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2/04 15:47:00
Name   구밀복검
Subject   컨택트 단평(스포일러).
내일 팟캐스트 녹음 소재인데...어제 본 바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스포주의)









원작에서는 대상을 인과적으로 해석하는 인간과 전혀 다른 사고 체계를 갖춘 외계 존재를 루이스가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지하여 사태를 바라보면 어떤 인식에 도달하는지'를 사고실험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시간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대상으로 볼 때 얻어지는 결정론/목적론적 인식을 제시하여, 인과관계와 자유의지를 근간으로 하는 일반적인 현실 인식의 자의성을 강조하면서 독자에게 사변적인 전복감을 주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루이스가 자신과 딸의 인생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요.

그런데 영화에서 이러한 [시간의 비선형성]이라는 소재는 고작 '미래시점에 샹진핑이 자신에게 알려주는 멘트를 예지한 루이스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 멘트 그대로 설득하고 인류 대타협 두둥'과 '사실은 처음부터 나온 딸내미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 시점의 일이라능 반전 두둥' 정도로만 활용되지요. 한 마디로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두 축인 [외계인과의 조우 서사][딸에 대한 어머니의 모성애 서사]가 필연성 있게 호응되진 않는 것이죠. 루이스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환희와 절망을 긍정하며 딸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삶을 수행perform해 나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루이스가 세계와 우주의 평화를 지킴 메시야 짱짱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결국 따지고 보면 드래곤볼에서 트랭크스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새로운 현실인식을 하게 되어 집으로 돌아와 인조인간과 셀을 무찌르고 엄마 부르마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수준의 오락적 쾌감을 관객에게 주려 했다는 것이고, 이는 장르코드 놀음일 뿐이죠. STAY!

또한, 원작에서는 루이스가 단일 시점에서 마치 '신'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점에 중첩시켜놓고, 딸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을 동일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텍스트로 전달하지요. 그런데 이것을 표현하기 훨씬 쉬운 영상 매체인 영화 – 컷분할이나 교차편집이나 오버랩만 해도 되니까 - 임에도 딱히 그런 씬이 없다는 점에서, 단순히 미래를 '알면서도' 정해진대로 인과율에 순종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현재 자체'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 루이스의 시선을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싶습니다. 원작을 떼어놓고 영화상의 묘사만 놓고 보면 루이스는 [성공한 카산드라]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죠. EUREKA!

특히 정치드라마를 왜 굳이 집어넣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외계인의 도래에 대한 인간들의 혼란 섞인 반응과 [죄수의 딜레마]적 상황에 놓인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치킨 게임은 원작에 전혀 없는 요소인데, 이것은 '진리와 이상에 도달하려는 과학자들의 순수하고 초월적인 열망과 이를 제약하는 불순하고 근시안적인 정치적 이권 다툼의 대립'이라는 진부한 코드 - 과학 포르노 - 로 귀결될 수밖에 없거든요. 실제로도 그렇게 흘러갔고요. 물론 이 소재는 진부하다 뿐 새롭게 변주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겨우 '루이스 님이 중국어도 잘하고 미래도 봐서 진핑이 형이 꺼벅 죽었음'이라니..특히 미국 못 살게 구는 하드트롤러로 중국을 묘사하는 것이나, 마지막에 모든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 전세계의 텔레스크린이 파도처럼 바뀌어나가는 연출을 볼 때는 배꼽이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마치 1997년 작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흔한 미국 짱짱국 영화에서 '여러분!!!!!!!!!!! 아메리카가 승리했습니다!!!!'가 전세계로 보도되는 수준...

여하간 <인터스텔라>나 <미스터 노바디>, <나비효과>와 같이 시간 비틀기에 따른 인과의 전복을 가지고 마케팅했던 장르물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싶네요. 제작 발표 났을 때부터 손에 꼽아 기다렸는데 입맛이 씁니다..



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70 일상/생각컴패션, 이타심 26 Liebe 17/10/27 4805 15
    6195 IT/컴퓨터컴쫌알이 해드리는 조립컴퓨터 견적(2017. 9월) 25 이슬먹고살죠 17/08/29 7727 20
    5539 IT/컴퓨터컴쫌알이 해드리는 조립컴퓨터 견적 (2017.05) 14 이슬먹고살죠 17/04/28 6771 9
    4989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5) SSD, HDD, 파워, 케이스, 쿨러 등 4 이슬먹고살죠 17/02/24 4825 4
    4988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4) 모니터 2 이슬먹고살죠 17/02/24 5909 2
    4976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3) 그래픽카드 편 4 이슬먹고살죠 17/02/23 5850 5
    4972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2) CPU 메인보드, RAM 편 6 이슬먹고살죠 17/02/23 6322 8
    4971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1) 배경지식, 용도결정 편 4 이슬먹고살죠 17/02/23 4625 10
    12496 IT/컴퓨터컴린이의 컴 오래쓰는 법? (소프트웨어 & 물리) 18 Groot 22/02/07 4243 8
    4606 역사컬트. 짐 존즈. 2 은머리 17/01/12 4218 2
    7157 스포츠컬링 SBS 결승전 예고 및 일정.. 1 Leeka 18/02/24 3355 0
    4827 영화컨택트(2016) _ 세 가지 아쉬운 점 (스포o) 5 리니시아 17/02/10 5253 2
    4780 영화컨택트 보고 왔습니다 19 Raute 17/02/05 3798 0
    4764 영화컨택트 단평(스포일러). 14 구밀복검 17/02/04 4622 5
    3127 영화컨저링 2가 제게 남긴것 2 regentag 16/06/26 3981 0
    6629 일상/생각커피클럽을 꿈꾸며 11 DrCuddy 17/11/21 4521 11
    1363 요리/음식커피이야기 - 경매 6 만우 15/10/28 11477 0
    7573 창작커피에서는 견딜 만한 향이 났다. 3 quip 18/05/23 3964 8
    7576 일상/생각커피야말로 데이터 사이언스가 아닐까? 33 Erzenico 18/05/24 4500 12
    849 의료/건강커피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최신 지견 46 레지엔 15/08/26 8571 0
    124 기타커피 좋아하시나요? 40 민트밀크라떼 15/05/31 10733 0
    2712 기타커피 이야기 - Caffeine (리뉴얼버전) 15 모모스 16/04/29 5595 3
    1051 기타커피 이야기 - Caffeine 11 모모스 15/09/21 9640 7
    3245 음악커플이 연습하기 좋은 듀엣곡들 36 기아트윈스 16/07/11 5072 0
    14360 문화/예술커버 댄스 촬영 단계와 제가 커버 댄스를 찍는 이유. 6 메존일각 23/12/25 1800 1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