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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12/19 00:37:26 |
Name | 코리몬테아스 |
Subject |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종교 개혁, 좋은 영화 |
1. 라스트 제다이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2. 스타워즈 시리즈의 제다이와 포스를 둘러싼 제다이즘은 영화외적으로 지나치게 과장되고 포장된 면이 있는데,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의 이분법적 대립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이 시리즈의 서사를 정체시킵니다. 결국 제다이즘은 기독교적 구원론과 무협의 어설픈 결합이었고, 이 이상함은 프리퀄 시리즈의 어색한 각본에서 너무 나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깨어난 포스는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깨어난 포스가 라스트 제다이여야 했습니다. JJ 에이브람스는 깨어난 포스에서 그리스 비극과 유치한 신화를 반복할 것이란 믿음을 주어서는 안되었어요. 3.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서브 플롯과 메인 플롯에서 이러한 제다이즘을 공격하는데, 이 두 가지의 플롯이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과정에는 논란이 있어도 구조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4. 조연들은 끊임없이 선택의 상황에 놓이고 잘못된 길과 옳은 길을 고민합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는 데, 라스트 제다이에서 우주는 선택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놓긴 해도 어찌되었든 등장인물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이전 시리즈와는 다른 스릴감도 주고요. 이전의 스타워즈 7편을 보면서 이렇게나 많은 조연들의 생사를 알 수 없던 적이 없습니다. 죽을 인물은 죽고, 살 인물은 사는 영웅서사의 조연들이 이제는 그 선택과 함께 생존도 모호해 진 것이죠. 인물들이 빛으로 결정되고 어둠으로 결정되어서 구조속에서 그냥 당연하게 희생되는 게 아니고, 자기들 삶 속에서 제다이 지하드를 수행해나가서 운명에 거스르다 죽거나 삽니다. 그러니까 선택은 제다이만 하는 게 아니고, 세상은 이제 제다이한테 구원받을 만큼 단순하지 않죠. 5. 메인 플롯은 조금 비겁한데, 영화 내외적으로 라이트 사이드의 화신인 루크를 데려다가 갈등을 줍니다. 포스는 루크와 감응해서 미래를 알려주고, 그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던 루크는 라이트 사이드를 위해 패륜을 저지르다가 주저하는데(혹은 다크 사이드의 유혹일 수도) 그 행동이 포스가 알려준 미래로 이어집니다. 일련의 과정은 제다이즘의 근간인 포스가 도가적 참선수행으로 선택받은 애들이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죠. 이 시점에서 루크와 관객은 이 우주를 엿먹이는 존재가 포스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미래를 세팅해놓고 장난치면서 자기들이 원한 패스로 유도하잖아요. 궁극적으로 그게 우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었던 아니건 간에 별로 바람직한 삶은 아니죠. 그리고 그 우주적 장난에 대해 유일하게 고민하는 게 제다이뿐이라는 건 엑스트라들의 삶이 부각되면서 더 이상 용인될 수 없습니다. 6. 제다이즘의 필연적인 파멸을 세팅해놓고, 루크는 당연한 선택을 합니다. 적진에서 광선검 쇼를 펼치는 게 아니라 종교개혁문을 발표합니다. 만인제사만이 우주의 구원이자 희망이라고요. 그리고 이게 비겁한 이유는 루크는 아우구스티누스이자 루터라서 그렇습니다. 캐논을 가지고 이런 짓을 하는 게 좀 멋지고 가슴벅찬 일이긴 해도 너무 잔인하거든요. 7. 이후 제다이즘에 의한 제다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루크는 최후의 제다이가 맞습니다. 모두가 포스가 가져다주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에서 회색 선택을 하면서 싸워 나갈 것이고, 그것만이 우주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다이는 없겠죠. 8. 사실 저는 라스트 제다이가 어떤 면에서는 새롭지 않다고 생각헀습니다. 왜냐면 프리퀄 시리즈가 촉발시킨 논쟁인 아나킨이 '균형을 가져올 자'라는 예언을 어떻게 수행했느냐는 논쟁에서도 종종 나오던 결론이거든요. "아나킨은 라이트 사이드로 만연한 공화국의 빛에 치우친 균형을 어둠으로 메꿈으로서 균형을 주었다." 저는 저 해석이 대세라고 생각했는 데, 알고보니 저런 해석은 틀렸다고 간주되더라고요. 9. 영화가 제다이즘을 부정하고 스카이워커 가문의 가족이야기에서 벗어나길 원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스카이워커 혈통의 힘을 빌리는 모습(레아)들은 좀 모순적인데, 그 마저도 구조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구조를 파괴할 수 없는 전통적인 모순을 그대로 재현한 것 같아서(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재밌게 보입니다. 10. 결국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새로운 구조로 편입시키는 데, 제다이즘과 선택, 혈통주의와 고결한 갈등을 카일로 렌에게 몰아넣고 만인제사와 루크개혁의 현현인 레이의 대립이 우주의 운명을 결정하겠죠. 근데 어찌되었든 전 이게 빛과 어둠의 대결보다, 오래된 갈등과 새로운 갈등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켜볼 가치는 있습니다. 11. 테드 창이 판타지와 SF를 구분법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단 한 명의 드워프가 낙원에 가는 것은 판타지지만, 만약 모든 드워프에게 낙원으로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을 상상하기 시작하면 SF가 된다고요.(살짝 확실치는 않은데 뭐 이런 뉘앙스) 그런 관점에서 스타워즈는 정확하게 현대적인 SF 서사를 꿰뚫고 있고 그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12. 스노크의 최후와 레이의 출생의 비밀은 정말 전형적인 JJ의 안좋은 떡밥투척에 대한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고 보는 데, 레이의 출생은 라스트 제다이의 서사적 필요에 의해 어느정도 운명이 예비되었고, 스노크를 카일로 렌이 그렇게 처리한 것은 이게 '제다이의 귀환'의 재탕이 되지 않기 위한 시도임과 동시에, 이딴 불필요한 떡밥 필요없다는 반항이 아니었을 까 싶습니다. 13. 신화의 신성성을 훼손했다는 측면에서 들어오는 비판들을 좀 생각해봤는데, 만약 스타워즈가 영웅서사이길 계속했다면 오히려 그 신화의 가치는 더 퇴색되었을 것 같습니다. 루크가 종교개혁하지 않고 웅장한 음악이 깔리는 와중에 ''광선검''을 휘둘러주면서 말미를 장식할 수도 있죠. 레이의 출생배경이 좀 더 굉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좀 더 시간을 앞을 돌려서, 스노크와 카일로, 루크와 레이로 대비되는 스승과 제자의 싸우는 순서와 갈등의 양상마저 경우의 수가 정해진 조합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싸워줄 수도 있습니다. 스노크와 루크가 일기토를 벌일 수도 있고, 루크가 카일로한테 죽고 레이가 복수할 수도 있고, 카일로가 개심하여 라이트 사이드를 일깨울 수도 있죠. 근데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프리퀄의 반복입니다. 결국 과거의 이야기를 좀 더 화려한 때깔로 여자주인공이 반복하는 것일 뿐인데. 이건 죽은 신화를 오락화하는 것이고 팬픽으로 소비해버리는 것이지. 신화를 존중하고 탐구하는 게 아니거든요. 14. 깨어난 포스에서도 이런 시도를 하려 했다고 봅니다. 깨어난 포스의 소설판의 '저널 오브 휠'에서는 이런 구절을 제시하죠. "First comes the day Then comes the night. After the darkness Shines through the light. The difference, they say, Is only made right By the resolving of gray Through refined Jedi sight." "처음에 낮이 오고 다음에 밤이 온다 어둠 후에 빛은 비춘다. 섬세한 제다이의 시야에서 본 회색의 결의를 통해서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p.s 원래 탐라에 쓰려 했는데, 탐라 이용권이 다 되었네요. 그런데 다 쓰고보니 12시가 넘어서 에잉 ㅋㅋ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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