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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2/29 01:10:57 |
Name | Raute |
Subject |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드는 생각들 |
1. 그동안 국회의원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그렇게 좋은 학벌에, 그 좋은 경력을 갖고 왜 저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가, 왜 저렇게 바보처럼 행동하는가, 이렇게 국회의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저 역시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극소수의 의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을 한심하게 생각했고, 많은 운동권 의원들은 타성에 젖어 도태되어야 할 구시대의 유산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필리버스터를 쭉 보다보니 이미 의정활동과 원외활동으로 양명했던 소수의 의원들만 빛나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의원들이 예외없이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더군요. 마치 금제 풀린 만화 속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장내를 쥐락펴락 하는데 새삼 이 사람들이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었다는 게 떠오르더군요. 처음에 시작한 김광진, 은수미 의원의 존재감이 무척 컸던지라 어지간해서는 별 티가 안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건 정의당이건 일단 나왔다 하면 눈과 귀를 사로잡네요. 특히 최규성 의원과 이학영 의원은 생각지도 못한 임팩트를... 2. 야당이 야성을 되찾았다 필리버스터를 처음 본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런 야당 본지 너무 오랜만이라고요. 이렇게 수십 명의 의원들이 번갈아가며 민주화의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기울어가는 국운을 한탄하고 정부를 성토하는 걸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이따금 뉴스 꼭지에 잠깐 나오는 원외농성이나 단발성 시위가 다였는데, 방송을 통해 야당의 궐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니 야당의 야성이란 게 피부로 느껴지더군요. 여당 2중대라고 불리던 민주당 의원들이 연일 사자후를 토하는 것, 존재감이 흐려져가던 정의당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 신선했습니다. 3. 과거가 얼마나 어두웠는지 잊고 있었다 이번 필리보스터를 보면서 어이가 없던 것이 뭔 의원들이 입을 열 때마다 고문당한 경험담, 감시당한 경험담, '누가누가 더 고통스러웠는가' 대회를 열어도 될 만큼 끔찍한 경험담들이 계속 나옵니다. 집회와 시위 몇 번 나가본 적은 있지만 딱히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고, 유치장 신세 지고 험한 꼴을 당한 지인은 있었어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막연하게 텍스트로 읽던 투쟁이라는 게 얼마나 섬뜩하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더군요. 대학 신입생 때 부정선거 시도하다 걸려서 박살났던 이른바 '운동권 학생회'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4. 야권 대집결이 일어날까? 개인적으로 정의당조차 '말로만 진보를 외치는 리버럴'이라고 생각하고, 지역구 후보의 공천이 마음에 안 들면 무효표 던질 만큼 주류야당을 삐딱하게 생각하는데 오늘 갑자기 비례정당 어디 찍어야 하지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처럼 민주당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조차 혹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무당파에게는 더욱 영향이 클 것이고, 무관심층에게도 필리버스터가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면서 야권 지지율이 높아진다는 기사를 봤는데 이게 대집결로 이어질지 궁금하네요. 한편 소수정당들은 눈물 흘리겠죠... 주르륵...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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