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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8/25 14:51:35 |
Name | 삼공파일 |
Subject | 푸념 |
저도 인턴 되기 전에는 제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습니다. 물론 저 빼고 다 알았겠죠. 오늘 사원증을 방에 두고 와서 점심을 굶었는데 그 시간에 이걸 썼습니다. 제가 인턴으로 근무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서는 그 병원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더럽다는 것의 정의가 애매모호하다면 그냥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더럽다"라고 정하면 될 정도였습니다. 손바닥만한 욕창을 메꾸고 썩어가는 손발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그 환자들을 소독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항생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그 상처들에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지독한 세균들이 득실대고 있습니다. 저는 장갑을 낀 채 엉덩이며 허벅지며 레지던트와 교수님이 잘 볼 수 있도록 낑낑대며 몇십분씩 들고 있었고요. 계속 되는 업무에 씻을 시간도 없어서 제 자신도 더러워졌지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있는 선배님들은 간병인들이 일할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았고 기저귀를 열었을 때 똥이라도 있으면 제가 치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술방 분위기는 또 얼마나 살벌한 지 언젠가 여기에도 썼듯이 혓바늘을 깨물어 가면서 스크럽을 섰지요. 저는 정말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성형외과 레지던트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내과에서 근무를 해보니 우습게도 성형외과에서 봤던 환자들은 하도 상태가 안 좋다 보니 저한테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하지 않아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조금 위험한 술기를 맞닥뜨리면 그래도 똥 치우고 소독하는 건 실수해도 다시해도 될 수 있어서 편했구나 싶더랍니다. (내과를 먼저하고 성형외과를 나중에 했으면 반대로 생각했을 겁니다.) 사람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대학병원 의사들은 앞으로 안정적인 직장과 기대수익이 높다고 해서 견딜 수 없는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최근 대학병원 내의 부조리와 각종 폭행 사건이 매스컴에 드러나는 이유는 이제 그런 것을 견디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면도 있고 전문의가 되었을 때 보장되는 경제적 이익이 현저하게 줄은 데다가 무엇보다 그냥 이 모든 걸 견디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전문의가 되길 포기하고 미용시장과 요양병원으로 나갑니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지만 대학병원은 그 군대보다도 더 변화가 더디고 보수적인 곳이에요. 오히려 환자는 많아지고 의사 정원은 감축되어 더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전공의특별법이라는 게 생겨서 이걸 지킬 의지가 있는 병원들은 조금 나아졌습니다만 저는 체감을 못하고 있어요.) 거기에 바깥 환경은 나빠지고 사회적 인식은 처참해지니 더더욱 답답해지고 포기하게 됩니다. 정말 문재인케어의 진심으로 가장 화나는 점은 사람들이 대학병원으로 더 오게 만든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진비도 안 내고 MRI도 싸게 찍으면 그 사람은 좋겠지만 나머지 대학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걸까요? 대학병원에는 이미 메르스만큼 지독하고 나쁜 병균들이 득실댑니다. 오지 마세요. 제발 병문안이라도 오지 마세요. 집들이 같은 거 할 장소가 아닙니다. 가끔 이국종 교수님 같은 사람의 기사에 달린 댓글 같은 걸 보면 사람들이 상상하는 참의사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성형외과 의사가 등장합니다. 성형외과 레지던트들조차 이럴 줄 몰랐다는 농담을 할 정도이니 당연히 일반적인 인식과 병원의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대학병원과 바깥은 또 다를 겁니다. 그렇지만 내가 처한 현실과 남들의 인식이 정반대여도 너무 정반대니까 괜히 분하고 짜증납니다. 빨리 탈출하고 싶습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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