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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11/13 03:28:46 |
Name | 레이디얼그레이 |
Subject | 유시민 작가님 만난 일화 |
저는 유 작가님을 실물로 뵌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분이 정치 생활을 오래하셨기에 '그게 뭐 그렇게 신기할 일?'이라고 말씀들 하실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홍차클러분들과 공유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게 홍차넷 첫글이네요 두근두근) 제가 대구 수성구에 살면서 대학생이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지금은 거기 안 삽니다...... ㅎㅎ) 때는 바야흐로 18대 총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끼리 선거유세가 치열하던 시절...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유 작가님이 과감하게도 국회의원 대구 수성을 자리에 도전장을 내미셨습니다....(아아.. 대체 왜..) 저는 평소 학교 수업을 듣고 학교 주변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다보니 수성구에 희대의 선거 이벤트(?)가 생겼어도 그 열기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사는 동네가 같은 지인과 학교에서 술을 먹었나?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나?.... 기억은 안나는데 셋 중에 하나는 했을 겁니다. (첫번째일 가능성이 큽니다.ㅋ) 그러고 나서 느즈막히 버스타고 동아백화점 수성점 맞은 편에 내렸으니 그 때 시각이 거의 10시 40분 쯤...??? 요즈음의 동아백화점 수성점 앞은 도시철도가 늦게까지 다니니 10시 넘어도 유동인구가 좀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시절에 밤 10시 40분이면 다니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정류장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대구는 버스가 일찍 끊깁니다. 10시 20분 정도에 버스를 타지 못하면 원하는 곳까지 못가고 중간에 내려야해요...ㅜㅜ) 인적이 거의 끊긴 보도 블럭 위를 걷고 있는데 지인이 그러는 겁니다. "어? 저 사람 유시민 아냐?" 저는 "에이~ 이 시간에 유시민이 왜 있어요." 하면서 웃고 말았죠. 이 시간이면 학원갔다오는 중고등학생들 말고는 다니는 사람도 없는데 유시민 후보가 뭐하러 여기 있겠어요.... 그런데 지인이 "어.. 아니야.. 진짜 유시민 맞는 거 같은데?" 그러더니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엄청 큰소리로 "와!!!! 유시민이다!!!!!!!!!!!!!!!!!!" 하고 (엄청)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제가 말릴 새도 없이....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 유 작가님이 맞았습니다! 오오오 세상에.... 참고로 유 작가님은 저희 어머니하고 동갑이십니다. 자식 뻘인 인간들이 손가락질을 하면서 "유시민이다!!!!!!" 이런 거예요. 유 작가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헉, 전 그 순간 그 지인을 놔두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만. 이미 유 작가님이 저희에게 다가오고 있었어요!!!!! 저희를 바라보면서요.... 점점 다가오는데 보니까 유 작가님은 혼자가 아니라 보좌진을 두세명 정도 함께 대동한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세 명이상의, 양복입은 중년남성이 저희를 뚫어져라 보면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죠!!! 제 지인은 결례를 했다는 생각보다는 유명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대흥분 상태가 되어 날아오를 지경이 되었어요. 그 때가 초봄이어서 밤에는 꽤 쌀쌀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 멘붕해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얼어붙었고 제 지인은 이성을 잃고 푸처핸섭한 채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고 있었어요. 이윽고 유 작가님이 저희 앞에 멈춰섰습니다. (좀 굳은 표정이었던거 같아서 더 무서웠어요.) 그리고 유시민 작가님의 입이 열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순간이 슬로우모션 같아요. "초면에 어린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유시민이다'가 뭡니까?"하면서 한소리 들을까 봐 두려워서 말이죠. 긴장하고 있는데 급 미소를 지으시더니 저랑 지인 둘을 번갈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유시민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뭔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아.. 들으셨어.. 우리 대화를 들으셨어!!!젠장!!!! 제 마음과 상관없이 유 작가님은 그 말을 하시고 악수를 청하시려는 겁니다. 그 때 뒤에서 보좌관인지 누구인지 양복입으신 분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후보님, 저희..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하면서 제지하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유 작가님이 "아, 이분들하고 마지막으로 잠깐 이야기하고 이동하죠."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유시민 후보가 그 하루의 끝에 마지막으로 만난 유권자였던 거예요!! 제 지인은 "우와~ 진짜 유시민님이시네요!!! 실제로 만나게 될 진 몰랐어요!! 정말 영광이에요!! 신기해요!!!" 막 이러면서 열정적으로 악수를 했습니다. 악수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내용이 뭔진 기억이 잘 안납니다... 뭐.. 학생이냐, 이 시간까지는 뭐하다가 오는 길이냐, 그런 대화였던거 같아요. 유 작가님 질문에 우리가 어색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 우린 술을 먹었었나봐요.. 힣 아무튼 저에게는 영겁과도 같았던 (실제로는 찰나에 불과한) 악수와 대화가 끝났습니다. 소리를 친 건 제 지인이니 지인하고만 악수를 하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몸을 약간 틀어서 저에게도 악수를 청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도 너무 놀란 상태였기 때문에 어버버하면서 얼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보같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한쪽 손만 빼서 악수를 하는 결례를 범하고야 말았습니다..ㅜㅜㅜ 유 작가님도 그 순간에는 표정이 안 좋으셨던거 같...ㅜㅜ 그렇게 황당한 악수회를 마치고... 유 작가님이 '아, 여기 명함'.. 하면서 명함을 하나씩 나눠주시더라고요. 제 자신이 최악이라고 느꼈던 건 악수하고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갑자기 명함을 주시는 바람에 주머니에서 왼손을 어정쩡하게 뺀 채 한 손으로 명함을 받았단 점입니다. 제에길...ㅜㅜ (왜 그랬는가 과거의 나여....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이불킥을...) 유 작가님이 지인과 저에게 조심히 집에 들어가라고 당부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헤어졌습니다. 저희는 은행 방향으로 가던 길 계속 걸어갔어요. 유 작가님은 그 반대방향으로 보좌진과 함께 이야길 나누며 걸어가시더군요. 제 지인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기다리면서도 명함을 들여다보며 "신기하다!! 실제로 만날 줄이야!!"하면서 엄청 신나했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그래도 초면에 유시민이다!가 뭐예요."라고 한마디 했죠. 지는 한쪽 손 주머니에 손 넣고 악수하고 명함 한 손으로 받았으면서.....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하니까 마음이 찡 했습니다. 사람 별로 안 다니는 늦은 시간까지 선거 유세를 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서는데 자식 뻘인 사람의 반말을 들은 거잖아요? 그런데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다니... 거기다 한 손으로 명함받는 싸가지 없는 어린 인간에게도 웃으면서 악수하고 인사해주다니.... '유시민이 대구에 출마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두가 아는데 후보 등록을 하고 필사적으로 늦은 밤까지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에 뭔가 울컥했어요. 당시에 주호영 후보하고 붙었는데 솔직히 그 때의 주호영 후보면 밤 10시 40분에 수성 동아백화점 주변에 있을 리가 없었거든요.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그래서 더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밥상 앞에 앉으실 때마다 반드시 유시민 후보를 뽑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유 후보님은 저에게 선거 유세를 더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 일을 겪고 반드시 유 후보를 국회로!!! 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은 .... 그래도 유시민 후보의 도전은 요런(↓) 평가를 받게 됩니다. 유시민 후보, 與 텃밭서 '예상외 선전'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6126&yy=2008 그 뒤로 8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노유진의 정치까페를 듣는데 유 작가님이 "선거 유세할 때는 간이랑 쓸개를 잘 씻어 베란다에 널고 나온다더라."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 때의 일이 떠올라서 엄청 찔렸어요. 유 작가님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유권자 많이 만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서 저 말을 한 건데 거기에 노회찬 의원님이 "음? 나는 그런 일 별로 겪은 적 없는데" 하고 대꾸하셔서 더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 때 정신차리고 제대로 웃으면서 악수하고 공손하게 명함을 받았어야 했는데!!! 왜 그런 거니 과거의 나!!! 으아아.ㅜㅜㅜㅜ 보통 선거유세하면 환한 대낮에 트럭타고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고, 수많은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악수를 하고,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사람 많이 다니는 길목에서 명함을 나눠주는... 그런 모습이 떠오르잖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어두운 밤길에 먼발치에서 반말을 날린 대학생 두 사람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는 국회의원 후보라니. 신선하고 강렬했습니다.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서 있던 유 작가님이 입었던 옷은 잘 생각이 안나지만 그 눈빛만은 기억에 남네요. 한 음절 한 음절 꾹꾹 눌러가며 "네, 그렇습니다. 제가 유시민입니다." 하실 때 목소리도 머릿속에 맴돌아요. 유 작가님을 그렇게 가까이서 만날 일은 다시 없겠죠. TV로 볼 때마다 유 작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이 글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도 알쓸신잡에서 유 작가님이 목포에 오면 흔들린다고 고백하시는 걸 TV로 봤기 때문이에요. 요즈음 유 작가님은 (정치하던 시절에 비해) 쓰고 싶은 글 실컷 쓰시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시고 방송에서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재미있는 것도 구경하러 다니시잖아요? 이제 더 이상 베란다에 간과 쓸개를 널어놓고 버스 끊길 무렵까지 선거유세를 하지 않아도 되는 유 작가님을 보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그 밤에 만났던 유 작가님은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있었지만 퀭하고 야위고 초췌해보였거든요. 굉장히 지쳐보였습니다. 장미대선 치르면서 명왕께서 유 작가님을 눈독들이고 있다는 내용의 각종 드립이 난무할 때도 "아 그냥 좀 냅둬!!! 유시민 작가님 밤 11시까지 선거유세하던 모습을 당신들이 봐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능... 뭐 저 따위가 행복을 빌지 않아도 유 작가님은 인생을 즐기며 사실 분이지만. 그래도 잘 지내시는 걸 미디어로 보니 제 기부니 조크든요. 그 날의 결례 때문에 무거웠던 마음도 쬐끔 덜어지는 거 같고요. 정말 그 땐 죄송했습니다. 유시민 작가님. ㅠㅠ 실제로 뵈니까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 이상 유시민이라는 유명인을 만나본 대구촌사람 레이디얼그레이의 이야기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뱀발 하나. 주변에 사람 별로 없을 때 주호영 후보 보고 저희가 "와!!!!! 주호영이다!!!!!"라고 했으면 그 분은 뭐라고 했을까요. 그게 참 궁금하더군요. 아마도 유 후보와 똑같이 하셨겠죠? 뱀발 둘. 저희 어머니에게 이 일을 말씀드렸더니 아 뭐 표 받으려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뚱하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도 장보러 가다가 악수했어. 그러면서. 그러더니 유 후보가 너무 말라서 실망했다는(????) 이야길 하셨습니다. 흥. 뱀발 셋. 유시민 작가님이 처음 건넨 말은 "네, 그렇습니다. 제가, 유시민입니다."의 호흡으로 읽어주셨음 합니다. 실제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 말을 하면서 지인과 저, 둘을 번갈아 보시는데 뭔가 제가 드라마 한 장면에 들어온 줄 ㄷㄷㄷㄷ 뱀발 넷. 대구는 촌이 아닙니다. 대구촌사람이란 말은 대구 밖을 벗어나본 적 없는 저의 촌스러움을 말하는 거예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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