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1/07 10:44:23
Name   쉬군
Subject   \"내가 너에대해서 아는게 뭐가있냐?\"

결혼하고 애낳고 사느라 8년만에 만난 20년지기 여자사람친구가 소주 한병째잔을 마시고 나한테 던진 말이다.

"너랑 나랑 알고지낸지 20년이다.

근데 나는 너에 대해 아는게 없는거 같단 말이지.

아니아니. 아는건 있겠지. 쉬군이 OO고등학교를 나왔고 가족은 몇명이고 결혼은 언제했고...

근데 그거말고 니가 나한테 이야기 해준게 있냐?"

딱히 항변할 말이 없었다.

다른사람에게 크게 관심을 가지지않았고, 다른사람이 먼저 물어오지 않는이상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게 사실이니까.

"20년전부터 항상 그런식이였지.

너는 천가지 만가지 상황에 대비해놓고 맞춰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다른사람이 열가지 스무가지를 제시해도 뭐든 맞출 수 있어.

근데 너는 니가 먼저 뭘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않아.

항상 맞춰주고 항상 오냐오냐 해주지.

그러니까 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노래방이 좋은지 호프집이 좋은지 전혀 알수가 없단 말이지."

여전한 침묵.

너무 맞는말만 해대서 답변할 말을 찾느라 머리가 복잡하다.

"지금도 어떤 대답을 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는게 보인단말이지.

상대방이 들었을때 가장 기분좋을거 같으면서도 중립을 지키는, 그리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대체 진짜 쉬군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알고있는 쉬군말고 저~~깊숙이 숨겨놓은 쉬군말이야."

라고 말하며 그놈은 소주 2병째 마지막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결국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줄 알았고, 그리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놈이 보기엔 그게 아니였나보다.

내기준에는 굉장히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딴에는 20년지기 정말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나 다른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는 주변사람이라고 느꼈나보다.

문득 얼마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한 동생의 말이 생각난다.

"형이 싫다거나 한건 아닌데 대하기가 힘들어요.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주변사람들과 형성해놓은 관계들이 무너지는게 싫다.

그래서 최대한 중립을 지키고 상처를 주지 않을, 가장 좋은 말을 해주며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내가 생각했을때 남이 싫어할만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내 주변사람에게 위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 나 하나만 조금 불편할 정도의 일이면 이해하고 넘어간다.

너무 솔직한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사는게 옳은거라 생각했던 내 생활에 의문이 생겼다.

이런게 남이 봤을때 서운할수도 있는거구나. 답답하고 거리감이 느껴질수도 있는거구나..라는 생각에 혼란이 생겼다.

이미 30년 이상 이렇게 살아온 인생에 변화가 생긴다면 거짓말일거다.

지금와서 내 속이야기를 다 꺼낼수도 없을거고, 다른사람이 싫어할만큼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도 않겠지.


아..뭔가 잡설이 길어졌다.

내가 이놈 소주 두병째 시킬때 말렸어야 하는거였는데 그걸 못해서 이런 글까지 쓰게 됐네..

여러분 소주가 이렇게 해롭네요.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307 기타드라마 스토브리그 5 김치찌개 20/02/19 5552 0
    9085 역사너희나 가능한 논쟁 8 코리몬테아스 19/04/16 5552 9
    8550 음악한국 여자, 이야기를 해주세요! 4 바나나코우 18/11/21 5552 6
    6344 사회미국내 한인 소득과 아시안 소득 비교 6 Liebe 17/09/26 5551 3
    1967 일상/생각"내가 너에대해서 아는게 뭐가있냐?" 28 쉬군 16/01/07 5551 0
    11204 IT/컴퓨터에어팟 맥스 출시전 몇가지 이야기 12 Leeka 20/12/09 5550 0
    7274 오프모임서울, 오늘(24일 토요일) 저녁 한가하신 분?! 43 Erzenico 18/03/24 5550 4
    5221 스포츠유럽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8강 대진이 완성되었습니다. 11 익금산입 17/03/17 5550 1
    4479 문화/예술나의 놀이의 기원과 변화... 여러분은?? 10 커피최고 16/12/30 5550 4
    3244 스포츠한국 농구의 절정기..... 35 Beer Inside 16/07/11 5550 0
    3077 게임하스스톤 벌써1년 (부제 : 선술집난투의 추억들) 17 모선 16/06/20 5550 1
    11298 일상/생각한 예비대학원생의 2020년 결산. 14 샨르우르파 20/12/31 5549 14
    3263 창작[34주차] 열대야 1 얼그레이 16/07/13 5549 0
    2945 음악EXID 정규 1집 앨범이 도착했습니다. 6 NightBAya 16/06/03 5549 0
    1538 영화율리시즈의 시선 4 새의선물 15/11/12 5549 0
    12575 여행여행 체험(?)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9 어제내린비 22/03/04 5548 11
    9832 일상/생각이별의 시작 16 멍청똑똑이 19/10/13 5548 20
    9582 일상/생각간만에 들렸습니다 3 빨간까마귀 19/08/25 5548 5
    7661 기타화창한 날은 안개가 많이 낀다! 핑크볼 18/06/11 5548 3
    12693 스포츠카타르 월드컵 조추첨 최종 결과+이벤트 결과 4 길고양이 22/04/02 5547 0
    11282 정치광주출신 민주당 지지자가 대구에서 온 국힘당 지지자 애인과 한이불 덮는 사이가 된 건에 관하여 9 Schweigen 20/12/27 5547 21
    10851 여행나의 안동문화유산답사기 9 Cascade 20/08/10 5547 7
    10606 일상/생각동시성의 상대성 6 시뮬라시옹 20/05/21 5547 2
    6308 정치(사진 多, 영상 있음) 세계시민상 수상 文대통령 "한국민 촛불혁명 세계민주史에 희망" 6 벤젠 C6H6 17/09/20 5547 1
    3173 정치집도 줘요, 땅도 줘요, 제발 일하러 오세요. 31 눈부심 16/07/02 5547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