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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6/26 03:59:12 |
Name | yangjyess |
Subject | 그리스인 조르바 |
스포 있습니다.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치밀던 분노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 한마디 말로 집약된 것에 몹시 화를 내지 않았던가? 인생을 그토록 사랑하던 내가 어찌하여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렵혀진 종이에 그렇게 오랫동안 처박혀 있 었단 말인가! 친구는 나를 들여다볼 기회를 준 셈이었다. 병명을 알았으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원고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삶으로 뛰어들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인생에 책 부스러기 따위는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 '나'는 지독한 독서광에 현재의 삶에 대해 회의하고 고민합니다. 그런데 갈탄 광산으로 가는 도중 카페에서 조르바를 만나고 그가 보여주는 새로운 삶에 매혹됩니다. 조르바는 거의 아나키스트라고 보여질 정도로 도덕과 윤리, 제도와 정치, 종교 등을 부정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합니다. 그 기본중에 기본이 되는게 먹는 것입니다. 먹어야 살죠. ["보스, 몇 시간이나 찾아다녔어요. 닭을 삶고 있는데 이러다 다 바스러지겠어요." "알아요. 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육체에도 영혼이 있답니다. 몸을 가엾게 여기세요.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인간이란 얼마나 이상한 기계입니까? 그 속에 빵, 물고기, 포도주 같은 게 들어가면 이게 한숨이나 웃음, 꿈이 되어서 나오잖아요.] [누구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누구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하느님께 돌린다고 합디다. 세 종류의 인간이 있는 셈이지요. 나는 내가 먹은 걸 일과 유머에 쓰지요. 보스, 당신은 말예요... 먹은 걸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쓰는 것 같소만 그게 맘대로 되질 않으니 괴로운 거요] 조르바는 육신의 쾌락을 업신여기며 먹는 것조차 부끄럼을 느끼는 '나'에게 일갈합니다. 식욕을 통해 육체의 에너지원을 채우고 정신의 힘은 곧 그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나'가 조르바에게 반했던건 자신이 겪어온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이 무너지고 그 허무함을 조르바가 채워줄 수 있다고 여겼죠. 소년시절 친구들과 만들었던 공제조합의 이상은 말 그대로 유치한 이상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함께 목숨을 걸고 불의와 싸우겠다고 맹세했던 친구들이 돌팔이 의사, 삼류 변호사, 저질 식료품업자, 표리부동한 정치가, 베껴먹는 언론인이 되어 가는 걸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나'는 광산에서 조르바와 함께 인부들을 감독하며 새로운 삶과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광산 일이 잘 되면 모든걸 나눠 갖고 형제처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는 그런 공동체. 그런 '나'에게 조르바는 또 충고합니다. ["보스, 인부들 신상을 자꾸 물어보고 다니지 마세요. 잘해 주면 발목 잡혀요. 보스가 그렇게 다독거리는 게 인부들이 일하는 데 방해만 된다고요. 인부들을 보살펴 주는 일은 하느님이 하는 겁니다. 보스가 쎄게 나와야 인부들도 보스를 존경하고 일도 잘해요. 보스가 물렁하면? 인부들은 일을 보스에게 다 미뤄 버릴 겁니다. 아시겠어요? 내가 아무리 애를 쓰면 뭐합니까? 사회주의? 개코 같은 소리! 당신은 신부님인지 자본주인지 결정을 내려요!" "당신은 사람을 너무 안 믿는 거 아닙니까?" "보스, 인간이란 자고로 짐승입니다. 이 짐승에게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합니다. 친절하게 대하면? 눈깔을 뽑아 갈 거요. 놈들이 기어오르게 하지 마요. 평등하다느니 똑같은 권리가 있다느니 그따위 소리 하지 마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한다니까요. 나는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나 조르바만 믿지. 내가 딴것들보다 낫다고 하는 말이 아니오. 내가 아는 것 중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나 조르바 뿐이라 그렇소.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낸 것만 믿어요. 내가 죽으면 모든 게 죽는 거지.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죽는 거요."] 조르바는 스스로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서 세상과 거리를 두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세상과 더 가깝게 살고 있습니다. <평등한 우리, 똑같은 권리>는 관념의 세계에서 가능한 것이고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믿고 타인과 살고 일하려는 행동인 것이죠. 조르바가 사람들에게 갖는 애정은 사회주의 같은게 아닙니다. 갱도가 무너지는 극한 상황에서 인부들부터 피신시키는 조르바의 모습에서 그의 사랑은 관념의 영역이 아니라 행동의 영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조르바가 고개를 들고 갱도가 벌어진 곳에 귀를 갖다 댔다. "조르바, 왜요?" "나가요! 빨리 나가!" 조르바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출구를 향해 달렸다. 첫 번째 버팀목을 지나기도 전에 두 번째 버팀목이 있는 천장이 온통 쏟아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조르바는 갱도 사이에 큼지막한 통나무를 쐐기처럼 박아 밀려 나오는 받침대를 고정하려 애썼다. 우리가 탈출할 몇 초를 벌어 주기 위해서. "나가!" 조르바가 다시 소리를 질렀지만 그 목소리는 땅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겁쟁이가 되는 법이다. 우리는 조르바를 생각하지도 않고 뛰어나왔다. 나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갱도로 되돌아갔다. "조르바! 조르바!" 나는 내가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목구멍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도 못했다. 공포가 내 목을 죄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나는 조르바를 향해 팔을 벌리고 뛰어갔고 조르바도 받침대를 박아 놓고 진창 사이를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고막이 터질 듯한 세 번째 굉음을 들었다. 산이 뒤흔들리고 갱도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중략) "자, 다들 먹자고" 조르바는 별다른 말없이 먹어 댔다. 인부들도 조르바를 둘러싸고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르바 앞에 무릎을 꿇고 손에다 입이라도 맞추고 싶었지만 조르바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마침내 덩치가 크고 가장 나이가 많은 미헬리스 영감이 단단히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거기 안 계셨더라면 우리 애들은 지금쯤 고아가 됐을 겁니다." "그만하시오!" 조르바가 음식을 씹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조르바도 한때 관념을 위해 살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조르바가 젊은 시절에는 민족해방의 전사였던 것이었습니다... ["조르바, 전쟁해 봤어요?" "무슨 전쟁을 말하는 거요?" "나라를 위해 싸워 본 적이 있느냐고요." "다른 얘기 하면 안 됩니까? 그런 터무니없는 짓들은 잊은 지 오래 됐소이다." "터무니없는 짓이라고요? 조국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보스는 말해도 몰라요." "내 질문을 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볼 때 당신은 조국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거 같은데. 맞죠?" "나는 말이에요, 저건 터키 놈이구나. 요건 불가리아 놈, 저건 그리스 놈. 이렇게 구분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보스,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바짝 서 버릴 짓도 조국을 위한답시고 아주 태연하게 해치우곤 했어요. 사람 목도 긋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짓에 강간에 일가족을 몰살시키는 짓도 했습니다. 왜? 불가리아 놈이거나 터키 놈들이기 때문에. 요새는 그렇게 구분 안해요. 좋은 사람이구나, 나쁜 놈이구나. 이렇게 구분합니다. 내 입에 쑤셔 넣을 빵에다 두고 맹세합니다만 앞으론 이것도 그다지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그것들이 모두 불쌍하거든요.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누군지는 몰라도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겠지. 이 사람 안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겠지. 때가 되면 죽어서 땅 밑에 누울 테고, 구더기 밥이 되겠지. 우리는 모두 한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모두가 구더기 밥이 되거든요."] 조국 그리스를 위해 총을 들었던 조르바. 어느날 적군인 한 사내의 목을 땄는데 다음날 장터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바로 자신이 죽인 사내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모든 걸 다 털어주고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갔습니다. 조국으로부터. 조르바가 보기에 이 세상은 카오스였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이론도 이 카오스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뒷북이며 뻘짓을 뿐입니다. 그래서 조르바는 그 무상함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리듬을 탈 뿐이었습니다. ‘나’와 조르바가 야심차게 기획한 사업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책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내가 뭘 먹고 싶거나 갖고 싶으면 어찌하는 줄 아시오? 목구멍이 터지도록 처넣는 겁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놈이 생각 안 나거든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거지요. 어렸을 때 나는 버찌에 미쳐 있었어요. 먹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지요. 돈이 없으니 한 번에 많이 살 수도 없고 조금 사 먹을라치면 아쉬워서 더 먹고 싶어지고 밤이나 낮이나 그놈의 버찌 생각에 환장을 하겠더라고요. 어느 날 화가 납디다.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드니 까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어찌했는지 아시오? 밤중에 일어나 아버지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훔쳤어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시장으로 달려가 버찌 한 소쿠리를 사서는 도랑에 숨어 서 먹었어요. 넘어올 때까지 처먹으니까 배가 아프고 구역질이 나더군요. 몽땅 다 토했다오.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났어요. 보기만 해도 싫어요. 나는 구원을 받은 거지요. 언제 어디서 버찌를 봐도 이제 너하고는 볼일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는 어때요?" "여자도 차례가 올 겁니다. 에이, 젠장맞을 년들! 올 겁니다. 내 나이 일흔이 되면 올 겁니다!" 조르바는 일흔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 "아니, 여든으로 합시다 보스, 우스워도 웃지 마시오.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라는 겁니다. 내 말 잘 들어 둬요. 토할 만큼 처넣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요. 생각해 봐요.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우리는 헤어지는 겁니까? 보스는 어디로 가시려고요?" "나는 외국으로 갈 생각이에요. 내 배 속에 들어앉은 염소가 아직도 종이를 더 씹어 먹어야 배가 부르겠다네요." "보스,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아직도 못 알아 들으셨소?" "조르바. 당신 덕택에 많이 배웠어요. 당신 방법을 써 먹을까 생각 중이에요. 당신이 버찌를 잔뜩 먹고 그걸 정복한 것처럼 나도 책을 책으로 정복해 볼까 합니다.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거 아닙니까? 구역질이 날 때 확 토해 버리고 속 시원히 이별하는 거지요."] 조르바는 단순한 쾌락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조르바가 먹고 마시고 쎽쓰하는 것은 욕망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충족을 통해 정신적인 활동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육체와 정신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고 정신을 억압하는 원인을 제거하고자 했는데 그것은 몸과의 화해였습니다. 인간이 짐승임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깃발 아래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인간이 얼마나 짐승이 될 수 있는지 실제로 경험한 조르바는 수많은 인간을 겪었고 그 인간의 모든 악에 부딪치고 온 몸에 상처와 흉터가 나 있으면서도 그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 더 순수해지고 더 젊어지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완전체처럼 보이는 조르바도 무서워하는게 있었는데 그걸 조르바는 극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주 겁나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보스한테 물어봐야겠습니다. 뭔고 하니 마음에서 생긴 겁니다. 요놈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마음이 불편해요 보스. 그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죽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깩 하고 촛불도 꺼지고 뭐 그런 거 아닙니까? 하지만 늙는 건 창피한 일이란 겁니다. 나이 먹는 걸 인정하는 건 정말이지 창피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별짓을 다 하는 거죠. 뛰고 춤출 때 등이 아파도 멀쩡한 것처럼 뛰놀고, 술 먹고 취해서 세상이 빙그르르 돌아도 주저앉지 않아요. 감기가 걸려 콜록콜록 기침이 나와도 꾹 삼켜 버려요. 내가 기침하는 거 본 적이 있나요? 보스는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그러는 줄 아실 테지만 나 혼자 있을 때도 그럽니다. 나는 나 조르바 앞에서도 창피하거든요. 어찌 생각하시오? 나는 조르바 앞에서도 부끄럽다는 겁니다. 나는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간 조항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곤 합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잖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브레이크를 걸지요. 나는 브레이크를 진작에 버렸어요. 나는 우당탕 부딪힙니다. 기계가 궤도를 이탈하는 걸 우리 같은 기술자들은 우당탕이라고 하죠. 내가 우당탕할까 무서워 살살 다닐까요? 나는 그저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부딪쳐서 박살이 나면 뭐 어때요. 그래 봐야 손해날 게 뭐 있다고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느냐고요? 물론 갑니다. 하지만 기왕 갈 거 신명 나게 가자는 거지요] 이성과 욕망을 대립시킨 다음 매력적인 캐릭터 조르바를 앞장세워 욕망을 편들고 책과 이성의 인물인 ‘나’의 자기비하로만 결말이 지어졌다면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자유의 의미를 찾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현실에서 억압된 욕구충족을 거리낌없이 행하는 조르바를 통해 대리만족이나 좀 느끼고 말았겠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보여주는 자유는 조르바의 활약만으로는 완성되지 못합니다. 비리비리했던 책벌레 ‘나’의 성장이 그 반쪽을 메꾸고 있으니까요. ‘나’는 조르바를 통해 책에 대한 회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단련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배웠으니까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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