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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1/18 20:41:38
Name   구밀복검
Subject   유럽 연합 수장 독일의 100년 전


100년 전 이맘 때는 독일 영화의 전성기였습니다. 일단 1차대전에서 발린 직후라서 사회 분위기는 음울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렇게 다들 비관주의에 편벽되다보니 외적으로 감흥을 확장하기보다는 내면적으로 골몰하게 되고, 이것이 영화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죠. 왜 연애에서 발리고 나면 영화나 게임으로 소일하고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비슷한 거죠.

이런 패배적인 풍조에 종래부터 왕성하게 유행하던 독일식 표현주의 회화의 영향이 가미되고, 이것이 영화로 드러나면서 고유한 형식을 띠게 됩니다. 묘사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고유한 특성을 전위적으로 강조하고, 명암의 대조가 극명하고, 그러면서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인상을 풍기고, 문자와 그림이 영화와 결합되면서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와 비슷하게 되고, 스튜디오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고 등등. 인생에 고난을 겪은 예술가들이 인생작들 뽑아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비슷한 거죠.

경제적 상황도 웃어주었는데, 이 당시 독일은 인플레이션이 워낙 극심했기 때문에 되려 제작비 후려치기가 가능했습니다. 수백 수천의 엑스트라들의 일당을 현물로 지급해가며(감자, 감자, 왕감자! 못 다 묵겠죠) 만든 저예산 영화를 갖다가 미국이나 프랑스와 남동유럽 등 외국으로 팔아먹으며 달러와 프랑과 루블을 벌어올 수 있었죠. 역시 아베노믹스가 짱이시다.

그래서 20년대 초 독일 영화는 일시적으로나마 트렌드 측면 뿐만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미국을 앞서게 됩니다. 1923년 할리웃이 막 만들어졌을 때 미국은 1년에 고작 100개 정도의 영화를 만들고 있었는데, 독일은 500개를 찍어내고 있었죠. 영화가 마르크화 만큼이나 흔했습니다. 영화가 발명된 이래 미국은 항상 영화 산업의 자민당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거의 유일하게 야당으로 내려간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지. 45회 중의원 총선일까요.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고, 독일의 인플레이션이 안정세로 접어들면서 2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다시금 미국이 영화계의 여당 자리를 찾죠. 게다가, 독일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해지면서 20년대 후반-30년대 초반에 걸쳐 유수의 영화 제작자들과 스태프들이 죄다 미국으로 넘어가버립니다. 민주당을 실각시킨 동일본 쓰나미 같은 나치의 범람..그리고 이 양반들은 할리웃에도 독일 특유의 정서와 형식을 활용하면서 범죄/스릴러와 공포 영화 등 장르물의 문법을 정립시키죠.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서 현대적으로 양식화 되는데,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이나 '블레이드 러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1848년 혁명의 미숙아들이 대서양을 넘어와서 밀워키와 오마하를 레벤스라움으로 만들었듯, 바이마르 공국의 사생아들이 '라 라 랜드'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산업 야당의 지위는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가게 되죠. 유럽 연합에선 프랑스가 독일 2중대지만 영화에선 독일이 프랑스 2중대 ㅋㅋ


1920년 작 '골렘'의 한 장면. 유태교 랍비가 요술을 통해서 유태인들에게 모세의 출애굽 서사를 말이 아닌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영화 안에 존재하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영화죠. 영화 제작자는 마술사가 되는 것이고요.


동 영화의 다른 장면. 이번엔 랍비가 자신이 빚은 진흙인형 '골렘'에 영혼을 불어넣고 있는 장면입니다. 신의 인간 창조를 패러디 한 거죠. 단 여기서 영혼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악마. 악마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가 그대로 글씨가 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프리츠 랑의 1922년 작 '마부제 박사'. 빌런에게 주인공이 카드 게임 도중 최면을 당하는 장면이죠. 대가리만 남는 게 꽤 섬뜩. 여기서도 문자라는 요소의 극적 활용이 두드러지죠. 영화에 글 좀 나오면 안 되냐!


무르나우가 할리우드로 이주한 이후 1927년에 만든 '선라이즈'. 카메라의 이동을 느끼면서 감독의 시선을 유추하면 한층 재미있습니다.


1958년에 나온 히치콕의 '현기증'. 주인공의 악몽을 표현한 씬인데, 그야말로 '표현주의적'이죠. 전대 독일 놈들을 보고 본받은 티가 물씬 납니다.


1979년 작 '에일리언'. 현대로 넘어오면 이런 식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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