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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3/02/06 22:26:58
Name   아이솔
Subject   8년 프리터 수기


이제는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계기도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도록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지 말자.


대체 왜 그랬을까요.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학창시절과 성인기를 통틀어 사회란 개념은 저에게 있어 녹아들고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닌 버티거나 버틸 수 없는 것에 가까웠단 것뿐입니다.


스무 살에 저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또는 사회공포증을 얻었고 대략 스물다섯 살까지 방치된 채 눈만 껌뻑이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잡아먹고 나를 갇히게 만든 세상에 대한 증오와 나 자신을 단죄함이 반복되는,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부정하는 나. 그 시기에 적절한 돌봄을 받았다면 어땠을지 조금은 한스럽지만 정말이지 사치스럽고 이기적인 생각이라 밖으로 꺼낸 적은 없습니다. 집안에 진짜 환자가 있는데 자식된 자가 구체화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해봐야 부담만 가중될 뿐이니까요. 사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집안이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된 원인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아버지 탓을 하진 않습니다. 이제 와서 얘기해봐야 의미도 없고, 아버지 입장에서 바라보면 당신을 힘들게 했던 건 저였을 테니까요.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그렇게 1년 가까이를 보내다가 2015년 가을 50만원을 들고 고시원으로 나왔습니다. 알바 공고를 뒤져 호텔 단기 서빙부터 시작해 주점이나 고깃집 등에서 일을 하고, 틈이 생기면 생동성 시험에도 지원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하면 거짓은 아니지만 그러면 부지런한 청년의 분투기로 이야기를 윤색하는 것이 되겠죠. 실제로는 처음 2년 정도는 별다른 목표도 없으면서 몇 달 일하고 별 이유 없이 그만두는 것을 반복했고 일을 하지 않고 아버지나 할머니가 보내준 용돈으로 생활하던 기간도 있었습니다. 제 딴에는 세 달 정도 일해서 우선 돈을 벌어두고 그 만큼 쉬면서 공부를 하던 뭐를 하던 내 시간을 갖자, 뭐 이런 논리였던 것 같습니다만 물론 저에게 하는 핑계였죠. 그저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돈만 떨어지지 않으면 고요한 방에서 멍하니 있는 것이 여전히 좋았던 겁니다.


고시원 생활을 1년 좀 안되게 하고 현재 사는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앞서 말한 빈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야 돈이라도 버는 게 낫지 않느냐 하는 자각을 하고 이후로는 편의점에서 주5일 근무를 했습니다. 그 즈음해서 아르바이트 자리가 얼어붙고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지 사장이 몇 주에 한 번 와서 돈이나 바꿔주고 가는, 알바들끼리 교대하는 그런 방치된 매장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 초에 코로나가 터지며 폭증한 배달 수요에 전기자전거를 구입해 배달 일을 시작했고 중간에 편의점을 그만두며 실업급여를 잠시 타고 나서도, 배달 시장은 쪼그라들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동안 제가 살아온 짧은 일대기입니다.


남들이 세상과 교류하고 바운더리를 만들며 진로를 탐색할 때 저는 눈앞의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회피하는 방법에만 골몰했습니다. 실패한 사람 같나요? 실은 저는 이 사실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집 밖에 나가기도 힘들어 하던 그 때가 아니라 학창시절 때부터였다고 앞서 말했습니다. 단지 고등학생까지는 ‘좀 그래보여도’ 무관했고, 20대 초반과 중반에는 ‘그래 보여서는 아니’ 되었으며, 몇 번의 풍파를 거쳐 지금은 ‘그렇게 해도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 상태가 된 것 뿐입니다. 거쳐 온 일만 해도 처음에는 그래도 사람과 부대끼는 일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가끔 관제센터와 연락할 뿐 윗사람도 동료도 없습니다. 플랫폼 산업 너무 좋아요.


우울감에 빠진 사람에게 흔히 자신을 아껴주라 말들 하죠. 그건 저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방법이었습니다. 조증 유발 모노드라마 같아서요. 독립을 하고서도 불현듯 찾아오던 고뇌와 고통에서 마침내 해방된 것은 반대로 나 자신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타인이나 세상으로부터 대우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완전히 접고 나서였습니다. 요샛말로 ‘알빠노’ 정신이죠. 그래, 나는 누군가와 소통하기 글러먹은 인간이다. 쏘 왓? 그런 기회가 오더라도 이제는 싫다. 내게 할 수 있다 감히 말하지 마.


이렇게 나는 마침내 세상의 적대자가 됨으로 나의 (서두에 언급한) 무쓸모함을 완성하고 긍정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의 내가, 그리고 산재하는 아픈 영혼들이 세상에 분노를 쏟아내고 자기 비하를 하는 그 내면에는 세상에 끼고픈 마음이 가득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자책이나 비하의 늪에서 허우적대지 않습니다.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존재할 뿐이고 세상도 타인도 지옥이 아니라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내가 만약 돈이 없어 굶어 죽거나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운이라는 우주의 섭리일 뿐 아무 일도 아닙니다. 나에겐 그 어떤 불운보다 끔찍한 것이 나의 안전 구역으로 별 이유도 없으면서 스며들려 하는 사회의 침투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선언합니다. 펜스 투 에브리원.


그러나, 나는 신념적인 인간이 과연 맞을까요? ‘아무 의미도 없음’ 이라는 신념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걸까요? 나는 에피쿠로스주의자가 되길 원했는데 뭔가 뒤틀린 이 느낌은 어째서일까요?


나는 열여섯이었다. 열여섯이던 시절이 있었다. 열여섯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음 그 자체라고 믿는 나는, 나는 늙지 않았다. 실은,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수아즈 사강



저는 두렵고 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와 달리 무엇을 보았기에 저 같은 경계심 없이도 관계를 맺고 세상을 의욕있게 살 수 있는 것인지.
저는 두렵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 모든 것을 극복했다’는 나의 정신적 근원이 이 투쟁 영역의 확장 시대에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안한 것과 같다는 사실이. 비하당하는 게 두렵고 나의 약함이 다시 드러나는 게 두렵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될 날이 다시 오는 것이.


저는 두렵습니다. 두렵고, 두렵다는 게 지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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