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6/21 00:33:21
Name   Raute
Subject   축구계와 약물
야구게시판에서 롸동자 관련글을 보고 삘이 꽂혀서 적어봅니다.

메이저리그의 약물이나 승부조작 스캔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꽤 알려져있습니다. 최근의 바이오제네시스 스캔들이라든가 발코 스캔들은 물론이고 행크 애런의 암페타민 복용과 같은 옛날 일도 메이저리그 좀 본다 하는 팬들이면 익히 알고 있을 정도죠. 100년 가까이 된 일인 블랙삭스 스캔들도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고요. 그러나 해외축구는 축구 좀 봤다 하는 축덕들조차 잘 모릅니다. 가령 맨유와 리버풀의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저질렀던 걸 논하는 사람은 없으며, 분데스리가의 승부조작이나 80년대 세리에의 토토네로,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포르투의 승부조작도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약물은 더욱 인지도가 낮아서 대개 음모론 수준에서 살짝 언급되고 말거나 아예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축구계 약물 중 가장 유명한 건 아마 1954년에 있었던 '베른의 기적'일 겁니다. 예상대로라면 8강에서 떨어졌어야 할 서독이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라는 강호들을 연거푸 꺾더니 결승에서 역대 최강팀 중 하나인 무적의 헝가리마저 꺾고 우승을 했죠. 정말 오랜 떡밥이었고 음모론이냐 아니냐로 수십 년간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사실 명확한 증거는 없었고, 최초의 제기나 근거 역시 명확하게 설득력이 있진 않았거든요. 저도 한동안은 단순한 음모론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재작년에 독일에서 정부 차원의 조직적 도핑이 존재했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공개된 경우는 다행입니다.

마르세유에서 뛰었던 장-자크 에들리는 1993년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도핑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외면받았고, 독일의 전설적인 골키퍼 하랄트 슈마허는 자서전에 약물 관련된 얘기를 썼다가 오래도록 헌신해온 팀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후 샬케의 감독이었던 페터 노이루러는 클럽의 도핑을 주장했으나 전말이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연루된 약물 스캔들이 제기되었으나 제대로 조사받지도 않았고, 재작년에 레알 소시에다드의 전 회장이 도핑을 폭로했으나 이 역시 흐지부지된 걸로 압니다.

이게 참 묘한 게 약물이 밝혀졌어도 사람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합니다. 가령 1994년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에페드린으로 퇴출당했지만 사람들은 코카인으로 잘못 알고 있고, PED 사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마라도나의 위상을 낮추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마라도나 약물 얘기 꺼내면 말년의 추태일 뿐 그게 선수생활의 전체를 좌우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물론 이런 반응에는 미심쩍은 정황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마라도나가 FIFA로부터 저격당해서 퇴출당했다는 음모론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거든요. 그러나 단지 마라도나에만 국한된 일은 아닙니다. 펩 과르디올라가 말년에 약물 복용으로 출전정지를 당했던 일이나 리오 퍼디난드가 약물테스트에 불참해서 징계를 받았던 일들 역시 단순한 해프닝이나 혹은 별거 아닌 일로 치부되곤 합니다. 프랑크 데 부어와 페르난두 쿠투, 야프 스탐이 도핑에 걸린 건 다들 까먹어버렸죠. 슈투트가르트와 프라이부르크가 과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로 도핑했었다는 얘기 들어보신 분? 또 실수에 의한 도핑테스트 탈락도 꽤 여유있게 넘어가주는데 러시아의 알렉세이 베레주츠키와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가 감기약 복용으로 도핑 양성반응이 나왔을 때도 1경기 출장정지에 그쳤었죠.

축구계에 약물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꽤 오래전부터 돌았습니다. '베른의 기적'이 1954년이니 그때부터 잡아도 60년은 된 거죠. 중간중간에 요한 크루이프나 미셸 플라티니 같은 슈퍼스타들이 도핑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만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제대로 문제제기가 이뤄지지도 않았고, 조사도 안 이뤄졌으니까요. 사실 문제제기가 있었다 한들 조사가 잘 이뤄졌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요. 미국의 MLB 사무국이 스테로이드를 방치하고 오히려 조장하기까지 해놓고서 나몰라라 한다고 욕을 먹곤 하는데, 축구계의 약물은 어쩌면 이보다 더 뿌리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얘기가 안 나오는 걸까요? 야구처럼 가시적인 효과가 드러나는지 의문이라서? 아니면 나라별로 얘기가 다르니까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서? 승부조작에 대한 사면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스포츠팬들이 너무 엄격한 건지, 그네들이 너무 자비로운 건지 싶습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89 생활체육U-17 월드컵 브라질 격파! 게나디 골로프킨 상대 선수 폭행! 12 Neandertal 15/10/19 12675 0
    1148 문화/예술(야자) 이 할머니의 패션 43 눈부심 15/10/01 12651 0
    7073 게임문명 6: 흥망성쇠 리뷰 13 저퀴 18/02/09 12626 4
    1271 의료/건강의심스런 엘리자베스 홈즈의 테라노스 15 눈부심 15/10/16 12610 0
    1480 일상/생각한 억만장자의 하소연.gisa (마인크래프트 개발자 마커스 페르손) 16 전크리넥스만써요 15/11/06 12609 0
    188 기타기생충 한마리에 숨겨져 있던 인류이야기 5 개평3냥 15/06/03 12597 0
    842 요리/음식한국식 파스타는 왜 맛이 없을까? 14 마르코폴로 15/08/25 12590 1
    7106 IT/컴퓨터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 34 기쁨평안 18/02/13 12575 20
    1366 꿀팁/강좌홍차를 저렴하게 구입해보자 (딜마) 21 관대한 개장수 15/10/28 12568 7
    421 기타간만에 지름...에일리언웨어!!! 19 damianhwang 15/06/24 12565 0
    134 기타영화를 보면서 딴생각을 했습니다. 39 Toby 15/05/31 12564 1
    141 기타4년만에 출장으로 일본을 갔다 온 뒤 느낀점 26 Leeka 15/06/01 12563 0
    4577 요리/음식안주로도 반찬으로도 괜찮은 양송이 버섯 구이 21 녹풍 17/01/09 12557 3
    3856 의료/건강시력의 정의(definition) 9 April_fool 16/10/09 12553 3
    9902 게임[LOL] 소드 논쟁으로 보는 '롤 실력' 이야기. 19 Jace.WoM 19/10/27 12540 9
    1584 생활체육[펌] 다양한 출신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축구선수들 5 Twisted Fate 15/11/18 12539 0
    1311 요리/음식두부이야기(중국편) 24 마르코폴로 15/10/21 12500 2
    6461 일상/생각24살 고졸인데 참 제 자신이 한심합니다... 26 Tonybennett 17/10/24 12491 0
    1412 기타와인 속에 별을 담다 - 돔 페리뇽 31 마르코폴로 15/11/01 12487 2
    1180 과학/기술중국의 푸른 쑥에서 찾아낸 말라리아 치료제 [청호소青蒿素] 12 삼공파일 15/10/06 12487 2
    2157 영화왓챠 플레이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14 Toby 16/02/01 12479 2
    387 기타축구계와 약물 17 Raute 15/06/21 12479 0
    1472 경제제네시스는 더 이상 현대차가 아니다? 21 난커피가더좋아 15/11/05 12448 6
    658 영화영화 <암살> 재미없었어요. 18 한아 15/07/26 12439 0
    1249 음악도입부가 쩌는 음악 list5 25 darwin4078 15/10/14 12429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