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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2/26 20:43:44
Name   자일리톨
Subject   무한도전 <토토가3> 감상-흘러간 강물에 두 번 발 담그기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 -


이런 비유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강물의 흐름'과 가장 닮은 예술은 '음악'이다. 음악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이 청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음악이 시작되면 청자가 아무리 저항해도 음의 조합은 '음악'으로 인식된다.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도 음악이 들리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음악을 인식하게 된다. 반면 활자예술이나 시각예술의 경우 예술감상·체험에서 나의 의지는 필수적이다. 만화의 컷과 컷 사이의 간극을 없애는 것, 활자를 통한 인물 묘사를 이해하는 것은 예술 감상자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특히 활자는 음악과 비교했을때 직접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첫 비유를 반복하여 말하건대, 음악은 강물의 흐름과 가장 닮은 예술이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가 강물이라는 은유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음악은 시간과 직접적으로 결부된 예술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헤겔이 한 말, "음악은 시간의 형식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주체와 구분되는 객관성, 대상성Objektivtat을 못 가진다"는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음악은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문학작품처럼 멀찍이서 평가하고 감상할 수 있는)이 아니라, 나의 마음, 감정, 기억 등과 강하게 결합된 예술이라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말은 어느정도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음악 역시 분명히 객관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완고한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말은 적어도 특정 노래의 광적인 팬들에게 만큼은 유효한 진술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광적인 팬'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H.O.T의 팬들이다.
  
  
  

1) H.O.T 세대의 비극
  
H.O.T의 활동시기가 1996년에서 2001년이니, 넓게 잡아 팬층의 나이대는 1975~1986년생쯤까지 될것이다. 2018년 현재 H.O.T 팬덤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에서 40대 중반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만약 이들을 H.O.T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들과 전 세대를 구분짓는 분수령은 '87년 민주항쟁'과 '대중문화'의 등장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대중문화의 등장과 87년 민중항쟁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H.O.T세대는 민중항쟁 당시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등장은 분명 민중항쟁과 분리해서 생각될 수 없다. H.O.T이전에 인기가수가 없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대중문화 역시 존재했다. 왜 그때라고 없었겠는가. 하지만 정치 이념, 이데올로기, 경제 독트린과 무관한 시대에서 대중문화를 향유한 이들은 H.O.T세대가 처음이었다.
  
대한민국의 7~80년대는 알다시피 독재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였기에, 시민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민주화'였다(한국에 시민사회가 존재하긴 했었는가의 여부는 차치하자. 편의상 시민사회라 부르겠다). 그 시민사회를 이끌던 것이 문학계를 비롯한 지식인 사회였다. 판매부수를 떠나서 그 당시 문학인들에게 주어졌던 위상이란 현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시·소설을 쓰고 읽는다는 것이 곧 정치적 저항을 의미하던 시기,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현실참여'라는 명목으로 비판하고 욕하던 시기였다. 어느정도 정치적으로 각성한 시민사회의 목표가 '민주화'였다면, 그 외의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경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들 잘 알고 있을테니 별도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이 외에도 물론 '반공'과 같은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기가 7~80년대였다.
  
반면 87년이후 한국은 급격하게 변화한다. '절대악'으로 여겨지던 독재정권이 철폐되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경직되어있던 문화계도 자유로워지면서 다양한 문화들을 흡수하기 시작한다.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필두로 한국은 경제적, 정치적 자유로움을 마음껏 구가했다. 다소 거칠게 구분하자면, 90년대 이전이 '이념의 시대'였다면, 90년대 이후는 '탈이념의 시대'였다. 90년대 들어서서 정치적 투쟁, 현실참여적인 작품이 사라지고 내성적, 독백적, 포스트모던적 문학작품이 많아진 것은 이 같은 시대적 변화에서 기인한다.
  
바로 이 '탈이념의 시대'에 자신의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H.O.T세대다. 이들은 자신의 윗세대와 달리 이념적 강박과 경제적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즉 이들은 표면적으로만큼은 '자유로운 주체'로서 자라난 세대다. 그것은 윗세대와의 비교를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돈과 학력('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화시대에 돈과 결코 분리될 수 없었던), 반공, 민주화 등에 얽매인 꼰대 같은 윗세대를 보면서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H.O.T의 노래에서 유독 어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이 같은 시대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대부분의 노래에서 어른들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무능한 존재로 그려진다.
  
H.O.T세대의 비극은 여기서 탄생한다. '자유로운 주체'라는 것은 듣기에는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꽤나 끔찍한 단어다. 그것은 결국 신이 사라져버린 시대, 역사의 목적이 거세된 시대, 나의 존재이유를 알 수 없는 시대를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하면서 그토록 꼰대들을 욕하는 것은(이는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꼰대와의 비교를 통해 자기의 존재이유를 찾으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날카롭게 파악했듯이 인간이란 자유를 버리면서까지도 복종하려는 존재다. 또한 이문열이 <사람의 아들>에서 아하스페르츠의 입을 빌려 말하듯, 대부분의 인간들은 믿음을 통해 신앙을 증명하려기보다, 예수가 눈앞에서 보여주는 기적을 통해 신을 믿길 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이제 ‘자유로운 주체들’ 앞에 기적을 행하는 신이 나타난다. H.O.T라는 신이. H.O.T세대는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자유로운 주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제단 앞에 몸을 던진다. 물론 그들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질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자유로운 주체이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도 자신의 의지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H.O.T 포스터는 성화(聖畵)가 되며, 노래는 성가(聖歌), 콘서트장은 성전(聖殿), 그리고 팬덤은 성도(聖徒)가 된다.
  
이러한 신성화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데에는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대중문화가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한 몫 한다.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지적하듯,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작품이 무한정 복제되는 일이 일어나면 예술작품은 그 ‘아우라(aura)'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18세기의 영국인이 배를 타고, 도보와 마차를 이용해 국경을 지나 겨우겨우 바티칸 시국에 도착해 베드로 대성당을 봤을 때와, 21세기의 영국인이 유튜브와 구글에서 실컷 베드로 대성당의 정보를 입수한 뒤 비행기타고 두 시간만에베드로 대성당에 가보았을 때, 두 영국인이 받는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행 앞에서 날밤새며 콘서트 티켓을 끊고, 지리도 잘 모르는 서울까지 가서 콘서트장를 보는 H.O.T 팬들과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자기가 보고싶은 아이돌을 보는 오늘날의 팬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H.O.T의 팬들에게는 아직 ’아우라‘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2) 대중음악의 비극
  
신 속에서 존재이유를 찾은 성도들은 그 누구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쁨을 만끽한다. 자신 외의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하나의 목소리로 찬양하며 신의 은총을 느끼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노래란 시간적 형식의 예술, 나와 분리될 수 없는 예술이다. H.O.T의 은총은 결코 휘발되는 일 없이 카세트 테잎의 재생과 팬덤의 떼창, 개인의 허밍 속에서 내 앞에 현전한다. 그리고 광신도의 삶이 그렇듯, 그들의 삶도 H.O.T를 중심으로 재조직화 된다. 다시 말해 공부를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 살아가는 것 자체가 ‘H.O.T를 위해서’가 되는 것이다.
  
당시 아이돌 팬덤에서 군대식 문화가 퍼져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수많은 구호들과 절도있는 응원요령, 타 팬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요구되는 우렁찬 목소리, 그리고 깔맞춤 복장까지. H.O.T 팬덤이 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재미있는 건 이처럼 힘든 과정을 그들은 매우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인데, 이는 스스로가 노예화되는 것을 방관하는데서 느껴지는 마조히즘적 쾌락을 향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신도’라는 것 자체가 노예에 다름 아니다.
  
한편 이러한 노예화가 거대한 집단의 형태, 즉 ‘대중문화’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들이 단순한 노예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구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앨범이 100만장 넘게 팔리는 것은 쉽지 않은데, H.O.T의 앨범은 나오는 족족 그 정도로 판매되었다. 또한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H.O.T 팬덤의 일화들(지하철 연장, TV보도, 조퇴 금지 등등)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은 노예였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시장을 뒤흔들 힘을 가진 노예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주체적인 힘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주체화된 노예’ 혹은 ‘노예화된 주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대중문화의 팬덤이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주체-노예’라는 양면적 성격은 <토토가>가 성공할 수 있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중문화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대중문화는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본가의 목표는 첫째도 돈이요, 둘째도 돈이다. 따라서 상품은 수익을 더 이상 창출할 수 없을 때 폐기되고 새로운 상품으로 교체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이돌과 그들의 노래들이란 처음부터 수명이 뚜렷한 상품이다. 처음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에 <토토가> 관련 기사 앞에 자주 붙는 수식어인 ‘부활revive’이란 단어를 이해할 열쇠가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부활하지 않는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역시 부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세르반테스의 소설들은 당대에는 심심풀이용으로 많이 읽혔으나, 문학이 근대에 고급예술로 규정되고 나서는 과거의 문학작품들은 죽음 혹은 부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고급예술은 자본가의 탐욕과 상관없이 향유층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에, '부활re-vive'이라는 단어에서 ‘다시re’라는 접두사가 말해주듯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탄생한 뒤에 무조건 한 번은 죽어야한다.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데 ‘다시 탄생revive'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H.O.T의 죽음은 그 시기를 정확히 짐작하지 못했을 뿐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죽음은 모든 아이돌에게 필연적이다. 물론 신화 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 같은 예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얼마 안 있어 죽음을 맞이한다(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는 1세대 아이돌의 이름이 ‘신화’라는 것은 꽤나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현대의 신화라...흠). H.O.T라는 신 역시 결국 2001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라는 형식이 음악을 가능하게 했다면, 동시에 시간은 대중문화의 죽음도 가능하게 했다. 신도들은 마음 속에서 음악을 통해 신의 은총을 재생시키고 있는데, 눈앞에서 신이 죽어버린 것이다. 시간은 아이돌의 음악을 언제든지 재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모든 아이돌을 반드시 죽여버린다. 시간은 재생이면서 동시에 죽음이다. 여기에 대중음악의 비극이 있다.
  
H.O.T는 죽어가며 언젠가 자신은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유언을 남긴다. 마치 예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H.O.T는 신이 아니라 예수였다. PPAP. 신의 몸과 인간의 몸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자, 그리고 그 인간의 몸 때문에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자.
  
  
  
3) ‘다시re’ H.O.T 세대의 비극
  
자신들을 지탱해주던 기반을 잃게 된 신도들은 방황하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새로운 ‘신=아이돌’을 찾아간 이들도 있을테고, 또 다른 이들은 아예 다른데서 자신의 기반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찾든, 찾았든 상관없이 그들은 강제적으로 한 지점에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돈이 그것이다. H.O.T 세대에게 자본주의는 두 번 찾아온다. 첫 번째에는 대중문화라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두 번째에는 경제적 압박이라는 악마의 얼굴을 하고.
  
현재의 H.O.T 세대에게는 특유의 정조, 분위기가 깃들어 있다. 유교 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압박 등등에 사로잡힌 꼰대들과는 달리 자신은 자유롭다는 자부심. 그리고 그 자부심 속에서 최초의 대중문화를 향유했으며 자신들이 그 주체로서 활동했던 기억. 하지만 그것이 결국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경제적 압박과 결혼·육아. 이들은 아마도 자신의 젊은 시절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H.O.T 세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그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인생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들은 적당히 돈벌고, 적당히 결혼해서, 적당히 애들을 양육하면서 살 것이다. 특별한 일이라곤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것이다. 어릴 적 믿었던 ‘자유로운 주체’라는 환상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들은 돈의 노예이고, 여전히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의 노예이다. 자기들이 그토록 비웃었던 꼰대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H.O.T 세대는 자신들의 신을 따라 똑같이 죽어버린 것이다. 이때 이들이 죽어가며 기억해내는 것은 예수의 유언과 그들이 반복해서 듣던 음악이다.



  
① H.O.T의 유언
어릴적 믿었던 ‘자유로운 주체’라는 약속이 전부 거짓으로 드러난 이상, 그들이 주체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주체-노예’의 길이다. 수동적 노예가 아닌 자발적 노예, 즉 주체적 노예가 되는 것만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여기서 H.O.T와 H.O.T 팬덤의 관계의 실체가 드러난다. H.O.T가 예수, 즉 신이자 인간인 존재(‘신-인간’)라면, 팬덤은 주체이자 노예인 자(‘주체-노예’)이다. 팬덤은 H.O.T가 지닌 ‘신-인간’이라는 속성에서 ‘인간’을 기꺼이 떠맡음으로서, 즉 기꺼이 ‘인간=노예’가 됨으로서 H.O.T에게 ‘신=주체’의 자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역설적으로 팬덤의 ‘주체’로서의 능력을 활용해서이다. 이 부활은 H.O.T의 자체적인 힘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팬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힘을 통해서 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덤이 H.O.T의 노예가 아니라, H.O.T가 팬덤의 ‘노예’, 자본에 종속된 존재인 것이다. (H.O.T 팬덤 사이에서 문희준이 비판받는 이유를 떠올려보자. 그토록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재결합을 거부하던 문희준이 갑자기 재결합을 승인한 것은 왜일까?대부분의 팬들은 돈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따라서 H.O.T의 ‘부활’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H.O.T는 완전무결한 신도 아니며, 반쪽짜리 신인 예수도 아니고, 그저 자신과 같은 ‘주체-노예’라는 사실, 노예가 있을때만 주체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일 뿐이다. 가짜 신은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인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H.O.T 팬덤은 여전히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의 신인 H.O.T를 죽이고, 또한 자신들의 삶마저 끝장내버렸던 것은 다름 아닌 그 ‘자본주의’였음을. 또한 H.O.T를 되살리기 사용하는 자신들의 힘이 H.O.T를 예전에 죽여버렸던 것과 똑같은 ‘자본주의’임을(이렇게 쓰고 나니 에반게리온의 롱기누스의 창이 떠오른다).
  
  

② H.O.T의 음악
물론 자본주의의 힘만으로 죽은 자를 소생시킬 수는 없다. H.O.T의 부활이 가능한 것은, “① H.O.T의 유언”에서 말한 것처럼 H.O.T가 애초부터 자본주의의 논리로 돌아가는 대중문화의 산물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음악을 통해 매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영화나, 같은 대중문화인 드라마가 부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헤겔이 지적한 “음악은 주체와 분리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당성을 얻는다. H.O.T 부활의 원동력은 H.O.T의 은총을 무한히 재생(글의 처음에서 언급했다시피 그건 청자의 의지로 막을 수 없다. 음악의 진행은 강제적이다)시킬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또한 음악은 H.O.T의 추억 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도 함께 부활시킨다. 사회에 진출하기 전인 학창시절까지만 해도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주체’라는 약속이 아직까지 유효했었다. 나는 위에서 H.O.T 팬덤의 삶은 H.O.T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이 재조직화 되어있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자면 학창시절 그들의 삶 곳곳에는 H.O.T가 깃들어 있고, 그것은 노래를 통해 재생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마들렌 과자의 냄새를 맡고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것처럼, H.O.T의 노래만 들어도 학창 시절이 아주 또렷하게 재생되는 것이다. 물론 이건 H.O.T 팬덤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돌 팬덤에게 해당될 것이다. 따라서 3~40대의 H.O.T 팬덤이 재생시키는 것은 H.O.T의 추억뿐만이 아니라 ‘자유로운 주체’라는 환상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 그 자체이다. 그들은 H.O.T를 부활시키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획득하게 되는 지위인 ‘노예화된 주체’를 통해, 배반당한 어릴적 자신의 약속을 달성한다. 거짓 주체, ‘노예화된 주체’이긴 하나 어쨌든 주체는 주체인 것이다.
  
생각해 볼 점이 하나있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돌 팬덤도 나중에 나이가 들어 <토토가>처럼 자신의 아이돌들을 부활시킬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혹시 부활시키더라도 “와 내가 어릴적 좋아하던 아이돌이네!” 정도지, <토토가> 세대처럼 강렬한 향수에 휩싸이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위에서 말했다시피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와 함께 H.O.T 팬덤의 상당수가 경험한 강렬한 카니발적 체험(콘서트장에서 수만명의 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콘서트의 경험이 과거의 콘서트에서 느끼는 경험과 같을리가 없다. 또한 이들은 H.O.T 세대와 달리 이미 상당한 패배의식에 빠져있다는 사실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운 주체’ 같은 환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9급공무원이 꿈인 아이들에게 ‘주체’ 같은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들에게 학창시절이란 그저 공무원이 되기 위한 '스텝투' 같은 것일 뿐이다.
  
  
  

4. 결론
<토토가> 현상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려는 의지, 거짓이었던 것을 거짓으로 되살리려 하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진 것을 시간의 예술(음악)을 통해 부활시키기.
  
물론 나도 <토토가>를 보면서 울었다. 난 H.O.T 세대는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그저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를 보면 나오는 눈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한때 자신들의 우상을 다시 만난 기쁨에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가족 앨범 속 자신의 어릴적 모습을 보면서 흘리는 눈물인지이다. 물론 위에서 실컷 떠들어댄 것처럼 그들의 눈물에는 필경 두 감정이 분리불가능하게 엉켜있으리라.
  
위에서 난 H.O.T와 그 팬덤을 보고 ‘죽었다’고 표현했다. 이 말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니들 인생 끝났으니 평생 절망하면서 살라는 것이 아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기계 혹은 동물처럼 변하고서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 고민 속에서 우리 주위에 ‘가짜 주체’와 그 ‘가짜 주체’가 되라고 유혹하는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고민 속에서 인간은 ‘가짜 주체’가 아닌 ‘진정한 주체’가 될 가능성이 생겨난다.


p.s. 요즘 아이돌 팬덤은 오히려 갑질 비스무리하게 행동하곤 한다. "저 아이돌은 내가 키운 것이다"라고. 이 역시도 팬덤이 지닌 '주체-노예'의 양면적 성격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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