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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1/15 08:05:48수정됨 |
Name | 문학소녀 |
Subject | 자장가의 공포 |
저는 아이가 셋이 있어요. 왜 셋이나 있냐고 묻지는 마세요. 내가 젤 모르겠으니까.. 이 아이들 셋 모두 분유를 먹고 자랐거나 자라고 있는데 특히 위에 아이들 둘은 둘 다 생후 32개월까지 젖병으로 분유를 먹는 바람에 (보통 생후 12개월이 지나면 젖병과 분유를 뗍니다) 이 32개월 동안 제가 세척해야만 했던 젖병의 갯수는 하루평균 6개 * 한달 30일 * 32개월 * 2명 해서 총 11520개였어요. 실제로는 이 이상이겠지요. 후... 저는 제 몸에 사리가 있다고 믿어요. 아주 작은 한 톨일지라도 분명히 있어요. 요즘은 셋째가 내놓는 젖병을 씻으면서 이모 여기 사리 추가요를 외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적어도 두 톨은 있네요. 근데 이랬는데 알고보니 담석이고 막.. 요로결석이고 막.. 하지만 이 뻘글의 제목이 자장가의 공포잖아요? 젖병 세척의 공포가 아니고요? 씻어 말린 젖병의 횟수보다 더 무시무시한 기록을 자랑하는 것이 제가 지난 5, 6년 동안 불러제껴야만 했던 자장가의 횟수일 거에요. 첫째 둘째가 다행히 젖병은 뗐어도 아직 자장가는 못 뗐어요. 저도 젖병씻는 건 길어야 일이년 안에 끝나겠지만 자장가는 적어도 사오년은 더 불러줘야 해요. 그래서 자장가쪽이 좀 더 어려운 퀘스트에요.그런데 퀘스트 이 자체도 무섭지만 노래를 불러주다보면 노래 그 자체로 무서운 곡들이 종종 있어요. - 섬집아기 -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무 생각없이 불러주다가 너무 슬퍼서 자장가로 적합하지 않다고 처음으로 인지한 노래에요. 그런데 이 곡의 멜로디가 자장가로는 또 기가 막히거든요. 놓치지 않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까운 마음에 개사해서 부르기 시작했지요. "엄마가 섬그늘에 전복 따러가면" 이라고요. 하지만 이 노래는 2절이 남아있어요.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ㅠㅠ 저는 이 노래 2절을 한번도 끝까지 불러본 적이 없어요. 부르면 목이 메이고, 부르면 목이 메여가지고 ㅠㅠ 눈물 날라 그래서 참다보면 목에서 염소소리나고 콧물 들이킨다고 훌쩍거리면 그 소리 듣고 애는 각성하고 그래가지고 ㅠㅠ 미처 다 채우지도 못한 굴 바구니 이고 모랫길 달려오는 엄마 맘이 뭔지 알기 때문에 너무 아프고, 너무 아프니까 너무 슬퍼서 요즘엔 이 노래 안 불러요. 이렇게, 자장가로 많이 불러왔지만 짐짓 살펴보면 이런 식으로 무섭도록 슬픈 노래가 너무 많아요. - 엄마야 누나야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섬집아기 노래도 그렇고 이 노래도 그렇고 다들 아빠 어디갔냐 ㅠㅠ 왜 아빠는 모조리 부재중이냐 ㅠㅠ 이 노래를 시로 읽어도 참 슬퍼요.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너무 따사롭고 사근한 풍경이에요. 그런데 이 두 행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라는 반복되는 행 속에 갇히면서 지금의 비극을 드러내지요. 강변은 이미 모조리 파괴되어 있는거 아닐까요. 반짝이던 금모래는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을 것 같고 노래하던 갈잎은 짓밟혀 있을 것 같아요. 살래야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자꾸 자꾸 강조 해보는거에요. 할 수만 있다면 강변에 가 살자고. 금모래도 여전하고 갈잎도 여전한데 강변은 집값이 너무 비싸 못 사는 거면 그건 또 그거대로 비극이야 ㅠㅠ 그런데 이 시를 노래로 부르면 이상하게 더 슬퍼요. 작곡을 잘해도 너무 잘한 것 같지요. 그래서 더 이상 안 불러요. 실은 이것도 목이 메여가지고 못 부르는 노래 중 하나에요. - 오빠 생각 -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오빤 또 왜 안오냐 ㅠㅠ 징용 끌려갔냐 ㅠㅠ 순사한테 잡혀갔냐 ㅠㅠ 이 노래는 곳곳이 지뢰밭이에요. 일단 오빠가 말타고 서울 갈 때 어린 여동생에게 약속한 것이 비단 구두라는 것이 너무 슬퍼요. 뭐랄까.. 제일 필요없는 거잖아요. 먹을 것도 아니고 학용품도 아니고 하다 못해 원피스도 아니고. 꼭 발에 꿰는거여야 한다면 운동화도 있고 단화도 있는데. 구두 중에서도 비단으로 맨든 구두라니. 짐승같은 딸이 둘이나 있는 엄마 입장에서는 진짜 쓰잘데기 없는 사치품이에요. 근데 그런 것을, 그런 것이기에 구해다 주고 싶어하며 떠난 오빠의 그 마음과 지금의 행방이라니. 여동생의 독백도 너무 슬퍼요. 비단구두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기다리는 것이 비단구두이겠어요. 저 같이 배은망덕한 인간이면 진짜 비단구두만 기다릴 수도 있는데 노래 속에 여동생은 이 서글픔 기다림을 감춰보려는 거겠지요. 짐작되는 비극을 모른척 해보려는 거겠지요. 하지만 저는 1행과 2행이 제일 슬퍼요. 오빠가 떠날 때도 논에서는 뜸북새가 울었고 숲에서는 뻐꾹새가 울었던 거에요. 계절이 하나씩 다 지나가고 결국엔 해가 바뀌어 뜸북새는 다시 울고 뻐꾹새도 다시 우는데 오신다던 오빠는 오지 않는거에요. 그래서 당연하게도 저는 뜸북 뜸북까지만 불러도 이미 목에 콱 메여있는 상태기 때문에 이 노래 역시 완창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제가 예로 드는 노래들의 시대적 배경을 전혀 몰라요 사실. 그냥 막 넘겨짚고 혼자 소설쓰고 있는건데 왜 그러냐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아는 척 입 터는게 습관 되버려서 그래요. 이게 세살 때 든 버릇이거든요. 그래서 여든까지 이럴꺼니까 모른 척 해주세요. 근데 이렇게 입 털다 큰 코 한번 다치든 말든 여든까지 살기라도 했음 좋겠당. 별로 슬프진 않지만 노래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목이 메여서 못 부르는 노래도 있어요. - 외갓길 - 흰눈이 자욱하게 내리던 그 날 아버지와 뒷산길 외가가던 날 아름드리 나무 뒤에 뭐가 나올까 아버지 두 손을 꼭 잡았어요 아 이 노래는 노랫말도 노랫말이지만 곡이 정말 아름다운데 그 뭐시기냐 동영상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실은 제가 지독한 컴맹에 기계치에 현대문명과 거리가 먼 크로마뇽인이기 때문에 인터넷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 언니, 언니 핸드폰 이거 투지에요?" 그러길래 " 투지요? 싸울 때 필요한거요?" 그랬다가 인연 끊긴 게 생각나네요. 멜로디가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보시면 되겠.. 멜로디를 모른다 하여도 가사만으로도 끝내주지 않나요. 우리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고 있잖아요. 흰눈이 자욱하던 날,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 처가에 가는지, 화자는 왜 데리고 가는지, 큰길 놔두고 뒷산길로 급히 가는 일이 무엇인지,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지 등등 여백의 미가 이렇게 뿜뿜한데 또 이상하게 계절적인, 공간적인, 감정적인 심상은 막 벅차오르게 하는 아름다운 그 무언가가 있잖아요. 비극의 느낌은 전혀 없어요. 눈이 많이 내려 아내의 부탁을 받고 장모님댁 한번 들여다보러 간다던지, 엄마 보고 싶어하는 아내를 위해 장모님을 모시러 가는 길이라던지, 잠깐 엄마 보러 가있는 아내를 아이과 같이 데리러 간다던지 그런 일상의 느낌인데 그 일상이었던 하루를 수십년이 지나 그때의 외할머니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화자가 다시 아이의 마음이 되어 굽어보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그 일상의 하루는 이제 의미를 띈 소중하고 따뜻한 추억이 되었고 이는 노래를 부르는 우리에게 오롯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이 노래 역시 부르기만 하면 목이 메여 부르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김첨지같은 노래라는 거에요. 곡을 지어놨는데 왜 부르질 못하니.. 그런데 저는 동요만 자장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요랑 트로트랑 만화주제가까지 두루두루 다 불러제끼는데 이 모든 분야를 통틀어서 제일 놀란 노래가 한곡 있어요. - 바위섬 -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몰라.. 이게 뭐야.. 무서워.. 사람들 다 죽였어.. 싹 쓸려갔데.. 어릴 때 아무 생각없이 따라부를 때는 뭔가 아름다운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자장가로 불러주기엔 내용이 너무 무시무시한거에요. 아니 그런데도 이 노래는 왜 이렇게 많이 불리우고 있는거야 하고 검색해봤다가 알게 되었지요. 바위섬이 518 당시 광주를 상징한다는 것을요. 일체의 상식에서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이런 건 항상 나만 모르는 것 같네요. 어쨌든 이 노래 역시 이제 더 이상 못 부르는데, 첫째로는 5월 18일의 광주는 전혀 서정적이지 않은데 노래 속에서는 무섭도록 서정적이이기 때문에 그 간극이 너무 슬퍼서 못 부르고요. 두번째로는 애초에 우리가 노래할 일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못 부르고요. 두 가지 이유에서 못 부르고 있어요. 사실 제가 제일 애정하는 자장가는 따로 한 곡이 있는데 동요 '반달'을 제가 제 처지에 맡게 개사한 곡이에요. 원래 반달은 이렇지요 - 반달 -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지금부터는 예를 들게요. 실제 이름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영국 에딘버러 바버톤에 살고 있고 저희집 아이들 이름은 하나, 두이, 석삼이고 저의 시어머니는 김명숙이고 저의 친정엄마는 정옥경이라고 해봐요. 그리고 제가 작년 6월에 셋째 출산을 했는데 그때 시엄마와 친정엄마가 각각 2개월, 4개월씩 끌려와서 뺑이치다가 이제는 가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개사하는 거에요. - 반달 - 푸른 영국 에딘버러 바버톤에는 하나 두이 석삼 남매 살고 있어요 명숙이도 옥경이도 옆에 없지만 어떻게든 굴러간다 서쪽 나라로 제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서쪽 나라로" 에요.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이보다 더 희극적일 수 없고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수 없는, 우리 다섯 식구의 모습이 딱 들어맞게 표현된 거라서요. 개사 했을 때 기분이가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실은 제가 울면서 gg치는 바람에 며칠 후에 저의 친정 엄마가 다시 도와주러 오세요. 첨에 다시 좀 와달라고 카톡 보냈을 때 엄마가 분명이 읽었는데, 옆에 숫자 1은 사라졌는데, 만 하루동안 답이 없으셔서 엄마한테서도 인연 끊기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와주기로 하셨어요. 뻥카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요새 다시 창작의 고통에 휩싸여있어요. 셋째 행을 새롭게 개사해야 하는데 기똥찬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하루하루에요. 그런데 이거 음악 카테고리에 올리는 거 맞나요..?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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