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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14 18:22:34
Name   니누얼
Subject   고백의 추억(2)
그는 뜬금없이 자신의 첫사랑 얘기를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던, 여자애가 고백해서 사귀었고,여자애가 유학을 가면서 헤어졌다고 했다.
똑똑했고, 똑부러진 성격에 자신의 친구들은 여자친구를 별로 안좋아했다고 했다.
그때는 사랑했는지 몰랐는데 헤어지고 돌이켜보니 첫사랑이었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차를 세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심하게 쿵쾅거리던 가슴은 그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되어 갔다.

한참을 첫사랑 얘기를 하던 그가 말했다.

"나 지금 실수한거지?"
"실수한건 알아?"
"하하 그러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잠시간의 침묵.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대비가 되어있었다.

"두달만 기다려줘."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대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싫어. 안기다릴거야."
"두달 있다가 대답해줄께."
"아냐. 하지마. 대답해달라고 한 말 아닌거 알잖아. "

내가 한 말은 고백이 아니었다.
대답을 구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두달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은 이상, 나는 기다리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나는 통화를 끊고 그 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알게된지 2년 쯤 되었을 때,
한 해의 마지막 날, 그가 맛집에 데려가주겠다며 나를 불러냈다.
학교나 고시촌 밖을 벗어나지 않던 그가 서울 시내에서 만나자고 했다.

언제나처럼 나는 정시에 도착했고 그는 늦었다.
근처 까페에서 책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그는 까페 안으로 들어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오기만 하면 잔소리를 퍼부어주려던 마음은 쓰담쓰담과 함께 녹아내렸다.

유명하다는 맛집이었지만 시간이 애매한 탓에 기다리지 않고 들어가서 앉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나는 먹는데만 열중했다.

그시절 나에게는 썸을 타던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한 나의 마음이 쉽게 단념되지 않음에 한탄하며 새로운 사랑을 만들고자 노력해야했다.
내가 먼저 호감을 표시해서 크리스마스 날 데이트도 했었다.
그는 들떠있던 나에게 크리스마스 날 데이트 좀 했다고 해서 무슨 사이라도 된 냥 착각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오늘 내가 왜 불렀는 줄 알아?"
"글쎄? 이거 먹고 싶어서?"
"내가 왜 너랑 이거 먹는 줄 알아?"
"글쎄? 불쌍해서?"
"좋아하니까 부른거지 바보야."

그러니까 나는 방금 전까지 썸남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데이트까지 했건만 뜨뜨미지근한 썸남의 태도에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어머, 나도 사실은...'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에이, 오빠가 날 뭘 좋아해~ 맨날 놀리기만 하면서. "
"좋아하니까 놀린거지. 그런것도 모르냐."
"됐네요. 안 믿어 그런 말."


결국 썸남과는 잘 되지 못했다.



기다리는 것도, 기다리지 않는 것도 아닌 마음으로 시간이 흘렀다.

두달이 되어갈 무렵 그가 나에게 밥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마침 발렌타인데이 무렵이었기에 나는 비싸고 맛있는 초콜릿을 사들고 그를 만나러 갔다.

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달라진게 없어 보였다. 언제나처럼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려고 까페로 갔다.
커피를 받아서 앉자마자 그가 물었다.

"내 어디가 좋았어?"
"글쎄.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점이 좋아보였어."

나는 실제로 이런걸 묻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언제부터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   근데 나 오빠랑 사귈 생각 없어."
"왜?"
"나보다 팔뚝 얇은 남자랑은 안사겨."

이건 진심이었다.

"진짜로 안사귈꺼야?"
"응. 안 사귈꺼야."
"그래도 기다릴꺼지?"
"아니. 안 기다릴꺼야."

그는 다 안다는 듯 웃었다.

그가 초콜릿을 꺼내었다.

"이거 비싼거야? 완전 맛있어 보이는데."

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줬던 초콜릿이다. 나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남 주지 말고 오빠 혼자 먹어."

그는 매년 내가 준 초콜릿을 지인들과 나눠 먹었다.

"응, 알겠어. 진짜 나만 먹을게. 너도 안줄게."
"난 빼고."
"싫어. 진짜 혼자 다 먹을거야."

개구진 표정으로 뚜껑을 덮어버린 그는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전화로 결국 독서실 사람들과 초콜릿을 나눠먹었다고 실토했다.
자랑을 하려고 하니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댔다.

두달이 지났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없는 것이 그의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써 흐르는 시간을 무시하며 지내던 어느 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약속한 대답은 들어있지 않았다.

통화가 끝을 향해 달리던 무렵, 나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오빠. 나 고민이 있어."
"뭔데? 무슨 일 있어?"
"나는 왜 포기가 안될까?"
"응?"
"아닌거 알면서도 포기가 안되네. 어떡해야할지 모르겠어."
"아....있잖아... 그게말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미안... 너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을 것 같아."


그 이후의 대화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생각은 나지만 이곳에 적기엔 너무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후로 그에게 오는 문자들을 무시하던 나는
마지막으로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았다.

"나 이제 안볼꺼야?"
"응 오빠. 미안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빠를 좋아했나봐. 나는 아직도 두달을 기다려달라고 했던 오빠의 마음이 이해가 안가고.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한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오빠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그동안 즐거웠고,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지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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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쓰고 싶었던 내용은 1편에 다 들어있습니다.
전화 통화로 고백을 한 여자와, 고백을 들은 남자의 반응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거라..

그리고 2편의 내용은 탐라에도 간략하게 썼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뭔가 기시감이 드는 것 같았는데.. 제가 탐라에 적었던 게 생각이 났습니다. ;;;;;;;;; 이노무 기억력 ㅠㅠ


저는 현재 결혼한 아줌마인데.. 이런 글을 써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내 남편이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내 기분은 어떨까...싶었는데..
근데 뭐 내가 결혼을 했다고 이런 글도 못쓰나. 내가 뭐 사랑을 하고싶다는것도 아니고, 그냥 글일 뿐인데. 라는 생각으로 썼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남편 귀에 안들어가길 바랄뿐이라고 해야할까요..ㅠㅠ

anyway, 저는 얼른 글 올리고 도망가야겠습니다. 헤헤 즐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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