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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10 16:46:37
Name   매일이수수께끼상자
Subject   [어쩌면 조각글 7주차?]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안녕하세요.
밑에 '범준'님께서 쓰신 조각글 7주차 주제 중에 죽음과 관련된 것이 있어서...
게다가 중2스럽게 쓰라고 하셔서,
이게 조각글 7주차 주제가 맞는지, 제가 참여 대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자 적어 참여해봅니다.
혹시 뭔가 제가 혼동했다면, [조각글] 태그를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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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큰 방에서 아이들을 재우던 아내가 곤혹스런 얼굴로 작은 방에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나에게 와서 소곤거렸다.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무슨 소리?”
“와봐. 이상해.”
같이 침대로 올라가 벽에 귀를 기울였다. 신음소리와 침대의 그것으로 들리는 용수철 끼익 대는 소리, 남녀의 낮은 탄성 등, 이게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다가 낯선 여성의 꺄악 하는 소리에 우리 부부는 도망가듯 귀를 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인지 실제 상황인지 구분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나 역시 아내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 같았다. 아차 싶었다. 이사 올 때 수압과 방범창 등은 확인했는데 벽들의 방음 상태까지는 확인해보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그쪽 벽이 이제 30개월 된 딸의 자리였다는 것이다. 벽과 떨어진 침대 반대편에서 재우자니 잠버릇 심한 딸이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게 걱정이고 바닥에서 재우자니 그곳은 내가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과 함께 자는 곳이었다. 아들을 침대에 올릴 수도, 그렇다고 자다가 금방금방 깨서 우는 두 녀석을 같이 붙여 재울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소리가 날 때마다 딸에게 ‘생명 어쩌고...’하며 교육을 시도했다간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급한 대로 난 아들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고, 곧 죽어도 엄마랑 자겠다는 딸은 엄마와 큰 방에 남았다. 며칠 그렇게 잤다. 그러나 아내의 증언에 의하면 옆집 분들은 굉장히 왕성했으며, 벽에서 떨어져 잔다고 해도 사실 주위가 조용한 밤과 새벽엔 그분들의 왕성함이 안방 전체에서 울리기 시작했고, 작은 방은 네 식구를 수용하기엔 너무 작았다. 그 소리를 피해 우리는 마루에서 자기도 하고 작은 방에 애들을 들여보내기도 했다. 작은 집에서 우리만의 피난이 매일처럼 이어졌다.

그렇다고 옆집으로 가서 ‘밤에 그거 좀 살살...’이라고 설명을 할 수도 없었다. 일단 남의 사생활 깊숙이에 관여할 자격이 우리에겐 없었고, 사실 그들의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만큼 우리 어린 녀석들의 밤낮 가리지 않고 칭얼거리고 울고 소리치는 소리 역시 그들에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참아주는 건 그 집일 지 모른다는 걸 아내와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방음 시공은 비쌌고, 여긴 전셋집이었다. 옆집분들이 권태기를 맞거나 이사를 하거나 왕성함의 시간대가 바뀌거나 하기를 바라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였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그분들의 뜨거움에 안방에서 놀던 아이들을 화들짝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길 수십 번, 점점 안방으로 들어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다만 우리 집에서 에어콘이 있는 곳이 유일하게 안방이라 여름엔 어쩔 수 없이 안방에서 지내야 했는데, 그분들도 더위에는 약했는지 다행히 우리 에어콘 가동 시간과 그들의 건강 가동 시간이 겹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지고 에어콘 코드가 뽑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안방은 다시 섬처럼 고립되어 갔다. 잠은 자야 했으므로 기본적인 방한만 했을 뿐이었다. 마루에서 밥을 먹고 작은방에서 놀고 정말 졸려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야 안방으로 들어갔다. 벽에서 소리가 나기 전에 모두 잠이 드는 게 우리 식구의 미션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다 지나가기도 전, 며칠 조용하다 싶더니 옆집이 이사를 가버렸다. 안방과 우리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우린 그날 오랜만에 삼겹살을 구웠다. 난 아이들을 양팔에 안고 안방에 뛰어 들어가 침대 위에서 레슬링을 했다. 잠겨 있던 안방의 보일러 밸브를 다시 열고 드디어 봄이 왔다고 따듯해진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물론 더 왕성한 사람들이 이사 올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제 우리가 장기적인 복안으로 희비의 감정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게다가 1년 동안 그 집에 아무도 이사를 오지 않은 채 다시 겨울이 왔으니 그날 기쁨이 섣부르거나 근시안적인 건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다.

1년 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안방은 우리의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아내와 나는 작년에도 그러했듯 벽에다 뽁뽁이를 둘러 바르고 방한 텐트를 침대에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겨울 준비까지 마쳤다. 아이들 장난감 싱크대며 안 쓰는 서랍장도 벽에다 붙여 외풍을 이중 삼중으로 막았다. 아빠가 전기장판까지 가져다주셔서 우리에겐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큰 방에서 아이들을 재우던 아내가 곤혹스런 얼굴로 작은 방에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나에게 와서 소곤거렸다.
“벽에서 물이 나와.”
“물? 무슨 물? 말이 돼?”
“와 봐. 이상해.”
같이 침대로 올라가 벽을 살폈다. 뽁뽁이가 흥건히 젖다 못해 그쪽 벽에 닿아있던 침대 이불보까지 다 축축해질 정도였다. 말로만 듣던 결로현상이었다. 급히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건 집 구조의 문제라 매일 닦아내는 수밖에 달리 해결법이 없다고 한다. 결로 방지 페인트라는 게 있긴 하지만, 밝혔다시피 여긴 전셋집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뽁뽁이를 떼어 마른 걸레로 벽을 닦았다. 테이프가 젖은 벽에 붙지 않아 압정으로 뽁뽁이를 고정하고, 물방울이 맺히면 다시 다 뽑아 걸레질을 시작했다.

그러기를 며칠, 우연히 주인집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올해 유난히 추운가 봐요. 작년엔 안 그랬는데, 결로현상이 심하더라고요.”
“그래요? 벽에 물이 생겨요?”
“네. 한쪽 벽이긴 하지만.”
“응? 어느 쪽?”
“그 빈 방 쪽이요. 옛날에 이사 간 집.”
“그래요? 그거 참 희한하네. 작년엔 안 그랬어요?”
“네. 작년엔 안 그랬을 거예요. 아마...”
“작년에 그 집도 그 벽에서 결로현상이 심하다고 나간 건데...”

이상하게 그 집도 작년에 결로현상으로 나갔다는 말이 기억에 박혔다. 난 건축도 과학도 모른다. 결로현상이라는 말도 어렵고 어색할 정도다. 그것의 원리라면 더욱 오리무중이다. 다만 문제의 그 벽 양면이 번갈아가며 사람 체온 희박한, 공간으로서는 죽음과 같은 때를 지났고, 그럴 때마다 그 벽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탄식해 신호를 보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콘크리트 벽도 생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 앞에 그토록 혼란스러워 하는데, 시를 쓰고 역사를 기록하고 웃을 줄 안다는 인간은 매일 벽을 훔치는 일과 밤마다 아이들 귀를 막는 일 중 뭐가 덜 귀찮은 것이었을까 만 가늠하고 앉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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