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3/18 16:18:19
Name   quip
Subject   고도비만 자의식과잉맨을 위한 다이어트 팁
태어나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해 어느 정도 성공했고, 비결을 묻는 친구에게 다이어트 팁 몇 개를 전수했는데 친구는 3주만에 5킬로를 뺐고, 지금까지의 어떤 다이어트보다 성공적이었으며 스트레스도 적고 이후로도 유지 가능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제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다이어트 코치'라는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기분입니다.

육체와 정신과 생활은 모두 다르기에,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팁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유유상종, 저나 제 친구나 고도비만에서 시작했고, 자의식이 철철 넘치며, 삶이나 세상에 딱히 불만도 희망도 가지지 않는 30대 남성이라는 정도의 공통점이 있고, 이 팁은 그런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즉, 이 다이어트는 bmi 30 이상의 고도비만자 중에, 자의식이 흘러넘치는 사람들을 위한 다이어트라는 걸 먼저 밝힙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소위 표준체중에서 소위 미용체중으로의 다이어트를 시도하시는 분들에겐 전혀 도움 안 될 겁니다. 외려 제가 그분들께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이 방식은 자기혐오와 자기만족, 자기기만과 자기타협을 조작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합니다. 자기혐오나 자만에 한번 빠지면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않거나/혹은 지나치게 익숙하거나, 여타 다른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경우라면 살을 더 찌우면서 정신건강도 말아먹는 훌륭한 일석이조의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넘치는 자의식/자기애와 어느 정도의 정서적 자기통제가 가능한 경우에만 한정적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1. 자기객관화와 자기타자화

먼저, 며칠간 평소처럼 먹으면서 '모든' 칼로리의 일기를 씁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양배추의 칼로리도 쓰세요. 너무 당연하지만 설탕범벅 소스를 추가한 샐러드는 소스의 칼로리+샐러드의 칼로리로 기입해야 합니다. 물론 칼로리가 만악의 근원인 건 아니지만, 칼로리만큼 편하게 측정 가능한 체중 조정 변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식품과학자나 프로 다이어터 할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일단 쉽게 칼로리로 갑시다. 이 편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더 지속가능합니다. 구식 방법이지만, 제 방식은 '이거 저거는 먹지 말고 주로 뭘 먹어라'같은 현대적 조언을 거르고 칼로리만 보고 갑니다. 자의식 과잉맨에게 '뭘 먹고 뭘 먹지 마라'는 진짜 짜증나는 명령이거든요. 차라리 칼로리를 제한하고 그 안에서 뭘 골라 먹을지를 고르는 게 편합니다.

식사표를 찬찬히 보면 몇 가지 살 찌는 패턴이 보일 겁니다. 뭐. 밥을 엄청 먹는다거나. 안주를 만 칼로리씩 먹는다거나. 과자를 입에 달고 있다거나. 주식이 치킨과 피자라거나. 등등. 등등. 패턴이 하나는 아닐 겁니다. 살찌는 패턴 '하나'로 고도비만에 이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쭉 보고, 포기할 것들과 포기하지 않을 것을 고릅니다.

여기서 어떤 패턴을 버릴지에 대한 핵심적인 판단 기준은 '총 칼로리를 최대한 줄이기'와 '내가 실제로 불필요하다고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자기설득이 가능해야지, 어거지로 그냥 '이건 단순하게 나쁜 습관/너무 고칼로리니까 이걸 포기하자'라는 식으로 마음먹으면 장담컨데 3일 후에 그 패턴대로 다시 먹게 됩니다. 천천히 스스로와 대화하고 타협하세요. 나는 하나의 내가 아닙니다. 다이어트를 원하는 나와 먹기를 원하는 나는 하나가 아니기에, 먹기를 원하는 나를 자기타자화하 하고 대화와 타협을 시도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심야 야식'과 '식사중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대신 기분 나쁠 때 하는 폭식과 술안주 섭취는 그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경우에는 '음주 후 집에 와서 밥이나 라면, 튀김 따위를 주워먹는 습관'을 버리고 대신 평소의 식생활이나 술안주는 거의 손 안 대는 선에서 조금만 줄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먹고 거의 바로 잘 거고, 정말 짧은 시간의 만족감밖에 주지 못하는데, 건강과 체중관리에는 별로 안 좋으니, 버리는 게 낫다고 여러 차원에서 자기 설득이 가능합니다. 핵심은 '이 패턴이 살 찌니까 버려'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문제와 이러저러한 문제와 이러저러한 문제와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버려. 버리자고. 대신 저 패턴은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안 버릴 꺼니까. '가 되어야 자기설득이 된다는 겁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기에, 당연히 술 먹고 집에 와서 밥 먹던 사람이 밥 끊기는 힘듭니다. 이 때 이걸 생각합니다. '야, 내가 어차피 술 먹으면서 많이 먹었고 다음 술자리에서도 많이 먹을 거고 내일 낮에도 일하려면 머리 돌려야 해서 밥 먹어야 되는데, 이거까지 먹는 건 좀 아니잖아. 그치?' 결의로 살 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살 안 쪘습니다. 필요한 것은 하나의 내가 가지는 결의의 투쟁이 아닌, 둘의 나 사이의 대화와 타협입니다. 일단은 버린 패턴에 대해 적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세요.

2. 자기혐오와 자기만족

아주 중요한 문제는, 실제로 자기를 혐오하거나 실제로 자만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일종의 단기적/기술적 차원의 자기최면을 거는 겁니다. 세상은 비만자를 혐오하고 저는 그 혐오가 정말 나쁜 종류의 미개한 혐오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혐오를 아주 가끔씩 떠올리며 본인에게만 한정적으로 적용하는 건 '개인적인 차원에서 기술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결코 건강한 방법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사용되는 자기혐오는 다이어트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능적 자기계발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로부터 '아 씨 내가 왜?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이어갈 수 있는 경우에, 한정적으로 사용하십시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에서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로 계속 마음이 끌리면 이 방법은 절대로 안 됩니다. 자의식과 자기애가 필요 이상으로 강해야 합니다.

글의 앞에서 거론했듯, 이런 문구들에 실제로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하는 경우라면,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지금 나도 나대로 괜찮은 걸 다 조까. 그래도 이번엔 살 좀 빼봐야지' 정도의 편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나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해만 될 겁니다.

내가 되고 싶은 나, 에 대해 떠올리는 것도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셀카를 마구 찍거나 옷을 마구 사는 건 도움이 됩니다.

3. 식이와 타협과 유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3일 연속 회식이라거나 하는 일을 맞딱드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결코 여기서 자괴감을 갖지 말고, 천천히 대화와 타협을 시도합시다. 한두 번 망쳤다고 해서 그대로 망치거나 민중가요에나 나올 법한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수준의 결의를 가지면 그대로 끝장입니다. 하루하루, 한끼한끼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어떤 '기간'의 차원에서 봅시다. 이를테면 3일 연속 회식이 있었다면, '이번 주는 망했으니까 남은 3일동안 굶는다/이래 된거 남은 3일도 걍 먹자'라는 마음가짐은 살을 찌우게 될 뿐입니다. '이번 주에 회식때문에 좀 많이 먹었으니, 앞으로 이주일 정도는 조금 더 타이트하게 가자. 이 참에 패턴 하나를 또 빼볼까? 생각해보니 평소 식사량도 좀 과한 감이 있었는데. 밥 양을 조금만 줄이자.'라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인 선에서, 살을 찌우려는 나와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합니다. 결의돌파 절대 노노.

그리고 어떤 패턴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면(살찌는 습관 하나를 없던 습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그때부터 그건 원래부터 없는 걸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안주 많이 먹었으니/평소 식사량을 줄이겠다'이건 좋지만, '평소 식사량 줄이는 거에 익숙해졌으니까/안주 더 먹어야지' 이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 또 열심히 자기설득을 해야 합니다. 안 먹는 습관을 들인 건 안 먹은 걸로 끝이지, 거기에 미련 가지고 보상심리 가져가면 안 됩니다. 다시 약간의 자기최면이 필요합니다.

4. 구체적 식이

는 뭐 lchf를 하건 소식을 하건 뭐 뭘 해도 상관 없을 겁니다. 다만, 지방을 줄이건 탄수를 줄이건 총 칼로리를 줄이건 식이에 어떤 방식으로 손대는 순간부터 적어도 두 달은 분노조절장애와 아침 멍해짐에 시달리게 됩니다.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하지 마십시오. 다이어트와 살인 전과를 교환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집니다.

아침 멍해짐은 운동과 카페인으로 극복하세요. 완전히 극복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극복되고 곧 적응됩니다.



9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605 일상/생각쉬는날이 두려운 이유. 2 염깨비 18/05/30 4315 9
7597 스포츠신에 가장 가까웠던 복서 12 Danial Plainview 18/05/28 7091 9
7564 음악당신은 천사와 홍차를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14 바나나코우 18/05/22 4254 9
7511 일상/생각식성이 잘 맞는 사람 13 한라봉초콜릿 18/05/12 4486 9
8112 일상/생각여름의 에테르 5 2 futile devices 18/08/25 4403 9
7427 사회픽션은 사회를 어떻게 이끄는가 (2) 8 Danial Plainview 18/04/22 5272 9
7411 기타잠이 안오세요? 4 핑크볼 18/04/19 3563 9
7403 일상/생각(사진혐주의) 운동 두달 차 기록. 38 그럼에도불구하고 18/04/18 6360 9
8479 IT/컴퓨터인터넷 뱅킹,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안전할까? 28 T.Robin 18/11/07 4645 9
7322 일상/생각가방을 찾아서 : 공교로운 일은 겹쳐서 일어난다. 10 化神 18/04/03 4302 9
8079 도서/문학책 읽기의 속성 3 化神 18/08/19 4487 9
7251 의료/건강고도비만 자의식과잉맨을 위한 다이어트 팁 8 quip 18/03/18 6068 9
7123 의료/건강백신과 antibody dependent enhancement 1 moneyghost 18/02/16 6373 9
8890 게임kt는 게임을 이기기 위한 계획이 없다.(이미지 설명 첨부) 13 kaestro 19/02/20 3619 9
7003 스포츠미식축구 입문 :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처럼 생각하기 (스압, 용량 많음) -3 2 Danial Plainview 18/01/26 4887 9
8097 기타서울대 이준구 교수, 국민연금 논란에 대해 일갈 14 아카펄라 18/08/22 6089 9
6931 도서/문학늦깍이 문학중년 14 알료사 18/01/11 5769 9
6926 과학/기술거리함수 이야기 (1) 14 유리소년 18/01/10 16890 9
6888 영화1987, 그렇게 현실은 역사가 된다. (스포) 4 은우 18/01/03 3579 9
6827 오프모임29일 오프(서울) - 장소는 종각 '종로족빨'입니다. 100 호라타래 17/12/25 7065 9
6786 일상/생각카페에서 파는 700원짜리 바나나. 19 felis-catus 17/12/19 5491 9
6701 기타누가 날 가짜 여성으로 규정하는가 20 二ッキョウ니쿄 17/12/03 7293 9
6671 여행로포텐 여행기 上 19 나단 17/11/29 5042 9
6650 기타예송논쟁 대충 알아보기 (다시쓰기) 9 피아니시모 17/11/25 4169 9
6644 일상/생각아이 유치원 소식지에 보낸 글 5 CONTAXS2 17/11/24 3688 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