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3/06 00:27:36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셰이프 오브 워터와 짧은 생각들(스포일러)
아카데미 수상기념으로 밤에 재관람을 했어요.
한 번 보고나면 빠르게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생각이 휘발되는 편인데 요즘 많이 게을러서 글을 남기지 못하네요.
그런데 또 두 번 본 영화들은 글을 꼭 남기게 되요. 글을 남길만한 좋은 홍차넷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ㅋㅋㅋㅋ




1. 스트릭랜드
영화는 명백하게 약자들의 연대와 가부장적 남성사이의 대립을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화장실에서 그 야만적 성미를 자랑하는 장면에서 명확해졌던 이 대립은, 이 가부장의 폭력성을 쉽게 부각시킬 수 있는 장소인 가족을 비출 때는 부각되지 않았죠. 처음 볼 때는 그 공간에서 스트릭랜드가 대화보다는 침묵과 고요함을 원한다는 부분만 보았는데, 다시보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그 모습이 스트릭랜드가 가지고 있는 전통성을 더 부각시키는 부분에서도 의미가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또 스트릭랜드는 재미있게도 대적자이면서 주제를 매개하는데, 카딜러로 부터 캐딜락이란 미래를 산 그는 흡족해하고 젊은 이들과 도로를 내달리면서 앞을 향해가죠. 그 체험은 단순히 유희로 끝날 것이 아니라, 괴물을 희생시킨 뒤 그가 경험할 밝은 미래의 체험판이겠죠.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미래를 체험시켜줬던 캐딜락은 찌그러지고, 그의 앞날도 불투명해지죠. 영화속 대적자는 단순히 대적해야할 전통성의 집합이 아니라, 대적자 또한 미래를 향해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닌가 싶었어요.

2. 외톨이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약자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소통이었는데.. 그 소통의 이면을 지배하는 '외톨이'라는 정서가 다시 관람하면서 눈에 들어왔어요. 저마자 다른 방식으로 단절된 일라이자, 데릴라, 자일스, 호프스테더가 괴물을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외톨이이기 때문이에요. 장애를 가져서 외톨이가 되었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에 놓여있고, 사회로 부터 이해받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조국과 적국의 경계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진실을 터놓을 수 없는 그들에게는 서로만이 유일한 이해자이고 이 연대는 대단한 일들을 해내죠.

그리고 이 연대는 누구라도 이들이 외톨이라는 성질을 읽어버리려는 순간 무너지고요. 할아버지가 농아를 포기하고 자기와 닮은 존재에게 나아가려 할 때 농아와 할아버지의 연대는 무너지죠. 그리고 그가 거부당하면서 외톨이성을 회복하는 순간 농아와의 연대와 인간성을 회복하고요. 스파이가 조국의 명령을 배신하고 진정으로 외톨이이고자 할 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 외톨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는 죽음으로 응징당하죠. 그런 의미에서 가정에서 외톨이었던 흑인 청소부가 스트릭랜드한테 겁박당할 때, 그의 남편이 용기있게 나서지 않은 것은 '게으른 가부장성'에 대한 조소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데릴라의 가정에서 가진 외톨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일이기도 했을 거에요. 만약 그 순간 남편이 스트릭랜드에 대항했다면 그녀는 관계를 회복했을 것이지만 러시아 스파이마냥 죽음으로 응징당했을 수도, 혹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닌 입장에서 농아를 배신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에 이르렀어요. 결국 인간성의 진정한 면은 가정,국가와 같은 사회에 소속됨으로서가 아닌 외로운 개인으로서 얻어서 외로운 개인으로서 소통하며 나눌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3. 스트릭랜드의 최후
스트릭랜드에게 괴물이란 자신을 미래를 위해 희생시켜야만 하는 존재죠. 스트릭랜드의 신체 일부인 손가락은 괴물에 의해 절단되었지만 부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요. 위기에 몰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그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썩어 문드러진 그의 손가락을 찌그러진 캐딜락에서 부여잡으면서 버티면서요. 그리고 자기 미래였던 캐딜락이 아닌 남의 차를 탄 최후의 추격에서 그가 좋아하던 사탕의 정체가 밝혀지는 데, 결국 그는 화려하고 복잡한 미래에 적응 할 수 없는 전통적 존재임을 드러내고, 그 고백을 통해 영화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해요. 그리고 부여잡던 손가락도 이 추격의 과정에서 뜯어내죠. 순수한 존재로 탈피한 그는 괴물에 맞서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지만 결국 연대한 이들에게 패배해 죽었죠.

결국 고루한 가부장적 폭력성을 가진 자에게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래는 주어지지 않고, 연대하면서 인간성을 회복한 이들에게 패배해야한다는 주제를 명확화하기 위해 그는 그런 삶을 살아야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동정하게 되더라고요.  

4. 일라이자의 독백, 영화라는 공간..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드는데 두 번째 감상에서 스트릭랜드에 너무 집중해보다보니 오히려 첫 감상에서 일라이자에 대한 생각이 휘발되어 버렸어요.
그들이 고전을 재현하는 부분이나 영화를 통해 매개되는 부분이 가져다준 감정들도 스트릭랜드가 다 먹어버린 느낌. 그만큼 그가 강력한 대적자이고 고유한 이야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변명해봅니다 ㅋㅋㅋ


원래 탐라에 올리려고 했는데
막상 복사 붙여넣기 해보니까 1800자는 탐라에 올리기 좀 그런거 같아서..
지난번에도 긴 글은 티타임에 올려주면 좋겠다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도 있고해서 티타임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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