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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5/20 09:45:08수정됨 |
Name | 삼유인생 |
Subject | 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
한 번 정리해봐야지 하던 내용인데, 얼마나 자세히 제대로 분석해 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단 시작해봅니다. ----------------------------------------------------------- 0. 들어가며 '와. 한국 언론이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은 됐구나!' 2020년 봄, 기사 데이터 베이스인 빅카인즈에서 2005년 전후의 경제/산업/기업 관련 법안의 처리 과정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튀어나온 혼잣말이었다. 2020년 총선 직후,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했을때 나는 정책연구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내게 주어진 미션은 법학 전공 연구자 한 명과 함께 진보계열 정권 하에서 여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을때, 기업 규제 방향과 산업 정책 방향이 어떻게 설정되고 어떤 입법 과정을 거치게 될지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이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으나, 분명 하나의 사례로서 어떤 부분을 점검해야할지를 알려준다. 우리 연구팀은 2004년 탄핵 역풍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한 후, 1년이 지나 어떤 법안이 어떻게 추진됐는지,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결론이 났는지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읽게 된 한국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매일경제 등 조중동문을 제외한 다수의 신문 기사는 지금 우리가 보는 '정치적 광기'만 남은 그 어떤 진지한 고민도 없는 그런 기사가 아니었다. 정책을 설명하고, 왜 입법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지 누구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리고 있는지를 차분히 해설하고 있었다. 신문만 잘 읽어도 공부가 된다는 게 그때에는 사실이었다. 연구프로젝트 당시로 치면 15년, 현 시점에서는 거의 20년 전 시점이었던 걸 생각하면, 지난 15년~20년간 한국 언론이 얼마나 망가져왔는지 알 수 있다. 도대체 지난 십수년간 한국 언론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 인터넷, 소셜미디어, 정보공개청구와 언론의 추락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이 망가지는 과정은 주요 일간지들이 신문 전성기 시절 광고 수익에만 의존하며 조간/석간 동시 발행 무리수를 두던 때까지 올라간다.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다 하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 그래서 인터넷 등장 이후로 추려보고자 한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허가제였던 언론이 등록/신고제로 바뀌면서 언론사 난립이 시작됐다. 난립 이후에는 구조조정이 뒤따라야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그렇지 않았다. 오너 중심 재벌체제가 역설적으로 온갖 언론의 생명을 연장시켰다. 아무리 작은 언론사라도 오너 사진 하나 올리고 긁어대기 시작하면 홍보실에서 뛰어와 몇 백이라도 쥐어주기 마련이었다. 보호비를 뜯어내는 조폭비즈니스 모델이었던 언론은 마이너 매체를 중심으로 삥뜯는 양아치 모델로 바뀌어갔다. 메이저 언론은 다른 길을 찾는다. 몇몇 경제지들이 앞장섰다. 이른바 '포럼 비즈니스 모델'이다. 외국에서 유명 연사를 비싼 돈을 주고 대거 모셔와 하루 혹은 며칠짜리 포럼이나 컨퍼런스를 연다. 그리고 후원사로 온갖 대기업을 섭외해 협찬비를 받는다. 연사료를 비싸게 줘도 남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언론사는 심지어 세무조사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드물다. 이제 기자들은 기사보다 행사에, 특종보다 특집(별도 광고협찬 지면)을 중시하게 된다.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인원, 한정된 자원으로 여러 일을 수행하려다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신문과 방송 전반에 큰 타격을 준다.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기사만 보기 때문이 아니었다. 각자 자신의 미디어를 쥐게 된 진짜 전문가들이 신문과 방송 기사의 엉터리 전문가의 답정너 코멘트, 엉터리 분석과 엉터리 기사를 직접 비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취재해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는 환경, 진짜 전문가들에게 쥐어진 각자의 마이크. 이 두 가지가 언론의 권위를 급격히 추락시킨다. 언론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정보의 통로를 독점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법조, 경찰, 주요기관 기자실은 기자들끼리 투표를 해서 신생매체의 출입여부를 직접 결정한다. 그런데 이 출입처 시스템은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한다. 내부의 은밀한 얘기를 어떻게든 듣고자 한다면, 그냥 내부 사람과 친해지는 게 급선무가 된다. 검찰처럼 정보를 독점하고 하나씩 의도를 갖고 수사 과정을 흘려주는 방식을 쓰면 아예 출입처에 종속된다. 철저히 기자가 을이 된다. 나중에 무리한 기사였다고 해도 검찰 탓으로 돌리면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이 거듭되면 언론 신뢰가 점차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인터넷 보도자료와 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각종 채널, 정보공개청구와 소셜미디어 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등장으로 기자들의 출입처 시스템에 의한 정보 통로 독점은 꽤 오래전부터 깨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2. 영향력 착각, 전문성 착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과 방송의 데스크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다. 자신들이 늘 만나는 대기업 홍보실 임원과 정부부처 대변인과 국장들, 심지어 장차관들은 그들과 점심/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는 항상 '기사 잘봤다', '탁월한 식견의 칼럼을 잘봤다'고 띄워주기 마련이다. 사실 만난다고 하니까 아랫사람들이 대충 스크랩해서 준거 보고 온 것 뿐인데 말이다. 물론 마음 한 켠에는 독자는 늙었고, 예전처럼 언론의 영향력이 없다는 막연한 생각도 들고 알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이는 외면한다. 이 '영향력 착각'이 없으면 그 박봉을 견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 기자들은 다른 착각에 빠져 산다. 자신이 정치인과, 판검사와,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와, 대기업 임원 누군가와 밥을 먹고 술을 먹으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준 전문가라는 착각이다. 법조 용어 몇 개 안다고 법조인이 되는 것 아니고, 정치인과 밥 많이 먹었다고 정치인과 유권자들의 행태를 분석할 수 있는게 아니며, 기재부 국장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재정정책의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닌데 왠지 내가 많이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기자로서 진짜 필요한 전문성은 점차 약화된다. 상식을 기준으로 의문을 품고 비판적으로 사고 하고 이를 쉽게 다시 글로 풀어내는 기자의 전문성 말이다. 기자들 수준이 얼마나 많이 망가져 버렸는지는 다음 편에서 여러 사례로 설명하겠지만 정말 다양한 이유로 기자들의 전문성은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들이 만드는 신문과 방송의 기사 수준도 떨어져간다. (다음편에 계속)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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