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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2/05 15:14:11 |
Name | 한성희 |
Subject | 원산지만 따질 일인가요 |
(바라오던 커뮤니티를 만난 기쁨에 의도치 않게 도배를 하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좀 더 발전된 오피니언 나눌 수 있게 머릴 굴려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명절 되십쇼 :) 군생활 중 드문드문 날아온 편지들을 뜯을 때, 늘 이 편지가 어떻게 쓴 이의 손을 떠나 내 손에 떨어졌을지를 상상해보곤 했었다. 특히나 이국땅 여기저기로 떠나있는 친구들의 편지를 받아들 땐 입이 떡 벌어졌는데. 그건 그러니까 순전히 이 편지가 바다 너머에서 쓰여져 바랜 빛깔마저 멋스러울 외제 우체통에 담겼다간 기어이 그 지겨운 통관절차를 이겨내고 비행기나 선박에 실려 왔을 과정이 퍽 경이로웠던 까닭이다. 기왕 군대 얘기가 나왔으니까 덧붙여보면, 나는 부대 식단에 오른 고기들엔 젓가락을 잘 대지 않았었다. 꼭 고기들이 수상쩍게 갖은양념으로 뒤덮여있거나 께름칙하게 튀김옷을 입고 있어서만은 아니고, 이 고기들이 어디에서 묵었다가 어떤 경로로 식탁에 올랐을지를 떠올려보면 아연해지고 말아서인데. 그런가면 정부가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 생계보호를 위해 생산이 끝난 쌀을 재깍 비싼값에 사들여 군부대로 반입한단 뉴스기사가 어렴풋 어딘가 남아 있었던 이유로 밥은 참 잘도 퍼 먹었다. 하여간, 내가 먹고 쓰고 입는 온갖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의 고민은 어쩌면 꽤나 자연스럽다. 접시에 놓인 음식과 그 각각의 재료들이 얼마나 많은 기계위를 거쳤을까 어떤 약품을 둘렀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고 내 앞에 놓여지게 됐을까 어림짐작해보면 두 배가 넘는 가격을 지불해 굳이 유기농 제품을 고르고 들어간 재료마다 원산지를 꼼꼼히 캐묻는 사람들이 그다지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이미 공산품은 그 부품이 제각각 다른 나라의 어느 도시에서 날아와 합쳐지는 '글로벌' 공정이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뭐 어쨌든. 내가 소비하는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의 고민은 기계적인 소비행위를 한층 주체적인 행위로 승격시켜 준다고 믿는다. 요즘은 슬슬, 내가 사용한 것들이 내 손을 떠난 후론 어디로 갈까하는 화두로 관심이 옮겨간다. 내가 남긴 음식, 내가 버린 쓰레기들의 앞에 놓인 운명까지 취급하는 일은 여간 피곤하지 않지만, 그 지질한 피곤함과는 별개로 어쨌거나 비닐봉투에 담겨 버려진 것들에게도 소각이든 매립이든의 앞날이 있기 마련이니까. 어쩌다 어스름한 주말의 새벽녘에 종로와 광화문이 이어지는 거리나 땅이 판촉전단지로 촘촘히 뒤덮인 강남역 주변을 서성여본 적이 있다면, 도심의 하루가 저문 후 남겨진 거리의 무지막지한 쓰레기들에 압도당해본 적이 있다면 좀 쉽게 수긍이 갈 수 있겠다. 하루만에 이렇게나 거릴 가득 채운 쓰레기들은 죄다 어디로 가는 걸까, 갓 상경한 스물 때의 충격적인 목격이 나를 좀 쓸데없이 각성시켜 놓았던 거 처럼. 그래서 그것들은 결국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먹다 남긴 밥풀이나 나물 몇 가닥, 내 손으로 버릴 수 있는 쓰레기뭉치의 상황은 추측이 비교적 양호하다. 정말이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대양을 누비는 그 많은 철갑선박들은, 해양전투를 위해 몇 겹으로 몸체를 가린 전투함들은, 자동차 수 천대쯤 거뜬히 옮겨놓는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은 수명이 다하면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것들은 바로 임금이 싸고, 철강 수요가 많고, 환경 규제가 덜한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과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옮겨져 '선박해체산업'을 창출해낸다고 한다. 충격적인 건 그 선박의 해체 작업이 아직까지도 거의 아날로그로 진행되고 있으며, 7살 꼬마부터 70대 노인까지 온 가족이 너나없이 달라붙어 손수 갑판을 뜯어낸다는, 그런 믿기지 않는 설화같은 사실. 물론 그 위험한 작업은 국가별로 매년 수백수천명의 사상자를 낳고 석면과 중금속과 같은 유해물질은 사고를 면한 이들의 수명을 갉아먹는다는데. 썼으니까 버려질 수 밖에 없고 다 못 먹었으면 남겨질 수밖에 없는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단상. 다행인 건 아직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집어들어 쇼핑카트에 넣는 찰나에 이게 과연 어떻게 버려질까하는 고민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는 점. 그럼 소비가 얼마나 줄고 또 정부는 얼마나 골머릴 앓고 죽는 소릴 할까. 하지만 어쩌면 먼 미래의 언젠가, 우리 손을 떠난 쓰레기가 판촉전단지처럼 뒷세대의 앞날을 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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