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어울려 살 능력이 없는 자, 또는 스스로 충분히 자족하기에 어울려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자는 폴리스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짐승이거나 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 1253a>
(기원전 480년경, 화가 두리스, 적색상 퀼릭스)
위 그림은 기원전 5세기 두리스(Douris)라는 이름의 아테네 출신 도공/화가의 작품입니다. 이전 게시물에서 흑색상 기법의 그림 두 점을 보여 드렸는데, 이것은 적색상이라서 인물이 적색, 바탕이 흑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의상 주름이나 인물의 표정을 포착하는 방식이 흑색상보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섬세합니다. 행동묘사는 흑색상, 심리묘사는 적색상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두리스는 당대의 대표적인 적색상 화가로서 현존하는 40여 점의 작품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300점 가까이 된다고 해요. 그리스의 저장용기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이 그림은 퀼릭스(kylix)라고 불리는 넓적한 접시 모양의 그릇 바깥 부분에 그린 것입니다. 그리스의 그릇 제작자들은 이런 접시나 컵의 음식 담는 안쪽과 겉으로 보이는 바깥쪽을 모두 그림으로 꽉꽉 채우곤 했습니다. 사치스럽죠. 그림 하단을 보시면 접시에서 둥글게 튀어나온 다리 부분이 눈에 띌 거예요.
그림의 소재는 여전히 아이아스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전사한 뒤 그의 무구를 누가 가질 것인가를 놓고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집니다. 두 사람 간의 다툼은 트로이아 전쟁을 읊은 일련의 서사시들(epic cycle)에 등장하는 모티브인데, 이 서사시들은 현재 대부분 소실되고 없지만 당대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었겠죠. 익히 아시다시피 가난한 고대 세계에서 무기와 갑옷은 엄청난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는 재산이었고, 더욱이 아킬레우스 같은 슈퍼 히어로의 무구는 아이언맨의 수트만큼이나 귀한 재화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아이아스는 죽은 아킬레우스의 사촌으로서 친척의 유물을 물려받을 자격이 충분한데다가, 죽은 이를 제외하면 그리스 연합군에서 원탑이라고 자부하는 용사였습니다. 그런데도 오디세우스가 '나도 자격 있음' 하고 나섰던 것은 아마도 그리스군이 아킬레우스의 시체를 보호하며 퇴각할 때 상당한 공을 세웠기 때문인 듯합니다.
두 전사가 자신의 공로를 소리 높여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자 이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전사 회의가 소집됩니다. 판정 결과는 오디세우스의 승리였는데, 그의 지혜가 아이아스의 무용보다 그리스군에 더 많이 기여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군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아가멤논이 독자적으로 판결을 내렸다는 설도 있고, 포로로 잡힌 트로이아 군사들에게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운 상대였는가를 물어보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화가 두리스는 독특한 방식,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과정을 포착합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일상-정치생활인 투표를 먼 옛날 서사시 장면의 재현에 도입합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 장면을 두고 '민주주의의 탄생에 관해 아테네인들이 상상했던 한 가지 이미지'일 수도 있다고 추측합니다.
그림에는 전사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 투표용 돌멩이를 하나씩 놓고 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왼쪽이 오디세우스 편, 오른쪽이 아이아스 편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른쪽의 아이아스는 도기 파편이 깨져나가는 바람에 상반신이 보이지 않고, 왼쪽 끝의 오디세우스는 자기 쪽에 돌멩이가 더 많이 쌓이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두 팔을 치켜올리고 있습니다. 깨진 부분 주변의 그림을 잘 보면 아이아스의 발이 투표석 쪽이 아니라 앞쪽을 향하고 있어, 그가 투표 현장으로부터 몸을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베일을 뒤집어써 슬픔을 표현하고 있지요. 나머지 전사들의 이름은 알기 힘듭니다. 투표장을 주재하는 것은 여신 아테나입니다. 긴 머리, 둥그스름한 어깨, 여성용 의복과 머리에 쓴 투구, 그리고 가슴에 달린 메두사 모양의 아이기스로 그가 여성이며 아테나 여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신은 자신의 총아인 오디세우스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기도 하지요.
가운데 테이블 위를 잘 살펴보시면 점점이 돌멩이가 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프세포스(psephos)라고 불리는 이 투표석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르지만 실제로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투표 도구입니다. 오늘날 선거에 관한 이론을 다루는 학문을 시폴로지(psephology)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바로 프세포스 투표석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교과서적인 투표 방식은 누가 누구를, 누가 어떤 안을 지지했는지 알 수 없도록 항아리 속에 투표석을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만 위 그림에서는 적나라하게 투표 과정이 노출되어 있군요. 이럴 거면 그냥 거수로 투표해도 되었을 것을... 아마 화가가 이 장면을 완전히 아테네 식으로 묘사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고, 이런 방식의 투표가 당시 아테네에서 실제로 흔히 행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여성과 노예, 이방인들을 제외한 남성 시민권자들만의 투표였지요.
(출토된 투표석의 예)
(기원전 535년경. 엑세키아스. 불로뉴-쉬르-메르 박물관)
판정에서 패한 아이아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 그림은 지난번에 보여 드렸던 <장기 두는 아킬레우스와 아이아스>의 제작자 엑세키아스가 남긴 또다른 작품으로, 전사 아이아스의 비극적인 마지막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아스는 분노에 사로잡혀 경쟁자 오디세우스와 판정을 주재한 아가멤논,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에게 복수하고자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이아스는 한밤중에 막사에서 나와서는 병영에서 기르던 가축 떼 속으로 뛰어들어 양과 소를 죽이고 채찍질하면서 그것들이 자신의 원수인 그리스 전사들이라고 믿습니다. 나중에 정신이 들어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차린 그는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칼에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아이아스>는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며 국내에도 번역되어 천병희 선생의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실려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여러 가지 형체 없는 관념들을 신의 의지와 결부시켜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화가 났다'라는 말을 '분노의 여신이 그를 움직였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아이아스는 자신의 순간적인 광기와 부끄러움을 신의 몫으로 돌리고 면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쪽팔리는 일을 벌였지만 어쨌든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서사시에서 종종 신탁을 구하는 것처럼 애초에 그리스 전사들이 신탁을 받아 다툼을 판정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어떤 버전에서도 그들이 신에게 답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인간의 문제를 결정하였고, 아이아스도 끝까지 납득하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을 따라갑니다. 동료들이 자신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공동체 속의 인간에게 치명적인 상처입니다.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분쟁 모티브를 다룬 그리스 도기들은 대단히 많습니다만 엑세키아스가 만든 이 흑색상 도기는 그중에서도 탁월하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어떤 도기들은 칼에 가슴이 뚫린 아이아스의 시체와 그를 둘러싸고 놀라는 장수들을 스펙타클하게 전시합니다. 어떤 도기들은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얼굴을 맞대고 으르렁거리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또 어떤 도기들은 두리스처럼 분쟁의 해결 과정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엑세키아스는 단 한 명의 인물, 아이아스에 집중하여 그의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아이아스는 거대한 몸집을 고통스럽게 웅크린 채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땅바닥에 작은 흙더미를 만들고 칼을 세우는 일입니다. 칼을 단단히 꽂고 나면 거기에 몸을 던질 것입니다. 섬세하게 그려진 왼손은 흙더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고, 힘이 들어간 오른손으로는 칼을 거꾸로 꽂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그의 나머지 무구들이 보입니다. 왼쪽에는 하늘거리는 종려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이 나무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여성성(애도)을 상징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서 공동체에서 떨어져나와 말 없는 사물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준비하는 외로운 인간의 한순간은 우리가 흔히 공식으로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그리스 - 투명하고, 밝고, 왁자지껄하고,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분해하고 노출하고, 외부와 내면이 천진하게 일치하는 한 겹의 그리스 -와는 판이하게 달라 보이는 문명의 한 단면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그리스인들이 도달한 인간 내면의 깊이를 조형적으로 전달해주는 걸작들과 가끔 만나게 됩니다. 물론 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덕후들에게만 강하게 전달되는 것이긴 합니다만, 한때 유럽인들은 (아마 지금도?) 이것이 인류 보편의 감정적 깊이라고 생각했지요.
'공동체(폴리스) 외부에서 살 수 있는 자는 짐승 아니면 신이다"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상기하자면, 전사의 명예를 상실한 인간, 짐승도 신도 아닌 아이아스가 공동체로 복귀하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공동체에 별다른 유대감을 느끼지 않고 자족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아마도 신의 영역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