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2/02 10:15:20
Name   YORDLE ONE
Link #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1/27/0200000000AKR20160127028800004.HTML
Subject   진심을 다해 당신들이 불행해졌으면 좋겠다
살인 사건은 평소에도 하루에 몇 건이나 발생하고 있다. 솔직히 흔한 일인 만큼 사실 우리들 일상에서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게 나와 관계되어있지 않다면 안됐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그 사실에 특별히 내 감정을 소모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약간 좀 이상한, 그런 사건이다. 살인자들에 대한 처벌은 법이 내려줄 것이고, 그들에 대한 관리는 교도소에서 해줄 것이고, 빨리 나올 수도 있고 못 나올 수도 있고. 그쯤이면 심판을 받았겠지. 어련히 판사님이 검사님이 알아서 잘 했겠지.

그리고 그렇게 어느 때 처럼 지난 주 서울시 어느 동네에서 조선족에 의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당일, 내가 머물고 있던 지방 숙소의 보일러가 고장나는 바람에 나는 코를 훌쩍거리며 깔깔이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잠자고 있었다. 아마 추위를 저주하며 중간중간 깨어나지 않았다면 아침 6시에 울렸던 그 톡방 알림을 바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 6시에 단톡방 알림이 울렸을 때는, 자주 있던 흔한 그런 일 처럼 뭐야 누가 철야근무하다 퇴근한다고 욕설이라도 올렸나. 라고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톡을 열었는데 거기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회사 동료지만 단 둘이 만나기엔 조금 어색한 H씨의 짧은 한 마디가 써있었다.

[오늘 저희 어머니께서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불과 6시간 전 자정에 똥나무게임의 버그모음 기사 URL을 링크하고 함께 낄낄 웃었던 채팅 로그가 바로 윗줄에 보이는데 설마 저런 소재로 구라를 치는건 아니겠지. 6시간이 지나 새로운 날의 동이 틀 무렵엔 어머님의 사고 소식을 단톡방에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이미 그걸 읽어버렸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말을 알 수가 없었다. 아이고.. 정리되면 다시 연락달라는 내용의 말을 스마트폰으로 타이핑하면서,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한달 전 우리 아버지 장례식에 찾아와줬던 H씨. 조의금을 내 눈동자가 물음표로 변할 정도로 많이 넣어줬던 H씨. 서버쪽 지식이 탁월해서 H씨에게 항상 큰 도움을 얻곤 했던 나는 아무튼 오늘 퇴근하고 서울로 조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잠들었다. 사고로 돌아가셨다니 사고로 돌아가셨나보다. 라고 생각했을 뿐 왜 돌아가셨냐고 물어보는것도 좀 눈치없는 짓이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 동료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데 그렇게 픽픽 쓰러져 잠들어도 되냐고 비난 받아도 난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모르는 타인의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이 정도인 것이다.

H씨의 가업이 서울시 어느 동네(하단 링크 기사참조)의 노래방 영업이라는 사실을 그와 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출근하는데 동료들이 그런 말을 했다. 이거 아무래도 뉴스에 뜬 이 살인사건의 피살자가 H씨의 어머님인 것 같다고. 기사를 본 나는 요즘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동공지진을 일으켰던 것 같다. 살인, 조선족, 10만원, 흉기, 그 상황을 내게 대입하면서 나는 진한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나는 내 가족이 저런식으로 살해당한다면 과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욕하고싶다. 며칠 전에 느꼈던 그 울그락불그락 뜨거운 부글거림. 아버지를 한달 전에 보낼때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때는 슬픔. 지금은 분노.

저녁에 장례식장까지 허겁지겁 가봤다. 어찌 장례식장들의 빈소는 그렇게 다들 생긴게 똑같은지 한달 전에 상주로 빈소를 지키며 봐왔던 모습이 고스란히 뇌리에 되살아나면서 속이 갑갑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영정 앞에서 묵념하고, H씨의 얼굴을 봤을때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삼켰다. H씨는,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눈에 분홍빛을 띈 채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상주를 하면서 가장 듣기 난감했던 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기운내시라고. 아니 너같으면 기운이 나겠냐 빙충아.. 누가 나좀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삼우제를 마친 H씨가 단톡방에, 들러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오피셜로 인증을 하였다. 그 사건이 맞다고. 자기는 몰랐는데 jtbc에서도 보도되었다고.. (그건 나도 몰랐다)

살해 동기나 상황, 살해 방법에 따라 그 상황이 희극적일지 비극적일지, 어느 커뮤니티 유머 게시판에 올라올지 자유 게시판에 올라올지 여러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남이 보기에 그게 웃기든 슬프든 살인 사건 후에 확실하게 남는 것은 유가족의 비통함이다. 살인 사건은 흔한 일이지만 흔한 일이라고 유가족도 그걸 흔하다며 쿨하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

글쓰는데 조예가 없는 내가 굳이 이렇게 뭔가를 적으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은 결국 저주다. 너희 살인자들, 조선족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너희들 살인자들, 현세에선 너희들에게 어떻게 더한 고통을 새겨줄 수 있을지 내가 알 수가 없어 그냥 저주할 수 밖에 없다. 난 당신들이 정말, 진심으로, 불행해졌으면 좋겠다. 불행해져라. 이번 생에 다시는, 다시는 당신들이 사소한 행복이라도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 나쁜 자식들.

――――――――――――――――――――――――――――――――――――――――――――――――――――――――

의도한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홍차넷에 쓴 글 3개가 모두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한 글이네요...
문제의 기사는 링크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이 글이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47 육아/가정임밍아웃 17 Xeri 23/09/18 2517 34
    14345 육아/가정딸아이 트림 보고서 2 Xeri 23/12/20 1341 7
    14735 일상/생각악몽 1 Xeri 24/06/11 892 4
    433 도서/문학그리스인 조르바 9 yangjyess 15/06/26 7878 0
    98 기타혹시 친구가 단 한명도 없는 분 계신가요? 28 Yato_Kagura 15/05/30 17966 0
    112 기타최근 봤고 보고 있는 아니메(망가포함, 약스포 주의) 16 Yato_Kagura 15/05/31 15414 0
    156 기타도와줘요! 스피드왜건! 8 Yato_Kagura 15/06/01 10029 0
    1078 기타오싹했던 기억.. 9 Yato_Kagura 15/09/23 5606 0
    2104 도서/문학(스포)'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리뷰 5 Yato_Kagura 16/01/24 6286 2
    3269 일상/생각빡이 차오른다 1 Yato_Kagura 16/07/15 3625 0
    12620 정치민주당 비대위와 지방 선거 4 Ye 22/03/13 3273 1
    12542 기타봄에 뭐 입지 (1) 바시티 재킷 18 Ye 22/02/24 4915 7
    12595 의료/건강오미크론 유행과 방역 '정책'에 관한 짧은 이야기 11 Ye 22/03/08 4039 24
    12986 음악최근에 좋게 들었던 앨범들. 5 Ye 22/07/10 2831 5
    13108 사회한국인들은 왜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가. 75 Ye 22/08/26 7900 6
    13495 일상/생각해가 바뀌고 조금 달라진 전장연의 시위 54 Ye 23/01/20 3228 6
    13904 일상/생각좋은 아침입니다. 8 yellow1234 23/05/24 2048 5
    13925 일상/생각행복했던 휴일이 지나고.. 2 yellow1234 23/05/30 1876 2
    13971 일상/생각취업난...? 인력난...? 11 yellow1234 23/06/09 2536 0
    10320 기타우리는 SF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0 YNGWIE 20/02/24 4135 2
    10323 일상/생각살면서 처음으로 '늙었다'라고 느끼신 적이 언제신가요? 73 YNGWIE 20/02/25 4230 1
    2956 일상/생각그럼에도 같이 살아보라고 말할 수 있겠냐 18 YORDLE ONE 16/06/06 3638 2
    1633 일상/생각아버지의 다리가 아픈 이유는 22 YORDLE ONE 15/11/25 10044 16
    2120 일상/생각운명적인 이별을 위한 기다림에 대하여 23 YORDLE ONE 16/01/26 5548 12
    2161 일상/생각진심을 다해 당신들이 불행해졌으면 좋겠다 3 YORDLE ONE 16/02/02 4505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