로 폐지가 되었다는데도 'DP 뜨니까 부랴부랴 ㅉㅉ' 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런것을 느낍니다. 물론 얼마 전에 보도도 되었듯이 여전히 군 내 부조리와 가혹행위가 핸드폰 쥐어주고 월급 늘었다고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그것은 모병제를 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상당수 간부들의 인식 역시 수준 이하일 것입니다. 그러나 군 이슈를 둘러보며 제가 느끼는 것은 (자기 기억 속의) 국방부와 간부를 비난하는 모습이 현재 군복무를 하는 젊은이들에게 지지의 목소리라기보단 인생에서 만만히 욕할 상대 찾는 것에 가까운, 말하자면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감상입니다. 그 모습은 입으로는 NC를 누구보다 욕하지만 손은 킹쩔수 없지 하며 결제버튼을 누르는 린저씨들과 비슷한 걸지도요.

원작 만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당신도 목격자야.'
드라마는 같은 메세지를 전달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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