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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1/03 17:34:13 |
Name | Moira |
Subject | 게시판을 떠나지 않는 이유 |
여러분은 왜 아직 제로보드를 떠나지 않고 있나요? 제가 얼핏 접한 SNS 매체들은 놀라운 경험들을 가져다 줬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죽기 전에 얼굴 한번 볼 줄 생각도 못했던 유명 인사들, 학자들, 정치인들이 바로 몇 분 전에 쓴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게 됐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따라갈 수도 있었고요. 유학을 꿈꾸는 청소년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지도교수를 고르고 바로 말을 걸어 자신을 어필하고 컨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엄청난 속도를 따라가는 희열과 함께 피로감도 찾아왔습니다. SNS는 놀랍고 혁명적이며, 적응해야 할 매체임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 속에서 내가 '나'라는 존재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겁니다. 제가 트위터 어플을 지우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불문학자인 황현산 교수의 트윗을 구경하는 재미인데요. 그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30분만 지나면 내가 남이 됩니다. 내가 써놓은 글을 내가 썼는지 남이 썼는지, 내가 쓰긴 쓴 것 같은데 무슨 맥락에서 썼는지, 시간이 지나면 기억할 수 없게 돼요. 입말은 알콜처럼 날아가 버리지만 글은 남아서 끝까지 내게 책임을 지웁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글이 말이죠. 트위터나 페북은 참으로 고약한 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되돌아보기가 너무 힘들어요. 말하자면 개개인에게 대자보를 쓰도록 끝없는 공간을 열어준 셈인데, 말이 많은 사람이면 시간이 좀 지난 뒤 검색하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죠. 게시판의 검색 기능에 익숙해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아쉽고, 사측에 추가 검색 기능을 강력히 요구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그런 강력한 검색 기능을 추가해 줄 리가 없을 듯해요. SNS는 기억을 축적시키기 위한 매체가 아니라 현재를 폭발시키기 위한 매체니까요. 제가 게시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황선생님이 말씀하시듯이 '카드는 남을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죠. 30분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나를 위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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