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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7/27 15:33:17
Name   Raute
Subject   그 남자가 건넨 유니폼
축구계에 유명한 비행사고가 두 건 있습니다. 하나는 축구팬들이라면 익히 들었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뮌헨 비행기 참사'고, 다른 하나가 토리노가 당했던 '수페르가의 비극'이죠. 40년대의 토리노는 이탈리아 축구사에서 가장 강한 팀 중 하나로 꼽히는데, 1942/43시즌부터 1948/49시즌까지 세리에A 5연패를 달성한 팀입니다(2차대전 때문에 43/44-44/45 시즌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토리노(Grande Torino)'로 불리는 이 팀은 이탈리아 국가대표 선수들로 가득했고, 1947년 헝가리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10명의 토리노 선수가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1950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부진은 1년 전에 있었던 이 '수페르가의 비극' 때문이라고 할 정도죠.

발렌티노 마촐라는 이 위대한 팀의 에이스로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입니다.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며 50년대 이전 이탈리아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주세페 메아차와 함께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이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전문지인 이탈리아의 구에린 스포르티보는 1999년에 발렌티노 마촐라를 역대 최고의 선수 7위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발렌티노 마촐라는 3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만 그에게는 두 아들, 알레산드로와 페루치오가 있었습니다.


1949년에 찍은 것으로 알려진 발렌티노 마촐라와 그의 장남 알레산드로

발렌티노는 아내 에밀리아 리날디와 이혼했었는데, 이때부터 장남 산드로는 아버지와 살고 차남 페루치오는 어머니와 살았습니다. 사고로 죽기 불과 며칠 전에 발렌티노가 주세피나 쿠트로네라는 젊은 여성과 재혼했었기 때문에 사후에 두 아이의 양육권과 장례 문제 등 여러 다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세부적인 전개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두 아이는 토리노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채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갔고, 이들에게 베니토 로렌치라는 축구선수가 찾아옵니다. 아버지 발렌티노의 추천 덕분에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던 젊은 축구선수였죠(로렌치가 데뷔한 경기는 발렌티노가 이탈리아 대표로 뛴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이리하여 두 소년은 밀라노로 건너가 로렌치가 뛰고 있던 인테르에서 축구를 배웁니다.

두 사람은 축구선수로 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산드로의 재능이 출중했습니다. 18세에 1군 데뷔하고, 20세부터 주전급으로 발돋움을 한 거죠. 이 1962/63시즌에 인테르는 이탈리아 챔피언이 됐고, 마촐라는 11골을 넣어 팀내 득점 공동 1위였습니다. 1963/64시즌, 인테르는 유럽 각 리그 우승팀들이 참가하는 유러피언컵에 나가 승승장구합니다. 잉글랜드의 에버튼, 프랑스의 모나코, 유고슬라비아의 파르티잔, 서독의 도르트문트 등 유명 팀들을 제압하며 결승까지 올랐고, 마침내 스페인 최강이자 유럽축구계 최고의 팀인 레알 마드리드를 마주합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50년대에 유러피언컵 초대 챔피언이자 5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무시무시한 팀이었고, 비록 최전성기에 비하면 노쇠를 겪긴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거함이었습니다. 경기결과는 3:1로 인테르의 승리. 산드로 마촐라는 선제골과 레알의 추격 의지를 꺾는 3번째 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 대회 공동 득점왕이 됐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산드로에게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레알의 간판선수이자 축구계의 전설 중 전설인 푸슈카시 페렌츠였죠. 5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는 유니폼을 건네면서 말했습니다.

[예전에 네 아버지와 경기를 뛴 적이 있었다. 네 아버지는 너를 자랑스러워 할 거다. 내 유니폼을 받아다오.]

푸슈카시 페렌츠는 원래 헝가리 출신이었고, 앞서 언급한 1947년의 이탈리아 대 헝가리 경기에서 발렌티노 마촐라와 뛴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 발렌티노는 이탈리아의 상징이자 유럽 축구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고, 푸슈카시는 헝가리의 미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30대 후반의 푸슈카시가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고, 약관의 나이에 마주쳤던 전설의 아들을 만난 거죠. 축구사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어렸을 적 돌아가신 아버지를 언급하며 칭찬해줄 때, 산드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짐작은 안 가지만 분명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을 겁니다. 먼 훗날 노년의 마촐라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받았던 유니폼 중 이때 받은 유니폼이 가장 특별했다고 했었죠.



산드로는 푸슈카시, 발렌티노와 같은 반열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이탈리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위대한 인테르(Grande Inter)'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이 위대한 시기가 끝난 뒤에도 인테르의 주장으로 뛰다 은퇴하며 축구사에 자기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두 사람 다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요.

여담. 동생 페루치오는 아버지나 형처럼 전설적인 선수는 못 됐습니다만 프로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발렌티노가 처음 뛰었던 베네치아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총 3시즌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노년에는 '위대한 인테르'를 비롯해 자신이 뛰었던 이탈리아 팀들이 약물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인테르 회장에게 고소를 당했는데, 최종적으로는 페루치오가 승리했고, 산드로 역시 페루치오의 발언이 맞다고 옹호해줬습니다(다만 시간이 흐르고 페루치오가 암으로 죽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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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테르 레전드가 나와서 추천.
  • 가슴 찡한 이야기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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