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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1/13 01:28:18 |
Name | 김덕배 |
Subject | 연대는 가능한 것일까에 대한 아이디어 |
연대는 가능한 것일까? 제대하고 나서 연대(solidarity)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물음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 여러 문제가 존재하고, 몇몇 문제는 복잡해서 손을 대기도 힘들겠지만, 비교적 간단해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도 왜 사람들은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원인을 탐구하고, 힘이 있다면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공공선을 고민하고 추구할 때 발전할 수 있는 정체입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정기적 선거같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얼개를 중시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동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개개인의 목소리를 담아내어 사회를 그리로 인도하는 체제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각자가 처한 지극히 눈앞에있는 현실이나, 귀찮음에 굴복하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시민으로서 부족한 행동을 하곤합니다. 투표를 포기하거나, 재산권의 변동만 고려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 이들끼리, 혹은 그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연대의식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냄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외면하고 눈 앞에 놓은 작은 이득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도 그러합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모여야 한다. 연대를 통해서 목소리가 모이고 커질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저는 '연대는 어떻게 해야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가장 강한 형태의 질문이 바로 '연대는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도 나눠보고 생각도 했는데, '연대가 왜 안되고 있나'에 대해서 떠올렸던 몇가지 아이디어를 적어봅니다. 1)수인의 딜레마 : 우리 모두는 개인이라는 방에 갇혀있을따름 수인의 딜레마는 개별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경우 사회적으로 파국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형입니다. 용의자가 2명있을 때 모두 자백하지 않는 것이 '둘'에게는 최선일지 몰라도 이들이 공동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갇혀있는 상황, 의사소통이 단절된 상황)에는 개인에게 최선이 되는 선택인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A가 자백하고 B가 자백한다 = 둘 다 10년형 A가 자백하지 않고 B가 자백한다 = A는 20년형, B는 석방 (형사가 너만 자백하면 널 풀어주겠다라고 말한 상황입니다.) A가 자백하고 B가 자백하지 않는다 = A는 석방, B는 20년형 A와 B가 모두 자백하지 않는다 = 둘 다 1년형 이 상황에서 A와 B가 공동의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면 결국 둘다 자백을 해서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이 수인의 딜레마입니다.(아시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장황하게 적습니다.) 이 게임을 공동체의 '연대'에 적용하면 다음으로 바꿔볼 수 있습니다. A와 B가 모두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A가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고 B가 공동체를 생각한다. A가 공동체를 생각하고 B가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A와 B가 모두 공동체를 생각한다.(연대 성공) 이때 A와 B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모두가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게임의 결과로 도출됩니다. 결국, 연대가 실패하는 이유는 개개인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존재이며 타인과 '함께'의사결정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우 '의사소통'의 증진이 연대를 이끌어내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2)난 아직 준비가 안됐다 - 메뉴비용보다 무서운 움직임비용 제 친구 중 굉장한 귀차니스트가 있습니다. 그 친구 말하길 '귀찮음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합리적인 행위의 동기를 찾고 탐구하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생각보다 저 귀찮음의 무게는 큽니다. 경제학에는 메뉴비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격을 바꾸는 것이 이득인데, 바꾸는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격을 바꿔서 얻는 이득이 가격을 바꾸는 비용보다 더 커야만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행태를 본다면 생각보다 귀찮음의 비용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귀찮음은 연대에 필요한 의사소통과 움직임을 저해하게 됩니다. 보다 실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 있어야 연대가 가능하다는 말로도 바뀔 수 있겠네요. 3)합종은 연횡으로 파.괘.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소진이라는 책사가 있었습니다. 전국 7웅 중 가장 강한 진(秦)을 견제하기 위해 나머지 6개국이 돕자.(연대하자!)는 계책을 냅니다. 바로 합종입니다.(세로로 묶어!) 그리고 소진의 친구 장의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연횡을 분쇄하기 위해서 진과 다른 6개 국가들의 개별적인 협조관게를 구축합니다. 바로 연횡입니다.(가로로 이어!) 현대 사회를 설명할 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민중끼리 목소리를 내고, 타당한 목소리나 공동선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뭉쳐서 '사람의 수'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러한 개개인들을 '생활'이라는 명목으로 개개인을 흩어지게 합니다. 먹고 살기 바쁠수록 직장에 충성을 다하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직장의 고용과 피고용이라는 연횡으로 쉽게 찢어집니다. 이 경우 연대의 문제는 생산 및 자원배분방식인 자본주의까지 건드리게 됩니다.(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특히나 현대같이 고도화된 자본주의라면 그렇습니다. 4.원래 연대라는 건 없어요 학생들은 그걸 몰라요 바츠해방전쟁이라는 사건이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부당한 지배(?)에 대해서 캐릭터 민중들이 모두 모여서 항거한 사건인데요, 나무위키에 쓰여진 이 사건의 경과를 잘 읽다보면 결국에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건 잘못된 것에 대해 항거하는 '정의'가 아니라 부당하게 빼앗긴 '이익'에 대한 것이었고, 때문에 그 이익이 자신에게 과도하게 돌아오게 되면 다시금 타락하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시민들이 공공선에 대해서 공론장에서 고민하고 토론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가 어떠해야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말은 좋지만 실상은 거의 없는 개념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본인에게 실제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부여하는데 있어 '이익'이 없다면 결국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정치 몰라요 요새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인데 정치가 너무 복잡해져서 연대고 뭐고 할 정보를 알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실제 연대는 '저 놈이 나쁜 놈이다.' 혹은 '저 건 나쁘다'가 명확해야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요새 정책을 보면 명백히 나쁜 걸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합니다. 사실 저도 공부를 한다고 했는데 자료보면 안들어옵니다. 모르니까 어떻게 행동하기도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당연히 함께하기 힘들어집니다. A말 들으면 저게 맞고 B말 들으면 이게 맞습니다. 그래서 '아 몰라'가 되어버리면 움직이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특히 숫자라든가 개념이 복잡하게 많이 시도되고 있는데 간단한 일을 해도 데이터가 워낙 휘황찬란하다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가 됩니다. 6.이 학생이... 많이 당해보지도 않고 연대가 충분히 발생하기 위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해야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정말정말 큰 일이 있다면 바다 아래 가라앉아있던 한 괴수처럼 일어나서 크아아앙하고 해결해주듯 연대가 형성이 되겠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연대가 왜 안 일어나냐고 징징대지 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 들어올때 자기소개하다가 연대에 관심이 많다고 적어놓고 나니까 예전에 끄적인 내용들이 생각나서 밤늦게 적어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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