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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6/21 11:46:29
Name   켈로그김
Subject   나는 영재였던가..?

1.  
제 아버지에겐 세가지 자랑포인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우수한 머리를 자랑하는 것이었고,
하나는 자식인 저를 선행학습시켜 역시 자신의 우수한 유전자를 자랑하는 것이었지요.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학벌을 자랑함으로써 개백수에 약국 셔터맨인 본인의 멘탈의 끝을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늘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켈로그 니 머리는 내 머리 반이다. 내 머리는 니 할아버지 반이지"

제 머리가 평균치쯤 된다고 치면, 할아버지는 소년탐정 김전일이오,
조선시대에 사셨던 조상님은 알파고쯤은 자면서도 쳐바를 수 있었으며,
시조인 알에서 태어난 김수로왕쯤 되면, "빛이 있으라" (아이작 아시모프 : 최후의 질문) 외치면서 태어났을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2000년대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남은 미래는 이끼나 플랑크톤 혹은 미세먼지가 되는 것 뿐이죠;;


IQ를 기준으로, 시조인 김수로왕의 지능은 현생인류의 2의 73승배가 되며, 근사값으로 10의 22승정도가 됩니다.
이쯤되면 가야가 은하제국이었다고 보는게 설득력이 있는걸로..


2.
어쨌든 선행학습은 요즘 기준으로 방배동급으로 받은 덕에,
(아부지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 전교생의 1/3 서울대 갔다는.. 인간들 중에서 비슷한 개백수가 몇 있었는데,
자제들을 모아놓고 스파르타식 선행학습을 시켰습니다.)

품행이 방정맞음에도 불구하고, 학년 진급때마다 교사들은 저를 어떻게든 해보려 했습니다. 학기 초에는...
그리고 곧 '이놈은 혼모노 개진상이다' 라는걸 깨닫고 포기하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저를 향한 미움을 체벌로 승화시켰죠 ㅡㅡ;;

그러다 6학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특별취급하지 않았어요.
성적은 저랑 비슷한데 품행이 방정한 엄친아가 같은 반에 있었기 때문이죠. 엄친딸도..

모든 6학년 담임들이 우리 담임을 부러워했습니다. 메시, 날두, 그리고 카사노(;;;)를 한 팀에 가진 감독을 보는 느낌;;
단 한명, 5학년때 제 담임만 빼고.
그 분은 제가 혼모노라는걸 아주 거하게 알았기 때문에 제가 뭐라도 사고를 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거지요.
(Shit in the deskdrawer...)

하지만, 6학년.. 사춘기를 맞이한 저는 사고를 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탈하게(제 기준에서는) 졸업을 했어요.


제가 크게 사고를 칠 확률이 등교일 기준으로 약1/200이라 하고,
동일한 조건에서 또다시 사고를 칠 확률(1-사고를 치지 않을 확률)을 계산하면,
약 0.633이 나오네요.
이정도면, 빈 속에 진통제를 먹어서 배가 아플 확률이라거나
영유아가 항생제를 먹고 설사를 할 확률보다도 큽니다.

5학년 담임은 현명한 사람이었던 것이었고,
6학년 담임은 운이 좋았네요 ㅡㅡ;;



3.
중학교 입학할 때, 저희 동네에서는 반편성 배치고사라는걸 쳤습니다.
그걸 통해서 우열반을 나누는.. 건 아니고,
1 2 3 4 5 6 7 8 9 10
20 19 18 17 16 15 14 13 12 11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이런 식으로 각 반의 학생 풀을 균일하게 집어넣어주는..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 입장에서는 뭔가 평등한(;;) 느낌의 반편성을 위한 배치고사였지요.
저는 이 배치고사에서 7등인가 8등을 했어요.
당연히 담임교사는 "우리반의 누구를 짜내면 성적이 올라가는가?" 에 집중하였고, 자연스럽게 제가 타겟이 되었습니다.

중간고사를 치고 난 뒤, 담임은 저희 어무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담임 : 켈로그가 공부를 안하는거 같습니다 어머니.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무이 : 켈로그가 제 아들이지만 아직 인간이 아닙니다 선생님. 저 상태에서 공부만 잘하면 답이 없어요. 사람 좀 만들어주세요.
담임 : 그건 그런거 같아요.
(각색은 있으나 과장은 전혀 없는 대화의 재구성)

대충 2,3학년때도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어무이의 적절한 커트로 인해..
저는 큰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입학성적 비슷하게 졸업을 해서 지역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습니다.

당시 어무이 약국에 오던 동네 형이
"켈로그 어느학교 들어갔어요?" 물어봤다가 "shit고 들어갔다" 는 대답을 듣고는..
"켈로그가요?.... 나랑 맨날 같이 오락실에서 노는데.. 지금도 오락실에 있던데.." 라고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말년은 좀 힘들었습니다.



4.
비평준화지역의 1등 고등학교라는게 다 그렇듯. 잘난애들만 모아놨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누군가는 꼴찌를 하게 되어있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축구특기생이 스무명정도 있었는데, 최종 내신으로 축구부의 절반을 제끼고 아래로 기어들어가는 위엄을 보여줬지요.
수능쪽은 문제를 푸는 스타일이 (대충, 빨리) 저랑 잘 맞아서, 그래도 상위권언저리에 걸쳤... 는데,

이 때, 아부지 생각이 좀 났습니다.
'아... 그 사람이 이래서 자기 머리를 자랑했구나... 그거라도 자랑했어야 했던거구나..'
저도 IQ테스트로는 전교1등이었거든요... 어느새 그게 저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있었고...

2학년때 스타크래프트가 막 나온 시점에서는 공업탑 근처 pc방 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하고,
오락실에서 킹오파를 하는데 이게 또 손에 잘 맞아서 일부의 평으로는 울산 전체 원탑이 되기도 하고,
매직 더 게더링이라는 카드게임을 하면서는 또 지역우승을 6개월정도 독점하면서 전국 토너먼트에서 준우승도 하고..

'내 머리는 오락 머리군!' 하는 일종의 합리화? 에 성공했습니다.

고등학교 담임들에게 있어서 저는,
"성적은 저 놈 하나 버려도 다른 대체제가 많은데, 저놈때문에 면학분위기 해치는게 손해니 때려패서 고치거나 전학보내자" 였어요.
실제 학부모 호출로 전학권고도 두 번 받았고.. 맞기도 많이 맞았고..

결과적으로는 그냥 자습 도망가서 알바하고, 알바해서 번 돈으로 놀았습니다 ㅡㅡ;;
그게 학교측과 제가 서로 수용할 수 있는 합의점이었던거죠.



5.
지금와서 냉정하게 보면, 지능, 혹은 재능이 아예 없진 않았던거 같아요.
IQ값만 보면, 뭔가 꽤 재능이 있었던 편이었을 듯 하고.
그게 요즘 말하는 영재의 기준에 부합을 할거에야 아마.
과외를 해 보면서, 확실히 "그래도 나란 놈이 가르칠 맛은 있었던 놈이구나.. " 하는 삘은 왔어요.

다만 현실은..
저는 혼모노 진상이었고. 저의 품행을 그나마 합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데 담임들이 갈려들어갔고.. 어쩌면 몇 분은 암에 걸리셨을지도;;;
정작 저는 점점 인간의 영역에 가까워지면서는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야 롱런할 수 있는가?" 에 대해 방황을 하는 척 하면서
노는데 열정의 절반, 그 노는 자금을 마련하는데 나머지 열정의 절반을 쏟아부었죠.

되고싶은 목표가 보이지 않았어요.
똑똑한 개백수 알콜중독자는 일단 아닌거같고..
일을 다녀보니 노가다나 공장 아재들이 좀 소탈하면서 개그도 마음에 들어서 그쪽이 괜찮은 삶인가.. 싶다가도
룸에서 밴드시다로 일하다 보니, 그런 전형적인 아재들이라고 해서 다 사람 꼬라지는 아닌거같고..
한 1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프로게이머라는 롤모델들이 있었을텐데.. 시대 탓도 살짝 해 보고;;


6.
제가 생각하는 교육. 그 중에서도 영재교육은 이런거에요.

1) 소수의 영재들을 굳이 비료나 MSG 쳐가면서 키울 필요 없다. 걔네들로 굳이 자리 채우지 않아도 다른 애들로 채워진다.
사회적으로 별 의미 없는 짓이라고 본다.
어린 재능이 아니라, 고등교육 이상의 성취도/결과물을 보고 집중 육성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이건 말 그대로 인재육성이다.

2) 영재들 본인의 삶을 생각해보아도, 강요로 꽃을 피운 재능이 본인의 행복과 동치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특정 시점의 아웃풋에는 다소 차이가 생길지라도, 흥미와 적성을 고려해주는게 개이득이다.
(이건 제 기우인걸로.. 요즘의 영재교육은 이런 식이라고 하데요..)

3) 어쨌든 점점 영재라는 놈들(;;)의 발견이 용이해지는 쪽으로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20년 전이었다면, [ 이상혁(21. 무직. 불후의 명곡 방청객) : 알리가 최고~ ] 이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

요즘 주변에서 딸내미 관련해서 여기저기서 마눌님에게 바람을 넣고 있어요.
저는 제 딸이 반에서 철봉에 가장 잘 메달리고 또래에 비해 편식이 없는게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인데,
혹시.. 만-약에.. 진짜로 '끼'가 있다고 해도 영재교육따위는 하지 말자고 설득을 했습니다.
선행학습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만 해도 충분히 편하게 학교 다닐 수 있다고..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아이에게 좋은 롤모델이 힘껏 되어보거나;;
아이의 욕구/욕망을 잘 이용하자고.. 안좋다 싶은건 컨트롤하게 하고, 괜찮다 싶은건 입 꾹 다물고 있자고 ㅡㅡ;;;

그러다가.. 아래 SCV님의 선생님 글을 봤더니 확.. 뽐뿌가 와서 끄적였습니다;;



10
  • 부모님, 효도할게요.
  • 역시 범상치 않으신 분
  • 선배님 글은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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