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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10 00: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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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조각글 3주차] 그 날 밤의 술집
안녕하세요, 갑툭튀라 죄송합니다. 조각글을 공지해주는 얼그레이의 친구입니다. 카톡을 하다가 이번 주제 얘기가 나와서 얼결에 일회성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판타지, 무협, 이런 소설류를 엄청 좋아해서 원래 재미있겠다 싶어 휘릭 써서 친구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올리라고 하는 말에 홀라당 넘어갔습니다... 이 친구 합평이 너무 대단해서... 한 편만 실례합니다. 사실 구상한 긴 소설의 일부분을 써 왔어요. 부디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으시다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눈을 깜빡였다.

문을 열고 뛰어든 것까지는 좋은데, 뭐랄까 상상했던 광경이 아니다.

“이봐 형씨, 그 망토 멋지구만! 한잔 할텨?”

“그쪽 오빠 몸 죽이는데? 내가 한 잔 살게요!”

“거기 아가는 술 마셔 본 적 있니? 주스라도 줄까?”

요염한 검은 머리의 미녀가 고혹적으로 웃으며 빈 잔을 흔들어 보이자 주변에서 호쾌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서는 각자의 잔을 들어올리며 건배했다. 다소 불쾌하게 여겨질 수 있는 언행이었지만 사심이나 비웃음은 전혀 담기지 않은, 생각보다 담백한 말과 웃음이었다. 그들은 아연한 얼굴로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오셨나 봐요? 어디든 빈자리에 앉으세요. 여기는 우리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유일한 펍(Pub)이니까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작게 웃은 여자가 뒤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붉은 머리에 초록색 눈동자가 선명한 미인이었지만 어딘가 지배하는 자 특유의 위압감이 있었다. 얼결에 빈 자리에 앉으면서 그들은 다시 주위를 불러보았다. 흉터가 가득한 상반신을 탈의하고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거한, 눈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야하게 입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옆에 앉은 남자의 등을 짝짝 내리치고 있는 여자, 조용히 작은 잔에 담긴 술을 홀짝이고 있는 하얀 머리에 투명하다시피 한 하늘색 눈을 가진 소녀, 흥에 겨워 테이블 위로 올라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는 되도 않는 춤을 추고 있는 남자, 도저히 한 곳에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작은 테이블에, 그들이 찾는 사람이 있었다.

단정하게 검은 정장과 흰 와이셔츠를 차려 입고 술을 마시… 쌓아놓고 있는 여자는 분명 그녀였다. 그들은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작은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인 빈 병들은 여전했다. 그녀는 아예 병째로 술을 물마시듯 퍼 마시고 있었다.

콰앙

“야-!!”

굉음이 울렸다.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소리에 그들도 시선을 돌렸다. 힘차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는 거대한 대검을 등에 매고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가 장난기와 흥분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문 가까이에 있던 몇 사람이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체를 했지만 남자는 대꾸도 없이 몸을 날렸다.

콰-아-앙-

“반갑다, 새끼야! 만났으면 붙어야지!”

눈 깜짝할 새에 남자는 등에 맨 대검을 뽑아들고 내리쳤다. 그녀의 머리 위였다. 너무 빨라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굳었다. 그리고 막 조니워커를 딴 그녀는 가볍게 왼손을 들어 올려 검을 막았다. 굉음과 함께 검이 멈췄다. 가느다란 팔목에 감겨 있는 작은 사슬이 대검을 막아낸 것이다. 순간 풍압으로 옆 테이블의 잔이 넘어져 술이 흘러내렸다. 양손으로 잡은 대검과 팔찌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작은 사슬이 감긴 한 팔의 힘겨루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 그들은 격분해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화가 나서 지른 소리는 바로 터진 함성 소리에 묻혀버렸다.

“와아아-!!”

“오오, 이게 얼마만이야! 반가운데!”

“오자마자 또 붙는 거냐? 야야, 천… 몇 번째더라. 또 던져지고 싶은 거지?”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익숙하다는 듯 반갑게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에 그들은 눈을 끔뻑였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지금.

피식 웃은 그녀가 그새 비운 술병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의자를 짚고 몸을 돌려 남자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뒤로 젖힌 남자는 대검을 들어 올려 다시 내려쳤다. 이번에는 가볍게 피한 그녀가 대검의 옆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거의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소리가 울리며 두 사람이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허공에서 자세를 잡고 긴 테이블의 위로 내려섰다. 두 사람이 테이블 위로 쭉 밀려나며 접시와 잔 몇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

남자는 테이블에 대검을 박고 밀려나는 몸을 붙들었다. 씩 웃고 있는 얼굴에는 가릴 수 없는 호승심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을 가볍게 몇 번 차며 뒤로 물러났다. 검은 구두가 붉은 와인이 반쯤 담긴 글라스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천천히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서자 기우뚱 글라스가 기울어지며 반쯤 남은 와인이 아슬아슬하게 찰랑거렸다. 빛을 반사하는 유리잔 위로 똑바로 몸을 세운 그녀가 피식 웃었다.

“선공?”

“씨발, 언제까지 선공이야, 됐거든?”

거칠게 말을 내뱉은 남자가 다시 대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까닥 하고는 뛰어올랐다. 맑은 소리를 내며 핑그르르 돈 글라스가 한 방울의 와인도 흘리지 않고 다시 섰다.

“테이블을 치워! 자리를 만들어!”

“난 오늘은 저 녀석이 한 방 먹인다는데 걸겠어!”

“무슨 소리, 이번에도 오 분을 못 버틸걸?”

“아냐, 그래도 십 분까지는 버틸 자신이 있으니까 왔겠지!”

멍하니 서서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을 두고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일어나 테이블과 의자를 빼고 가운데에 공간을 만들었다. 난데없는 싸움에, 말리지도 않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에 당혹해하는 그들을 누군가가 잡아당겼다. 아까 그나마 설명 같은 말을 해 준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그 옆에는 옅은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가 있었다.

“연례행사 같은 겁니다. 두 사람 다 노는 거예요. 걱정 말고 이쪽으로 오세요. 이대로 싸움판이 벌어졌다가는 테이블도 의자도 남아나지를 않거든요.”

“어… 말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위험해야 말리죠. 워낙 현격하게 실력차가 나서 말릴 필요도 없어요. 우리는 신나게 옆에서 구경하면 돼요. 그녀는 나서는 건 싫어하지만 이럴 때 만큼은 화려하거든요.”

그녀를 잘 안다는 말투에 뭔가 물으려던 참이었다. 거의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연속적으로 났다.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거의 키만 한 대검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물러나지 않고 그 검격을 일일이 손으로 쳐내고 있었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에 그들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과는 이렇게 싸운 적이 없었다. 지금 보니 그녀가 얼마나 그들을 봐주며 싸움을 피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오늘은! 꼭! 한! 방! 먹이고! 말겠어!”

폭풍처럼 검을 휘두르며 남자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끊어 외쳤다. 그러자 뒤에서 함성이 울렸다. 응원한다기보다는 거의 놀리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에 웃는 소리도 들렸다. 지금까지 왼손으로 받아치기만 했던 그녀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해봐. 그럴 만 한 실력이 있다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뒤로 주욱 밀려났다. 받아치기만 하던 그녀가 순간적으로 검을 들어 올리느라 빈 가슴을 한 방 때린 것이다.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선 그녀는 뒤로 덤블링을 하더니 벽에 장식용으로 걸려 있던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예쁜 붉은 곡선이 그려진 단검은 유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도저히 전투용이라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녀의 손에 들리니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냈다. 크게 숨을 들이켠 남자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그녀도 허리를 숙이고 같이 달려들었다.

챙-챙-챙- 타앙-

유리와 대검이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검격이 오고갔다. 대검이 크게 휘둘러지며 바람을 일으켰다. 역수로 잡은 단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붉은 잔상이 남았다. 마치 춤을 추듯 스텝을 밟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작은 유리 단검과 대검이 부딪치는데 오히려 밀리는 것은 대검 쪽이었다.

쨍-!

엑스자로 교차한 단검과 대검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검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깝게 다가갔다. 둘 다 웃는 얼굴이었다. 교차되어 있던 단검이 더 낮게 누우며 한 자루가 스르르 빠져나가 검면으로 남자의 가슴팍을 쳤다. 쳇, 하며 몸을 뒤로 뺀 남자가 반 바퀴를 돌며 발차기를 날렸다. 팔꿈치로 받아친 그녀가 남자의 손목을 잡고 뒤로 집어던졌다. 공중에서 몸을 가눈 남자는 벽을 발로 차고 다시 달려들었다.

강한 힘으로 내려치는 것이 장점인 대검이었지만 작은 단검 두 자루는 자잘하게 부딪히면서 힘을 감소시켰다. 내려오는 대검을 세 번 끊어 올려쳐 멈추며 반 발자국을 옆으로 움직였다. 약간 휘청거린 틈을 놓치지 않고 어깨를 어깨로 밀자 남자가 휘청거렸다. 쌔액, 하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대검의 옆면을 후려쳤다.

“익! 젠장!”

“대검치고 힘도 스피드도 부족하다! 못 막을 한 방을 날리던가, 아니면 속도를 따라오던가!”

“야 이… 그게 말처럼 쉽냐!”

“해야지!”

어린애처럼 투덜거린 남자가 오른쪽 발을 조금 더 넓게 디뎠다. 꽝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무거웠다. 남자는 전력을 다해 대검을 휘둘렀다. 은빛 검날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리며 대검이 선만 남기고 사라졌다. 반 발자국 다가간 그녀가 단검을 뻗었다. 투명한 유리에 흐르는 붉은 곡선을 따라 붉꽃이 화르륵 타올라 곧 잔상만 남았다.

챙챙챙챙챙쨍챙챙

너무 빨리 부딪혀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실제 부딪히는 것보다 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귀에 거슬리는 끼익거리는 소리가 아닌, 마치 풍경 같은 예쁜 소리였다. 그녀가 검을 미끄러뜨리지 않고 끊어서 받아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이제 푸른 선과 붉은 잔상이 뒤섞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풍압으로 바람이 일어날 때마다 푸른 기운의 날카로운 기세와 붉은 불꽃의 더운 기운이 훅훅 날아왔다. 푸른 보석이 달린 화려한 검을 만지작거리던 붉은 머리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많이 늘었네?

쾅!

아까 문짝을 때려 부수다시피 한 소리 만큼이나 큰 소리가 울렸다. 충격에 뒤로 날아간 남자가 비틀거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착지했다. 검날을 뒤덮었던 푸르스름한 기운이 천천히 사라졌다. 무리하게 힘을 준 손목이 벌겋게 붓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허리를 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불꽃이 너울거리다 잦아들었다. 누구의 승리인지는 명백했다.

짝짝짝짝짝

삐-익! 휘-익!

“여전한걸!”

“이번에도 오 분을 못 버텼어! 하지만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나아졌지?”

“그러게. 내가 이걸 보려고 매일 여기에 온다고!”

“나도!”

함성소리에 박수소리, 휘파람 소리까지 섞여 펍이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볼을 잔뜩 부풀렸지만 나름대로 후련한 얼굴로 일어서는 남자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까 아직 안 된다니까! 십 초씩 더 버티고 있지 않아? 좀 더 잘 해보라고! 오늘은 내가 쏜다! 고기 먹어, 고기! 으하하하! 내가 이거 보는 맛에 네녀석을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단검 두 자루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빌려 쓴 유리 단검은 기스 하나, 실금 하나 없이 멀쩡했다. 사람 키만한 대검을 받아친 데다 불꽃을 둘렀던 것치고는 놀라운 일이었다. 유리 비슷한 쇠가 아니라 진짜 유리 단검이었다. 단검을 뒤집어서 꼼꼼히 살펴본 그녀가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보지도 않고 뒤로 휙 던졌다. 두 자루의 단검은 원래 있던 벽장식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달각거리며 걸렸다. 그녀가 가볍게 손목을 돌리며 발걸음을 떼자 그녀가 앉아 있던 테이블을 밀었던 사람들이 다시 테이블을 가운데로 옮겨 주었다. 그들은 웃으며 그녀에게 맥주를 건네려다 아차, 하고는 와인잔을 건넸다. 그녀는 맥주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오늘도 대단했어! 다음번엔 창으로 부탁하지!”

“그럼 새걸로 벽에 걸어 놔요, 가져다 쓸 테니.”

“크하하하! 내꺼 빌려주면 안 되나?”

“남의 애병에 손대는 취미는 없습니다.”

무심한 목소리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들은 망설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아는 것 같았다. 가서 말을 걸어도 될까. 그들은 어쩌다 이런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몰랐다. 그리고 사실 그녀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알기 위해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지만, 저렇게 웃는 얼굴로 편안해 보이는 그녀를 보니 분위기를 망칠까 봐 가까이 가기가 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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