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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12/24 17:51:53
Name   다마고
Subject   환율, 부채, 물가가 만든 통화정책의 딜레마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둘러싼 논의를 보면, 여전히 관심이 “금리를 언제 내릴 거냐”, “추가 인상이냐” 같은 단기성 이슈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국면은 조금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 개별 정책 수단 하나만 보는 대신, 정책이 어떤 제약조건과 인센티브 구조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금리 자체보다도, 통화 및 재정정책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어떤 기대 구조와 신호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거지요.

해외 사례를 보면, 재정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거나 정책 체제의 일관성이 흔들릴 때, 통화정책이 의도한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금리를 조정했는데 환율과 금융시장이 기대한 방향과는 반대로, 더욱 불안정하게 반응하는 경우조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책 수단 그 자체보다, 그 정책이 어떤 맥락 속에서 해석되고, 당국이 어떤 유형의 행위자로 인식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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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역시 단순히 “높다” “낮다”로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충격이 왔을 때 환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여러 요인이 작용합니다. 물론 신뢰가 유지되는 환경에서는 시장 반응이 펀더멘탈을 따라 비교적 질서 있게 이루어지지요.

하지만 많은 경우에 환율은 “이 상황에서는 보통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정상일까”라는 시장참가자들의 기대형성에 의해 결정되곤 합니다.

이때 기대가 불안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작은 정보에도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변동성 자체가 하나의 ‘상태’로 굳어버리게 되지요.

요즘 한국 환율 논의가 단순한 절하 논쟁을 넘어서 “왜 이렇게 시장이 예민해졌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잊기쉬운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환율은 단순한 무역변수가 아닙니다. 환율은 현재를 조정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제약조건을 함께 만들어내는 변수입니다. 환율이 움직이면 어떤 가계가 더 경제적 충격에 취약해지고, 어떤 기업의 수익성이 더 큰 영향을 받을지, 혹은 대외자산 포지션을 통해 향후 정책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까지 함께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처럼 민간부채가 적지 않은 경제일수록 이런 효과는 더 강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민간부채가 단순한 현재 위험 요소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책 자유도를 줄이는 구조적 상태변수로도 작용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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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지금 한국 경제의 정책 환경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환율위기의 전조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정책당국이 제약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가계부채, 대외 포지션, 환율 변동성이라는 세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이미 정책 선택공간을 상당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동합니다.

“이번에 금리를 내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정책이 어떤 원칙 아래 운용될 것이며,
그 원칙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기대 구조로 전달되는가라는 질문으로요.

이 관점에서 보면 정책당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먼저,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이라는 기준을 명확히 유지해야 하지만, 특정 부문에 과도한 부담을 집중시키지 않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환율은 특정 수준을 ‘방어 목표’처럼 붙들기보다는, 불필요하게 변동성이 증폭되지 않도록 반응 메커니즘 자체를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통화와 재정의 조합은 단기 부양 논리에만 갇히지 않고, 성장과 생산성 경로와 일관되도록 정렬될 필요가 있습니다.

가계부채 문제 또한 ‘빨리 줄이자’식 접근보다는, 가계가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점진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 모든 방향이 결국 정책 체계에 대한 일관된 서술과 신뢰 가능한 신호를 보내기 위한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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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불편하지만 짚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최근 논의를 보면 시장 불안이나 환율 변동성을 두고, 지나치게 개인 투자자나 이른바 ‘서학개미’에게 책임을 돌리는 시각도 보입니다. “과도하게 위험자산에 몰렸다”, “환율 불안을 스스로 키웠다”는 식의 서사를 말합니다.

정책이 일관되지 않고 미래 경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에게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문제는 그 합리성이 안정적인 기대 구조 위에서 작동했느냐, 아니면 불안정한 정책 환경 위에서 작동했느냐입니다. 만약 후자였다면, 책임을 시장이나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솔직히 책임 회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정부가 조금만 더 강하게 개입했으면 됐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강한 개입은 단기적 안정을 달성할 수 있지만, “정부가 결국은 뛰어든다”는 잘못된 학습을 남기고 더 위험한 행동을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개입의 강도 자체보다, 어떤 원칙 아래에서 언제 개입하느냐, 그 일관성을 시장에 확실히 전달하는 일입니다.

오늘 있었던 구두개입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율이 충격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불안이 자기강화적으로 작동하는 시기에는, 과도한 기대 형성을 차단하는 신호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개입이 단기적으로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충분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개입이 매번 ‘특별한 이벤트’로 소모되기보다는, 미리 설정된 정책 원칙을 반복 확인하는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이 될 때 훨씬 더 강력한 정책 신호가 됩니다. 시장이 정책당국을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로 보느냐, 아니면 “원칙을 가진 행위자”로 보느냐가 바로 여기서 갈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은행의 기본적인 스탠스는 비교적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가 안정이라는 기준을 지키면서, 동시에 국내 경기와 금융안정을 함께 고려하려는 태도는 인센티브 구조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렇지만 최근 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국면에서, 괜히 즉각적인 대응에 끌려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특정 결정 하나가 아니라, 정책이 향하고 있는 경로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의 핵심 쟁점은 특정 정책 수단 하나를 잘 쓰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책이 작동하는 신뢰의 인프라가 튼튼한지, 그 위에서 책임이 얼마나 시장과 정책당국 사이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나누어지고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시장은 정책당국의 입이 아니라 발자취를 봅니다. 이 발자취가 일관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할 때, 불안은 잦아들고 통화정책은 비로소 단기 처방전 남발이 아닌, 진정한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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