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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1/17 16:32:37수정됨
Name   심해냉장고
Subject   수상한 가게들.
수상한 가게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지난 가을 도쿄를 여행하다가 '점내 이야기 일절금지(작은 소리도 안됨) 물론 사진촬영도 금지, 같이 온 일행이 식사를 먼저 끝내면 먼저 나가야 함, 핸드폰 보는 것도 금지, 큰 가방 휴대 금지. 자주 사장의 분조장 쇼가 펼쳐지고 천천히 먹고있으면 빨리 먹으라고 지랄을 한다는 카레집'을 우연히 찾게 되었습니다. 가보지는 않았고, 가볼 생각도 별로 없습니다. 좋은 카레집은 충분히 많으니까요(안타깝게도 그날 들른 카레집은 별로 맛이 없었기에 문제의 그곳이나 가볼껄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는 했습니다).

사장이 싸이코로 유명한, 이런 류의 가게들이 종종 있습니다. 한국에도 몇몇 가게가 있고, 저는 그 중 몇몇 가게들의 단골입니다(그리고 몇몇 가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생각해보니 일본에도 비슷한 단골 업장들이 있습니다. 제일 자주 들르는 술집은, 이를테면 40대 여성인 제 지인이 입장하려 하자 '여기는 젊은 여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는 좀 무겁고 칙칙한 곳입니다...'로 시작하는 굉장히 정중하지만 '당신을 손님으로 받고 싶지 않음'을 어필하는 곳입니다. 최근의 리뷰를 보니 강한 향수를 쓴 손님을 쫓아내고, 그에 대해 불만스러운 리뷰를 남긴 것에 대해 한 페이지짜리 장문의 글을 남기셨네요. 뭐 그러니까, 손님을 가려 받고, 상당히 엄격한 룰이 있는 종류의 가게들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이런 류 단골가게'의 제일 대표적인 곳 두 곳에서 마시는 동안 쫓겨난 손님들을 서른 팀 정도 본 거 같습니다(농담이 아닙니다). 뭐, 그런 가게들에 대해 끄적여볼까 하는 생각으로 글쓰기 버튼을 눌러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식의 영업 방침에 대해, 대승적으로는 동의합니다. 고지만 잘 된다면, 그리고 차별주의적 문제만 없다면 가게 같은 사적 공간의 운용 규칙이야 사장 마음이라는 입장이라.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 기인한 '개인사이트 pgr'이라는 멸칭을 저는 꽤 긍정적인 의미에서 좋아했는데, 공적인 공간이 아닌 이상 공간 운영의 규정은 책임 주체 마음이니까요. 개인/이용자인 내가 그게 싫으면 안 가면 됩니다. 물론 뭐 많이 싫으면 인터넷에 욕을 쓸 수도 있겠지요.

물론 소승적으로, 저는 빡빡한 규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저런 공간을 아주 강하게 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시끄럽고 늘어진 걸 좋아해서요. 하지만 사람이라는게 종종 다른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런 공간들을 종종 들르는 이유 중 하나는, 덜 피곤하고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혹은 충분히 맛있거나. 간단한 산수입니다. 규정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크면 가고, 아니면 안 갑니다. 저런 공간에 가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매저키스트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이유나 혹은 매저키스트 같은 복잡한 이유로 저런 곳에 가지는 않습니다. 어떤 가게는 저런 상황이 주는 불편보다 더 큰 장점이 있어서 단골이 되고, 어떤 가게는 저런 불편을 감수할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안 갑니다. 간단한 산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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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공간에 대한 리뷰들에서 제가 특히 주목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예찬하는 매니아들과 까내리는 안티들의 재미없는 글을 치워두고 보면, 대체로 맛 자체에 대한 평가는 괜찮은 편인데(그러니 일단 저렇게 운영해도 안 망했을 겁니다), 맛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얇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통 가게의 위생/정리 상태가 극단적으로 좋습니다. 여기서 제가 의심하는 건 역시 강박증입니다. 공간도, 주방도, 손님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백프로 통제가 되어야 하는 사람인 거죠.

맛에 대한 부정적인 리뷰들이 맛이 없거나 핀트가 나간 맛이 아니라 '맛이 얇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제법 흥미로운 요소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도 어떤 '레시피에 대한 강박'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잘 재현하고, 종종 재미있는 시도도 있는데, 뭔가 '깊이감'과 '응용성'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 특히나 이국적인 음식을 하는 경우 이 문제가 도드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의 일식이 본토와 한끗 차 정도까지는 따라간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양배추와 소고기와 계란의 문제가 결국 한끗 차를 만든다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향신료나 기법, 고급 재료는 한국에도 꽤 제법 충분해요. 역시 문제는 가성비 좋으며 기름기 많은 소고기나, 단맛 강한 양배추나, QC가 잘 되는 계란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게 이 '한끗 차'를 만드는 느낌. 일본에서 인도식 카레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고체 향신료나 기법은 파고들면 어케저케 손 닿는 곳에 있는데, 인도의 생 풀때기를 가져오는 건 불가능하겠죠. 여기서 '강박'이 재료 호환/활용성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문제는 결국 맛이 '얇아지는' 것이고.

아, 그리고 저런 가게의 리뷰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전에는 저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자영업 혹은 요식업이란 보통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멀쩡한 사람도 정신적으로/신경증적으로 맛이 가기가 쉽습니다. 조금 덜 멀쩡한 경우라면, 조금 더 맛이 가기 쉽겠지요, 아무래도.

사장의 강박적인/제멋대로의 공격적인 애티튜드가 문제적으로 도드라지지 않더라도, 종종 '레시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꽤 잘 하는 이국 음식점'을 가면 '맛이 얇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음식을 못하면 맛이 없죠. 잘 하는데, 뭔가 아쉬운 상황이 '얇은' 상황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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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약간 '빡센 가게를 뚫었다는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저런 가게들을 가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원래 사람들은 사소한 곳에서 작은 만족감들을 느끼고, 어려운 걸 해치운 건 역시 만족감을 느낄 만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조금은 괴상한 만족감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뭐, 조금은.

제가 좀 더 크게 괴상하게 느끼는 건, 역시 저런 가게들은 나름의 식도락가들에게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유명하다고 생각하는데(기본적으로 사장의 공격성/빡센 규정은 굉장히 큰 단점인데, 그럼에도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은 하는 가게라는 것이고, 화제성은 충분한 가게들 이다보니까), 그 친구들에게 전체적으로 '한국의 가게들은 듣도보도못한 개잡룰을 들이대는 쌍놈의 가게들이고 일본의 그런 가게들은 격조 높은 가게들'이라는 평가를 하는 듯한 냄새가 꽤 강하게 난다는 겁니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저는 그런 가게들이 서로 딱히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물론 가게들 간의 수준차는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한국의 그런 가게들은 일본 장인정신을 이상하게 배워서 코스프레하는 놈들이고, 일본은 진짜 장인이다'로 보이는 듯 합니다. 글쎄, 아무래도 저는 이상하게 보자면 둘 다 이상하고, 납득해보자면 둘 다 납득 가능한 느낌인데. 아, 아직 그 역(왜놈들은 썩은 놈들이고 한국인들은 예의를 아는 민족이다)은 보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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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꽤나 시끄럽고 부주의하고 규칙과 약속을 굴러가는 개똥 보는 듯이 살아가는 편인데(소주집에서 흥이 오르면 자주 옆 테이블 내지는 사장님에게 '죄송한데 톤 조금만 낮춰주세요'를 듣곤 합니다), 이상하게 이런 가게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습니다. 를 넘어 약간 사랑받는 편입니다(이를테면 저는 최근 저런 가게들 중 하나에서 무려 서비스를 받고, 이 사실의 전파로 미식가 친구들이 몇 있는 단톡방 두개를 찢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친구들 사이에 '실은 니가 돌아가신 그 사장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다' 에서부터 '수금 나온 야쿠자인 줄 알았나보지' '말을 해도 못알아 처먹게 생겼으니까 그냥 사장이 참은 거 아닐까' '너 존나 왜놈 미식가처럼 생겨서 그런 사장들이 좋아할거같은 관상임 약간 그런 사장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손님 아니냐' '니가 이상하게 가게 사장/근무자한테는 굉장하게 예의바르더라 동업자 정신인가 아무튼 그래서 안 쫓겨난듯' 등의 분석이 있었습니다. 뭐 대부분의 사회과학적 현상이 그렇듯이, 모든 분석들이 일편의 사실을 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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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쿠자셨읍니까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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