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25 07:02:37
Name   틸트
Subject   [27주차]우울증이거나 알코올 중독이거나 외로운 거겠지.
우울증이거나, 알코올 중독이거나, 외로운 거겠지.

밥은 거울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아니면 그냥 퇴근을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밥이 거울울 보며 무언가를 웅얼대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어. 그는 힘든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마 퇴근은 문제의 핵심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차라리 일에 문제가 있는 쪽이 말이 되었다. 일. 일이라. 하지만 딱히 무엇이 잘못되어 가는 것은 없었다. 딱히 무엇을 잘못 하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불경기일 뿐이다. 당장 내년에 해고될 것도 아니다. 밥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밥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병 꺼냈다. 쓰레기같은 맛이군. 그는 서재에서 엽총과 버번 위스키와 말아 둔 마리화나 두어 개비를 가져온다. 어느 순서가 가장 좋을까. 그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 입은 대화에 그렇게 적절한 형태가 아니다. 그는 아마 위스키를 마시는 동시에 마리화나를 피우고, 적당히 기분이 좋아진 채 엽총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다시 온전히 엽총을 서재 구석에 모셔 두고 잠들 것이다. 적어도 지난 일주일 동안은 그래왔다. 제기랄, 위스키가 다 떨어졌군. 그는 남아 있던 반 잔 분량의 위스키를 병째로 마시고 전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되는 일이 없군. 이거 참.

그럭저럭 살만한 느낌이었는데.

그는 업무 스트레스로 사람을 쏜 적도 없고, 빚에 쪼들려본 적도 없다. 일은 그럭저럭 할만 했고, 돈은 그럭저럭 벌렸다. 다만 무엇인가 잘못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일은 잘못되지 않았다. 세상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그는 그의 삶이 어딘가 조금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나. 그건 도저히 못 버티겠는데. 아침에 반쯤 먹고 남긴 맛 없는 샌드위치를 한 입 물었다. 하루 분량만큼 맛이 더 없는 느낌이었다. 어쩌지. 역시 답은 네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는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그의 권태로운 손놀림이 내 민감한 부분을 애무했다.

탕.

이 자는 미친 자로군. 서재 한가득 총이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 왜 하필 내 순찰 시간에 자살해가지고. 총소리를 듣고 출동한 경찰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비닐 장갑을 낀 손으로 나를 들어 증거 보관용 팩에 담았다. 삐뚤한 글씨로 쓴 '글록 22. 자살 도구로 추정'이라는 메모가 비닐 팩에 첨부되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392 스포츠181018 오늘의 NBA(카와이 레너드 24득점 12리바운드) 김치찌개 18/10/19 4243 0
    2432 기타미국법정에서의 All arise 8 까페레인 16/03/19 4244 2
    4551 창작안개의 인사 (시) 제주감귤 17/01/06 4244 0
    5756 일상/생각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뻘글주의) 17 Keynes 17/06/07 4244 3
    11511 음악[팝송] 시아 새 앨범 "Music - Songs From and Inspired By the Motion Picture" 김치찌개 21/03/22 4244 1
    6438 일상/생각犬포비아는 편안하게 살 수 없습니다. EP 2 2 알겠슘돠 17/10/19 4245 4
    1966 음악Varèse - Ionisation 3 새의선물 16/01/07 4246 0
    9099 게임[LOL] 4월 20일 토요일 오늘의 일정 1 발그레 아이네꼬 19/04/18 4246 2
    12889 음악사랑의 MBTI 2 바나나코우 22/06/04 4246 5
    11856 일상/생각부정청탁방지법(aka 김영란법) 9 Picard 21/07/08 4247 1
    8657 영화아쿠아맨, 마약왕 후기 (약스포) 2 배수지 18/12/19 4247 1
    11823 오프모임7/6 (화) 저녁 안동시 안동찜닭 저녁팟 [취소] 3 샨르우르파 21/06/27 4247 2
    2888 창작[27주차]우울증이거나 알코올 중독이거나 외로운 거겠지. 4 틸트 16/05/25 4248 0
    3141 스포츠[6.26]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이대호 2타점 적시타) 1 김치찌개 16/06/28 4248 0
    14246 과학/기술우영우갤에서 선동한 자폐아의 현실 주장의 허구 7 자폐증당사자 23/11/03 4249 2
    14162 일상/생각영끌, FOMO, 그리고 미쳤다 4 아침커피 23/09/28 4249 9
    4633 기타kilkelly 4 O Happy Dagger 17/01/16 4250 0
    4992 게임[하스스톤] 2/24일 개발팀 용우 프로듀서 Q&A 정리 1 Leeka 17/02/24 4250 0
    5239 일상/생각부산 모임 후기 24 눈시 17/03/20 4250 10
    5945 음악요즘 듣고 있는 해외앨범 21(The Chainsmokers - Memories…Do Not Open) 2 김치찌개 17/07/14 4250 0
    10608 기타드라마 부부의 세계 4 김치찌개 20/05/22 4250 0
    15024 정치2024 미국 대선 불판 57 코리몬테아스 24/11/05 4250 6
    5200 창작[소설] 홍차의 연인 (5) - 완결 29 새벽3시 17/03/16 4251 11
    5555 방송/연예드라마 덕에 나온 조이 OST 5종 Leeka 17/05/01 4251 1
    12173 게임[LOL] 10월 16일 토요일 오늘의 일정 9 발그레 아이네꼬 21/10/15 4251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