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1/09 08:52:45
Name   OshiN
File #1   b0039626_11121614.png (13.1 KB), Download : 3
Subject   마인밭 뚫던 저글링의 헛소리


얼마 전, 북한의 지뢰도발로 인해 국군 부사관 두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부상당한 와중에도 동료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폭발로 다리를 잃은 모습에서 서글픔과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는데요. 최근 민간병원 진료비 지원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마치 제 다리가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불과 몇 달 전에 발목지뢰를 한 발자국 차이로 밟을 뻔한 병사였기 때문이지요.


공병부대에서 복무했는데요, 지뢰제거작전 인원을 차출한답시고 싫어하는 애들 윽박질러가면서 데려가 놓고 온종일 그늘 하나 없는 불모지에서 하루종일 죽도록 굴립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면 못 데려간다는 규정은 개나 줍니다, 안 그러면 머리수가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러고선 '저희 지뢰탐지기로는 발목지뢰는 탐지가 안 되는데 어쩝니까?'(실제로 대부분의 부대에 보급된 지탐기로는 탐지판을 실재 발목지뢰에 딱 붙여놔도 경고음이 뜨질 않습니다, 경험했지요)라고 물어보니 '응, 다리 날아가고 국가유공자 되는거야, 잔말말고 닥치고 걍 해 ^^' 라고 대답하는 꼬라지를 보곤 뭐, 사후처리도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인밭 뚫는 저글링 취급이었단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좀 더 얘기를 해보자면, 제가 겪은 곳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장비를 투입할 땐 방호기능이 전무한 일반 굴삭기 및 도자를 사용했습니다. 확실히 중장비로 땅을 한번 뒤엎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서 승무원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이 고려되진 않더군요. 다들 '커다란 굴삭기에 타고 있음 안전하겠지 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글쎄요. 장갑차도 전복시키는 위력의 대전차지뢰의 위력을 얕보는 건지, 대인형 지뢰의 파편이 콕핏을 뚫고 들어올 경우는 생각하지 못하는 건지. 지들 딴엔 밟아도 무한궤도만 날아간다고 안심시키지만(실제로 궤도만 박살나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애초에 지뢰화와 덧신만 신으면 발목지뢰를 밟아도 뼈에 금만 간다고 떠드는 애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좀... 게다가 장비를 써도 뒤엎은 흙에서 지탐기를 돌리기 위한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한데 얘네도 구형 지탐기를 쓰고 있는 이상 발목지뢰의 위험에 노출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도 사람만 데리고 돌리는 것보단 낫지 않나 싶어요, 지뢰를 육안으로 찾아낼 확률도 대폭 늘어나고. 아참, 지뢰화를 신으면 안전하지 않냐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 맨발로 밟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래도 확률성이 짙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들은 실험 및 피해사례를 종합해봤을 때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고, 실제 지뢰화 품질도 조악합니다. 게다가 지뢰화와 덧신을 한꺼번에 신으면 발이 너무 아프고 움직이기 힘들어서 전투화에 덧신만 씌우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여담으로 지뢰제거작전이 중대장의 소령진급심사일 이전에 끝날 수 있는가 여부가 병사들이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따라서 병사들을 지뢰지대로 얌전히 끌고가기 위해 '위험은 극히 희박한 확률일 뿐이며 거기에 연연하면 쫄보새끼'라고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은연중에 퍼졌는데, 정말 싫었습니다. 병사야 죽든 다치든 자기들 돈으로 보상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음 교환하거나 반품하면 그만인가 싶더군요. 현역부적합심사를 받는 선임을 인솔하는 소대장이 '반품하러 간다'고 표현했던 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윤일병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 어떤 애가 냉동을 먹다 맞아죽었으니 앞으로 냉동 먹을 땐 평소보다 1분 더 데워먹으란 지침을 내린 것도요.


다시 돌아와, 저도 규정상의 이유로 부상당한 부사관의 민간진료비를 지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그들의 슬픔과 앞으로 그것을 마주할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국가가 지금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보일 필요가 있단 건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훨씬 더, 아주, 엄청나게 많이 노력해야 돼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장병들을 위해 처우 및 장비를 개선할 생각은 하는지, 군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의지는 있는 건지(하지만 저는 군병원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못 미덥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실제로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심장수술을 군병원에서 받고자 했습니다. 가정형편상의 이유가 크지만), 실제 부상 발생시 매뉴얼은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지, 또 그대로 수행할 역량이 있는지 등, 아직도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솔직히 어떤 부분은 개판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딸랑 21개월 의무복무했던 병사로선 모르는 부분도 많기에 침묵하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 우린 1회용 소모품이므로 다치면 그대로 버려지니 X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당연하고 뻔한 얘기같지만 당최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분하고 갑갑할 뿐입니다. 장병들의 생명이 높으신 분의 골프채보다 하찮게 여겨지지 않을 그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군대에 대해 피해의식을 잔뜩 품은 어느 저글링의 멍멍이소리였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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