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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09/07 21:29:16수정됨 |
Name | me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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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지금이 한국 정치사의 분기점일지도 모른다 |
한국의 현대정치사를 변증법적으로 파악한다면, 정(正)에 해당하는 쪽은 언제나 반(反)을 불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이 정(正)을 차지했기에 김구가 반(反)으로서 호명될 수 있었고, 박정희가 정(正)을 거머쥐었기에 김대중이 반(反)으로 일어섰으며, 전두환이 정(正)을 물려받았다면 노무현은 반(反)을 계승했던 셈이죠. 공화국이 다섯 번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동안 수많은 거인들이 명멸했지만, 위의 대립 안에서 파악되지 못한 이들은 결국 파괴력 있는 상징이 되지 못한 채 역사로만 남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대립의 꼭짓점으로서 어떤 흐름을 이끌었던 이들은, 정치가이기를 넘어 사상적 선명성을 이념의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데 성공하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징이 되었고, 이념집단을 불러모았고, 대중적으로는 존경과 향수의 대상이 되었지요. 물론 이것은 충분한 업적과 인상적인 서사가 모두 필요한 위업이며 하고자 한다고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끝부분, 생의 황혼기에 찾아오는 오욕과 무관심을 혁파시킬 충격적인 비극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이 국부로 인정받지 못한 반면 김구가 국민적인 추앙을 획득한 것은 아마도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김구와 유사한 종류의 비극을 마주했기에, 박정희 역시 그 커다란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파괴력 있는 상징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곧 비극의 힘이었으며 박정희는 가졌으나 김대중은 가지지 못한 상징서사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박정희는 18년 동안 한국을 지배한 것으로도 모자라, [ 1979년의 죽음 이후로도 30년 동안 ] 한국 정치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이른바 민주당계는 앞의 18년과 뒤의 30년, 도합 48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능동보다는 수동이었고 테제라기보다는 안티테제였던 셈입니다. 바로 그러했기에 수권능력을 의심받았고, 혹은 '주류'를 견제하는 역할만을 주문받았고, 때로는 '주류'의 발목이나 잡는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던 것이죠. 심지어 민주당계가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조차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주류', 즉 한국의 보수세력은 [ 언론이 박정희라는 상징을 통해 기업과 관료를 대중과 연합시킨 형태 ] 였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이 연합은 너무 공고하고 또 거대해서 정치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을 좌우 모두 부정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적어도 2009년까지는 그랬지요. 그 뒤로는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 말입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죽음은, 그동안의 많은 질곡으로 인해 실제로 저어되는 표현이지만, 그럼에도 분명 그가 생전에 이루었던 여러 성취보다도 더 큰 유산을 민주당계에 남겼습니다. 사상이나 정책 측면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씨앗을 뿌렸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국민들에게 인간적인 부채감을 심어줌으로써 [ 감성의 영역에서 확고한 지지 기반을 만들어냈다 ] 는 점이 그러합니다. 이것으로 민주당계는 마침내 박정희에 필적하는 상징을 얻게 되었고, 콘크리트에 비유되는 든든한 정치적 버팀목을 가지게 되었으며, 몇 번이고 여기에 의지하여 재기를 도모하고 마침내 권토중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2009년 이후 한국의 정치 지형은 더 이상 박정희의 만가(輓歌)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노무현이라는 상징이 박정희라는 상징과 치열하게 경합하며 민주당계의 상징 자본을 급속히 증가시켰기 때문입니다. 비극에 비극으로, 향수에 향수로, 감성에 감성으로 맞선 이러한 대결은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집권기 내내 이어졌고, 아래의 자료를 참고한다면 탄핵정국 이전에 이미 노무현 신뢰도가 박정희 신뢰도를 추월하는 양상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의 경합에 분수령이 된 것은 것은 역시 박근혜의 탄핵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아래의 자료에서는 2016년 말에 이르러 노무현 계열의 호감도가 박정희 계열의 호감도를 극적으로 압도하는 양상이 두드러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본다면 박정희라는 상징은 그것에 의지하여 탄생한 박근혜 정부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성공했다면 박정희라는 상징의 수명 역시 연장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박정희의 향수에 의지해 정권을 창출하는 길은 끊어져버리게 된 것이죠.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보수정당이 가졌던 전무후무한 상징 자본을 온전히 휘두를 수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정부였던 셈입니다. 한편 노무현의 경우에는 어떠할까요. 위의 자료들에 의거하면, 노무현이라는 상징에 대한 지지는 2017년 이후 문재인이라는 유사한 상징에게 일부 분산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산은 박근혜 정부 시기 박근혜에게로 분산된 박정희에 대한 지지보다 훨씬 규모가 큽니다. 이를 고려해 노무현+문재인이라는 상징과 박정희+박근혜라는 상징을 함께 비교해 보면, [ 2016년의 추월 이후 양자 간의 서열이 줄곧 유지되었다 ]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노무현이 박정희를 넘어섰던 것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 말기에는 양자 간의 격차만 줄어들었을 뿐 박정희라는 상징이 1위 자리를 탈환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는 노무현+문재인이라는 상징이 다시 반등하고, 박정희+박근혜라는 상징은 더욱 침체되는 양상이 나타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노무현과 박정희의 상징 대결에서 노무현이 승리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걸까요. 부분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에서 박정희라는 상징의 수명에 대해 다루었던 기준을 상기한다면, 노무현이라는 상징 역시 정치적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빛이 바랬다고 말해야 공평할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으로 박정희라는 상징의 정치적 위상이 훼손되었듯이,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면서 노무현이라는 상징의 정치적 위상도 훼손되었기 때문이죠. 물론 박정희와 노무현은 여전히 양당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지만, [ 이제 이들에 대한 향수에 호소하며 대권에 도전하는 길은 사실상 가로막혔다 ] 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근혜와 문재인이라는 정통 후계자들이 상징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실패했으니까요. 아래 만화에 대입하자면 박정희라는 기표는 37년 만에, 노무현이라는 기표는 13년 만에 무게감을 상실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꿔 말하면 [ 2022년에 이르러 대한민국이 마침내 20세기의 만가를 벗어났다 ] 는 이야기도 됩니다. 박정희는 20세기의 인물이고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86세대 역시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기반한 세력이었으니, 문재인 정부까지만 해도 한국 정치는 20세기의 유산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던 셈이죠. 그러나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승리함에 따라 노무현이라는 상징이 수명을 다했고, 그래서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20세기의 상징들에 호소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20년쯤 전에 와 있었던 21세기가 정치적으로는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서야 도래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제 보수정당의 대통령은 박정희를 내세우지 않고, 민주당계의 대표는 노무현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윤석열은 박근혜를 구속시킨 장본인이고 이재명은 친노였던 적이 없으며 친문도 아닙니다. 이처럼 둘 모두 기존의 상징자본을 온전히 물려받지 못했기에 2022년의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었고 그 대선으로 탄생한 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층도 이전보다는 그 수효가 줄었습니다. 물론 이번 정부의 특수성도 한몫했겠지만, 그 특수성 역시 어쩌면 [ '최초의 21세기적 정부' ]라는 윤석열 정부의 조건에서 상당 부분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작금의 한국 정치는, 어쩌면 새롭게 태어나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20세기의 만가가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이 냉각기는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진공상태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일 진공상태가 아니라 잿더미라면 어떨까요. 국민들의 마음속에 뿌리박혀 있던 거목들이 불타 없어지고 남은 잿더미라면 어떨까요. 그 잿더미에서는 다시금 새싹들이 발아할 것이고, 그중 몇몇은 또다시 거목으로 자라날지도 모릅니다. 다섯 번의 공화국이 아니라 87년 체제를 거치며 성장한, 20세기의 이념을 답습하는 대신 21세기의 담론을 주도하는, 저성장 시대의 선진국 대한민국에 걸맞는 그런 거목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 지금을 돌아본다면, 그때의 우리는 오늘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 제6공화국 정치사의 후반전 ] 이 시작된 시기였다고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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