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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05 13:21:34
Name   맷코발스키
Subject   검은 사제들 후기(미리니름 쬐금)

"악령을 김치에 싸서 드셔보세요"


급속한 경제 성장과 세계화는 바비인형과 맥도날드 뿐 아니라, 악령까지도 수입한 모양입니다. 이 조선에도 악마가 나타날 정도니 말이에요. 세계화 흐름에 맞춰 여기 등장하는 악령도 라틴어, 중국어, 한국어, 무려 3개 국어를 합니다. 괜히 '12형상'이라는 엘리트 악마 집단이 아닌 법이죠. 제 생각엔 기독교적 악이 서양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만연했다는 걸 보여주려고 중국어을 도입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언어권의 형평성을 위해 최소한 이슬람어나 힌디어도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중국어가 나왔다는 것까지만 해도 고무적이긴 하죠. 더불어 한국의 무속 신앙도 구마 의식의 한 종류도 나타난다는 점도 좋았어요.

세계화랑 맥도날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말해볼게요. 세계화가 각 문화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요. 다양한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점점 하나의 인스턴트 문화로 수렴할까? 맥도날드,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소위 서구식, 미국식 문화만이 남게 될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쉽게 대답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맥도날드도 나름 현지화 전략을 취한다는 거죠. 그래서 영화가 나오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게, 대체 한국에서 낯선 이 장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한다는 점이었어요. 퇴마, 오컬트 영화도 공식이 꽤나 잘 정립된 편이니 종래의 작품과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죠.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원작이 되는 단편 영화의 시놉시스가,

"최부제는 김신부를 만나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영신의 집을 방문한다. 그녀의 몸을 숙주 삼아 똬리를 튼 악마를 내쫓기 위해서다. 하지만 악마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김신부와 최부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신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이 처음인 최부제의 약한 마음을 공략해 그 힘을 더 키워만 간다. 최부제는 김신부를 돕는 ’12번째 보조사제’다. 그만큼 영신의 몸에 든 악마의 힘이 강력하다는 걸 의미한다. 악마는 특히 인간이 품고 있는 두려움을 공략해 그 힘을 키워 가는데 영화는 그 고리에서 한국사회의 병폐를 본다. 영신은 입시지옥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며 최부제는 군대에서 폭행당한 아픈 기억을 여전히 떨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까, 개인을 돌보지 않는 한국 사회는 악마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악마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활약은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12번째 보조사제>가 외형적으로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키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다."

입시지옥? 군대? 한국 사회의 병폐? 탁월한 전략이야, 12번째 보조사제! 그 정도면 오컬트 장르 중에서도 진지한 녀석들의 미덕도 놓치지 않겠군. 악은 선명하게 만연해있는데 선은 불확실한 개인의 믿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악마는 매순간 몸소 뻔질나게 움직이는 활동가요, 노동자인데, 도대체 신이란 놈은 하는게 없는 부르조아 녀석이란 말인가? 이성적이고 평온하고, 변하는 게 없는, 기계적인 현대 사회에 살던 주인공이 괴상망측한 전근대적, 마술적 세계를 마주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 풋내기 녀석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오는 긴장감 말이야. 거기에 한국 사회까지 비판한다고?

물론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검은 사제들>이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데 있죠. 왜 그런지는 이해가 가지만 <검은 사제들>은 원작에서 드러났을(원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지화 전략을 전면 취소했습니다. 사실 좀 다른 현지화가 되긴 했죠. 나쁜 의미로요. 대체 왜? 그건 진짜 끝내주는 소재들이었는데, 검은 사제들.
군대나 입시지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좀 평이한 배경을 각 인물들에게 부여했는데요. 신파적이고, 너무 뻔해요. 작정하고 영웅적 전개를 위한 것인게 보였어요. 덕분에 잘생긴 보조사제는 믿음이나 선과 악에 대해서는 별로 고찰하진 않네요. 그냥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괴상하고 끔찍한 것에 무서워하고, 극복해나갈 뿐이죠. 그리고 극복하는 동기도 단순히 과거의 부채의식을 청산하는 걸로 보이게 되어요. 어떤 내면적인 깨달음이나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요.
악마도 얘가 3개 국어를 하는 엘리트인데도 불구하고 종래 녀석들에 비해 인문학적 교양이 부족해보입니다. 자고로 악마들이란 좀 멋들어지게 이빨을 까야 재밌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콘스탄틴(영화)>처럼 작정하고 오컬트 세계를 주물럭거리는 재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요. 전반부의 호기심을 긁는, 너무 긁어서 지루할 지경인 전개를 보면 말이죠. <검은 사제들>은 <엑소시스트>와 <콘스탄틴>, 둘 가운데를 헤메는 것 같아요.


내용과는 별개로 전 이런 장르가 취향이기에 재밌게 봤어요.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1)강동원이 잘생겼다 2)이런 장르가 한국의 주류 시장에 나왔다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겠네요. 적어도 이 비슷한…무슨…장르의 다른 한국 작품들보단 나아졌잖아요. <맨데이트>, <퇴마록>은 정말이지 엄청난 작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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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넷 첫 글이네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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