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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9/07 10:18:12수정됨 |
Name | TEN |
Subject | 벚나무도 가을엔 단풍이 든다 |
가을이랜다. 길 걷다가도 선 채로 익을 듯한 더위를 너무오랫동안 지나온 탓인가, 사실은 딱히 시원해진 것도 아닌 아침 바람을 맞은 사람들이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금을 가을이라 부르며 선선하다 거짓말을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저 잘 버텨낸 이들끼리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지쳐가기만 할 순 없는 자기자신을 위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위로일 뿐인 것은 아니었던지 엊그제와 색이 다른 구름들이 높게 몽우리져서 떠오르는 모습은 조금 볼만한 풍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났던 가로수들은 조금 더 성급했나보다. 아직 뾰족한 햇살이 끓으며 맨살을 긋기위해 달려들건만 나무는 벌써 노란 빛을 보이며 단풍이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나무는⋯” 벚나무였다. 화려하게 흩날리는 꽃잎들로 가득했던 나무. 봄이었던 그 때의 기억이 분명하면서도 흐릿하다. 나무는 고요히 단풍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토록 조용하게 변해가는 가는 동안 나는 그 곳에 꽃이 피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짧고 찬란하며 모두에게 강렬했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다른 빛깔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내려 앉으며 기억이 떠올랐다. 내 청춘도 그랬구나. 내 인생도 잠시 빛났던 때가 있었다. 앙상하고 비루했던 시절을 겨우 이겨냈을 즈음. 그 사람을 만나자 벚꽃이 피는 날처럼 내 삶도 피어올랐다. 함께 걷던 길, 매일을 만났지만 웃음짓는 순간들, 손끝에 닿았던 지문의 감촉. 모든 것이 울긋불긋했다. 세상에! 내게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마주할 때마다 시간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는 듯 했다. 나는 그 순간이 반복되며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꽃은 지고 우리의 시간도 그랬다. 계절이 바뀌고 마음은 흩어졌다. 이별의 순간도 분명했지만 흐릿하다. 헤어질 땐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나 그리고 그 사람 사이엔 추억과 낙엽을 쓸어가는 바람만 불었다. 나는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 세월에 묻어두고 있었지만, 마지막 장면이 꽃잎 하나로 남아 마음 속에 놓여 있었나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벚꽃은 졌으나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그 사람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나는 내 길을 걸어왔다. 꽃이 지고 난 뒤에도 나무가 계절을 받아들였듯이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 벚나무를 보니 내가 잊으려 했던 그 순간들과 함께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때의 찬란함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단풍처럼 조용히 물들어 있었다. 가을이 오면 단풍이 든다. 청춘의 꽃은 이미 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들은 나름의 빛을 발한다. 꽃이 피던 시절의 찬란함은 없어도 그 자리에 새로운 계절의 색깔이 더해진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한때는 찬란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그 추억을 단지 아련하다고만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열흘 붉었던 나의 청춘을 스쳐간 그대여. 그대 없는 시절을 잊고 사는 삶이 되고 싶었지만, 이제 나는 오히려 너를 떠올리지 않으려 하네. 내 눈가에 단풍이 드는 만큼 그대의 꽃도 이미 졌고 잎은 색에 물들었겠지만, 여전히 목메이듯 아름답겠지. 오늘 나는 너를 이 길에서 다시 만났다. 정신도 차릴 수 없었던 여름의 끝, 깨기도 전에 나타난 당신을. 순간을 찬란하게 피어나고 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은은하게 물들어가며 살고 있을 그대를. 나는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한다. 벚나무도, 사람도, 계절이 바뀌면 새로운 색을 입는다. 가을을 맞이한 벚나무처럼, 나도 나만의 속도로 단풍이 들고 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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