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1/21 21:33:35
Name   얼그레이
Subject   [12주차 조각글] 수경
[조각글 12주차 주제]
무엇이든지 상관 없이 소개하는 글입니다. 
픽션으로서 인물 소개를 해도 좋고, 
논픽션으로 실제 인물이나 사건을 소개해도 좋고, 
비평적으로 작품을 소개해도 좋습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시제를 유의해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도 있는지 싶어서요.

하고 싶은 말
원래는 이런 글을 쓸 생각으로 모니터 앞에 앉은 건 아닌데 ㅋㅋ ㅠㅠ
응팔이 끝났네요. 여러분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같은 성을 가진 수경이란 아이를 고등학교에서 보았습니다. 
동명이인이 분명했음에도, 혹시 너 수경이니?하고 묻지 못했네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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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오랜만에 떠오른 이름. 

수경이는 어릴 적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였다. 지금까지 친했다면, 아마 내게 많은 영향을 줬고, 아마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을 거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유치원이 끝나면 얼른 집으로 수경이와 놀려고 달려오곤 했다. 초등학교는 같은 곳을 진학하게 되었는데, 매 2월이면 나는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곤 했다. 수경이랑 같은 반이 되게 해주세요. 수경이랑 같은 반이 되게 해주세요. 스케치북에 그 글귀를 써서 베게 밑에 넣고 잠이 들기도 했고, 티비에서 본 것처럼 물을 떠다가 빌기도 했다. 계속 기도를 외우다가 잠이 들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애와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5반이었고 수경이는 7반이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학년 학급부장이셨기 때문에, 다른 반에 공문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래서 1반부터 8반까지 매번 심부름 보낼 애들을 정하셨다. 그때 심부름을 가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가 친한 친구들이 있는 반으로 가고 싶었다.나는 간절하게 7반에 가고 싶다고 했고, 선생님은 나를 7반의 사절단으로 임명해주셨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찮은 심부름이었을 텐데, 나는 정말 사절단이라도 된 것처럼 기쁘고 의기양양했다. 똑똑 앞문을 노크하고 선생님께 심부름 왔어요 하고 인사드리고선, 눈으로는 얼른 반을 훑었다. 점심시간마다 그 애의 반으로 놀러 갔기 때문에 사실 훑을 것도 없이 그 애의 자리는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흘러내리는 가정통신문을 연신 끌어안으며 그 애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 하고는 입으로 인사하곤 했다. 그 애의 미소를 볼 때면 내 마음도 환해졌다.

언젠가부터 7반 선생님은 나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내가 오면 너 왔니? 하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셨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언젠가는 제티를 주시기도 했다. 그 당시에 네스퀵이나 제티를 우유에 타 먹는 게 유행이었다. 언젠가는 선생님께서 손수 타주셨던 것 같다. 그게 수업 중이었던 것 같지만. 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둥, 예의가 바르다는 둥.. 나의 무안함은 안중에도 없이 여하튼 그 반 선생님은 나를 무척 반기셨다.

7반에는 안지혜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들끼리 흔히 말해 '노는 애' 중 한 명이었다. 아는 5학년, 6학년 언니도 많고, 여자아이건 남자아이건 할 것 없이 때리고 괴롭혀, 말괄량이며 깡패로 불렸던 아이. 그 애가 나를 왜 싫어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그 애는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수경이랑 놀기 위해 점심시간에 그 애를 찾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운동장 왼편으로 낮은 언덕이 있었는데, 수경이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안지혜도 같이 앉아 있었다. 그 애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겁에 질려 그 언덕을 올라갔다. 수경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안지혜는 쭈그리고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지혜는 곧 킥킥 웃으며, 00이 올라온다. 하고 말했다. 내가 올라가면서 잘 듣지 못해 나한테 말한 거야? 했더니 아니라면서 또 웃었다. 그러더니 또 돼지라고 말했는데 못 알아 들었나 봐. 귀도 안 좋은 거 같은데? 하면서 비아냥댔다. 나는 또 나한테 말한 거야? 하고 물었지만, 그애는 아니라면서 웃었다. 찝찝한 마음과 놀란 마음을 뒤로하며 수경이에게 놀자고 말했다. 수경이는 떨떠름하게 그래, 하면서 일어나려 했지만 안지혜는 수경이의 팔을 낚아채며, 수경이는 나랑 놀기로 했는데? 하고 새침하게 말했다. 그럼 나도 같이 놀자고 했지만 안지혜는 은근히 나를 따돌렸다. 나는 늘 궁금했다. 따돌리는 방법을 아는 아이들은 어디서 그런걸 배워왔던 걸까.

나는 7반에 가는 것이 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어느 날 7반에 갔을 때 나는 구멍이 조금 난 옷을 입고 있었다. 왼쪽 옷 끝자락에 명찰을 착용하느라 옷핀 때문에 생긴 작은 구멍이었다. 안지혜는 내가 들어갈 때 그것을 발견했는지, 장난꾸러기 남자애들을 선동해서 한마디씩 놀리기 시작했다. 야, 쟤 옷에 구멍 났어. 집이 가난한가? 남자 꾸러기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나는 그 애들이 어디 앉았는지도 모른 채, 내가 해야 할 일. 가정통신문을 전달하는 '사절단'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7반 선생님은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라고 하시고선,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시곤, 또 예뻐해 주셨다. 7반은 다른 건물에 있었음을 나는 그때 감사했다. 3층 계단을 내려와, 교정을 걸어 다시 5반 교실까지 두 층을 올라가는 동안 나는 조용히 울었다. 화장실에 들려 세수하곤 내 반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는 게 운 걸 덜 들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어느 날인가는 수경이와 집에 같이 가려고 반을 찾아갔지만, 그 애는 집에 먼저 갔는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돌아온 날이었다. 같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수경이가 울면서 '이제 너랑 놀지 말래',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딸꾹질하면서 눈을 연신 닦아내는 수경이. 그 애가 우는 것도 놀랐지만, 그 애가 한 말에 피아노 건반의 틀린 음정을 누른 것처럼 나는 화들짝 놀랐다.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인데. 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수경이에게 묻자, 수경이는 그 날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수경이는 안지혜가 자신을 운동장 끝으로 데려가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고 했다. 머리속에 모레를 뿌리며, 때로는 발로 걷어차면서 나랑 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나랑 놀지 말라고. 그 날 나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피아노학원 문을 닫을 수 있는 방에 들어가 그 애가 울고 있던 정수리를 무력하게 바라보았던 기억만이 내 전부다. 두렵고, 무섭고, 화가 났다.

수경이는 언젠가 내가 살고 있던 집에서 10분 거리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이사한 집 현관 앞에서 놀고 있는데 저쪽에서 안지혜가 야! 하고 부른다. 옆에는 더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다른 여자애도 오고 있었다. 나는 수경이더러 얼른 네 집으로 올라가라고 하고 그 두 사람을 독대했다. 안지혜가 5학년 언니라면서 그 언니를 내게 소개했다. 그리고선 뭐라 갈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5학년, 6학년 언니들의 존재는 얼마나 크던가. 나는 새하얗게 질려 그 언니가 하고 있는 말을 가만히 들으며, 때로는 대꾸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수경이네 아줌마가 나를 발견하셨다. 수영아. 하고 아줌마가 부르셨다. 나는 화들짝 놀라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다. 우리 셋은 인지도 못한 채로 아줌마를 맞이했다. 안지혜와 그 5학년 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냥 그랬을 것 같다. 나는 당황해서 그쪽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으니까. 잔뜩 언 내게 아줌마가 그 애들을 보더니 누구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친구요. 하고 말했다. 그 애들의 보복이라던가, 괴롭힘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자초지종을 말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 갑자기 그 애들이 어른께 혼날 거라는 사실이 측은해지고 무서워졌다. 그래서 친구라고 같이 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줌마는 재밌게 놀으라고 말씀하시고는 올라가셨다. 안지혜와 5학년 언니는 우물쭈물하더니 조심하라며, 두고 보자며 가버렸다. 나는 위로 올라가야 할까, 집으로 가야 할까 그 현관 앞에서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수경이네 아줌마가 나랑 수경이가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엄마도 알게 되었다. 왜냐면 어느 날 안지혜의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화가 나 울면서 사물함의 짐을 챙겨 집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그때 같은 반이 었던 아이가, 자초지종을 알고 수영아 가지 마, 가지 마 하고선 역까지 나를 따라오며 말렸었다. 아직도 그 고마운 이름을 잊지 못한다. 현진이. 심현진. 

집에 돌아가서는 엄마한테 혼나고, 엄마는 다시 선생님께 전활하고, 나는 울면서 안지혜의 일을 고하고, 학교에선 선생님이 날 무단이탈 했기 때문에 복도 밖에 세워두고. 그 날은 정말 끔찍했다. 

선생님은 안지혜를 불러 사과시키고, 우리는 표면상으로 '화해'를 했다. 얼토당토않은 일이었다. 그날부터 내 세계는 축소되고, 상처받고,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나는 브래지어를 처음으로 샀다. 가슴에 몽우리가 지기 시작했으므로. 내 사춘기는 아주 일찍 찾아온 셈이었다. 그때 나는 겨우 9살이었다. 

…수경이와의 일화에 더 보태어 얘기하자면.

그날이었나. 그 언젠가였나.
나는 학교를 뛰쳐나왔다.
가방에 사물함 속의 물건을 울면서 챙겨 놓고선,
옆에선 현진이란 아이가 수영아 가지마. 가지마아 하면서 날 붙들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도 나를 지켜보고 계셨지만 내가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던것 같다.
신발주머니도 들고 가방도 들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현진이는 계속해서 날 쫒아왔다. 학교쪽으로 나를 자꾸 끌어내려고 했다. 나는 달리고 달려서 송정역까지 당도했다. 현진이는 그곳까지 따라왔다. 집까지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닌가, 집에도 갔던것같다. 엄마가 설득을 해서인지, 내가 주저하고 다시 간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 남자애가, 그애의 이름은 명인이었다. 선생님 수영이 밖에 왔어요.얘기했다.
그 때 그애가 불러준 수영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다정했던가. 이수영이 아닌 수영이. 수영아.하고 부르는 그 이름은 얼마나 다정한지 나는 생각한다.
그애가 수영이 밖에 왔어요.했을 때 나는 다시한번 울컥했다. 눈물이 자꾸 나서 고개를 숙일수밖에 없었다. 계속 어깨를 들썩이면서.

선생님은 화를 내셨다.
학교가 네가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는 곳이야!?
도리도리
몇마딘가 더 하셨을거다. 잘 기억나진 않는다. 선생님은 나더러 복도에 서 있으라했다.
그 후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띄엄띄엄 몇가지 기억만.
반에서 틀어둔 비디오 소리와
복도에는 아무도 없고 훌쩍이는 내 소리만.
손에 자국이 나도록 꽉 쥐고있던 빨간 실내화주머니와
보는 것 만으로도 딸꾹질이 나와 체할 것 같았던 꼬질꼬질한 흰 실내화.

선생님은 너가 가방을 싸는 줄 알았어.
아줌마는 네가 친구랑 논다고 그래서 문제가 있는줄 몰랐어.

엄마가 통활 한걸까. 기억이 가물가물.
안지혜가 나에게 사과를 했던가. 그것역시 가물가물.

그냥 지금 그때를 떠올려도 해결되지 않은 감정의 뭉치들이 자꾸 캥겨올라온다. 오늘은 정말 힘든 날이다. 나는 또 갈등한다. 언제고 그랬던것처럼 숨고싶어서. 모든 글을 비공개로 돌린채 숨고싶어진다. 누군가가 다가와 들어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숨고싶다. 내가 가진 환상에는 이런것이 있으리라. 어느날 누군가 다가와 물었어요. 왜 울고 있어. 무슨 일이 있니?하고 상냥하게 물어주는.
다시한번 날 붙든다.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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