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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7/11 13:05:08 |
Name | Under Pressure |
Subject | [사이클] 브레이크어웨이(BA), 선수들의 로망 |
브레이크어웨이(Breakaway)는 말 그대로 펠로톤에서 똑 떨어져 나와서 먼저 달리고 있는 선수들 집단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처음 경기 시작하자마자 BA를 시도하는 선수들이 풀가스로 미친듯이 달려 나가면서 발생하며, 이들은 레이스의 대부분을 BA로 달리게 됩니다. BA로 나선다는 것은 참으로 로망 넘치는 행동입니다. 남들은 150~60명 되는 펠로톤 피나 빨고 보급도 편하게 받아가면서 달리는데, 팀에서 홀로 나와서 수적 열세를 딛고 길게는 200km 넘는 거리를 홀로 달리는 독고다이들입니다. 어떨 때는 80~90km 남겨놓고 펠로톤과 6분 이상 시간 차이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페이스대로면 독주 우승도 가능해 보이죠. 안타깝지만 이들은 95% 이상의 확률로 펠로톤에 흡수됩니다... 돌려 말하면 BA로 나가서 우승할 수 있는 확률은 5%도 안 되는 셈입니다. 물론 경기 후반부에 독주 전문가가 계산된 어택으로 치고나가는 것은 확률이 높긴 한데, 여기에서는 초반에 치고나가는 케이스로 논의를 국한하도록 하겠습니다. BA가 이토록 확률이 낮은 이유는, 펠로톤이 훨씬 빠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BA로 나간다는 말은 선후가 잘못된 말입니다. BA로 나가도록 펠로톤이 '허용'하는 거죠. 한 마디로 BA로 나가고 못 나가고부터 펠로톤 마음대로라는 것입니다. 펠로톤은 BA로 나가는 선수가 누구인지, 언제 나가는지를 보고 잡을지 놔 줄지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프로 컨티넨탈 팀 선수들이나 그리 강하지 않은 팀의 6번~7번 선수가 경기 초반 나가는 것은 내버려 두는 거죠. 반면 강력한 선수가 어택을 치면 진짜 즉시 누군가가 같이 튀어나와서 붙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허를 찌르는 어택도 있어서 펠로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날아가 버리는 케이스도 있죠. 주로 클래식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펠로톤은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레이스를 컨트롤하면 대략적으로 '코스의 어느 지점에서 BA를 잡아낸다'까지도 정할 수 있습니다-_-;;; 보통 10~15km지점에서 잡아내 버리고 늦어도 5km 전에는 잡아냅니다. 이거보다 늦으면 BA가 성공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고, 너무 일찍 잡아버리면 독주 전문가의 2차, 3차 어택을 허용할 수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BA의 화력이 후달린다던가, 경기 후반부가 업힐 피니시라(GC들 배틀 장소라) 50~60km에서 잡아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펠로톤은 누가 재어택을 나갈지 모르는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피니시지점까지 레이스를 벌이게 됩니다. 이렇게 확률이 낮음에도 BA는 매 경기 형성됩니다. 정말 빠지지 않고 누군가는 경기 시작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치고 나갑니다. 그러면 왜 BA로 선수들이 나갈까요? 1. 대부분의 평범한 선수들은 그냥 피니시까지 펠로톤으로 뭉쳐서 달리면 스테이지를 우승할 수 있는 확률이 없습니다. 평지 피니시면 스프린터들이 먹을 것이고, 업힐 피니시면 클라이머나 GC라이더가 먹겠죠. 하지만 만약에 본인이 BA로 나간다면 극히 낮은 확률이나마 스테이지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사실 BA도 팀에서 아무나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에 코스를 보고 그나마 코스와 특성이 적합하고 실력이 어느정도 있는, 가망이 있어보이는 선수들이 노려보는 거죠. 도그나 카우나 나갔다간 자기 힘만 빼버리고 팀의 전력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이 BA분야에서 한때 장인... 정도 취급을 받았던 옌스 복트(위 사진의 선수)라는 선수의 말을 빌리면, "내가 BA로 어택을 나서도 승리할 확률은 잘 쳐줘야 10%도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어택을 나서지 않는다면 승리할 확률은 0%이다. 그렇다면 0%보다 10%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라는 말이 BA를 나서는 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사실 이런 선수들은 흔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올라운더인데 정상급 선수에 비해 능력치가 2% 모자란 선수들이 이런 케이스인데, 이 정도 선수만 해도 훌륭한 도움 선수입니다... 실제로 복트는 도움 선수로서는 모범적인 선수였죠. 2. BA는 광고판의 역할을 합니다. 의외로 간과되는 분야인데, 모든 스포츠는 '스폰서' 없이 절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국은 대기업이나 지자체의 포켓 구단이 99%라 체감이 잘 안 되고 저도 마찬가지인데, 자전거는 특히나 겉으로 보이는 대회 규모에 비해 선수단이 참으로 영세합니다. 이유는 정말 간단한데, 입장료를 전혀 받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전적으로 스폰서에 의존하고, 스폰서들은 제품 홍보효과에 의존하는 거죠. BA로 나간 선수들은 경기 내내 중계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 명이더라도 오토바이에 탄 카메라맨이 정성껏 한명 한명 단독샷을잡아주고, 친절하게 선수 옷에 적혀있는 회사명이나 자전거 로고 등을 하나하나 잡아주죠. 이는 리더 저지를 입은 팀도 해당합니다. 펠로톤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카메라가 선두 팀을 잡아주게 됩니다. 안전 문제로 인해 카메라는 펠로톤 최전방과 최후미만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최후미로 나가는 선수도 있을 정도죠-_-;; 주로 선수들이 유럽 출신이고 투어가 유럽 위주로 벌어지다 보니까, 경기 코스가 특정 선수의 고향을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해당 선수는 BA로 나서게 됩니다. 그러면 동네 주민들, 친지, 가족들이 플래카드 들고 나아서 환호해주죠. 선수가 그렇게 아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때 느끼는 기쁨은 참 형언하기 힘들 거 같군요. 3. 전략의 측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로 투어 후반부 산악 스테이지에 해당하는데, 미리 도움선수들을 BA로 보내놓는 것입니다. 이런 날은 BA에 추격그룹까지 생기기도 하는데, 그 그룹마다 미리미리 보내놓습니다. 그리고 펠로톤에서 리더가 어택을 치면서 속도를 올리면 해당 산악구간에 있던 선수들이 징검다리로 이를 이어받아서 쉬지 않고 리더를 끌어주는 거죠. 이걸 잘 보여준 경기가 2016년 지로 디탈리아 20스테이지였죠. 사실상 마지막이었던 스테이지에서 당시 아스타나 소속이었던 니발리가 이 전술로 오리카의 차베스를 무너뜨리고 그림과 같은 역전 우승을 차지합니다. 또한, 리더 저지를 입은 팀이 BA로 한 명을 보내면, 그때는 그 팀이 굳이 펠로톤을 끌지 않아도 됩니다. 그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 보내기도 하고, 또는 경쟁 팀이 BA에 선수를 보냈으니 이를 견제하기 위해 우리도 BA를 보내자... 이러면 BA가 규모가 커집니다. 4. 이것도 그랜드 투어 후반부 스테이지에 해당하는데, 3주차쯤 되면 어지간한 선수들도 체력이 바닥을 기기 시작합니다. 이런 날은 주요 선수들이 아닌 이상 BA로 몇 명이 나가건 펠로톤은 신경을 끕니다. 주요 선수들은 주요 선수들끼리 붙을테니, BA 나가서 스테이지 먹고 싶은 놈은 내버려 둔다 이런 거죠. 이런 날은 산 좀 탄다는 선수는 죄다 BA로 나가서 우승을 노립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스테이지조차 주요선수들의 산악 타는 능력과 도움선수들 기량이 워낙 좋아서 그런가 주요선수들이 전부 흡수해버리는 케이스가 많더군요. 그래서 산악왕 저지가 그 투어 우승자인 경우도 꽤나 많아졌습니다. 의도적인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계속 주요선수들이 산악 포인트를 먹어버리는 거죠. BA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은퇴한 선수 중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옌스 복트가 있었고, 최근에는 토마스 데 헨트(Thomas de Gendt)라는 선수가 유명합니다. 그야말로 BA 깎는 장인 수준의 선수로, 작년 투르 드 프랑스 전체 거리의 약 30%에 해당하는 1080km를 BA로 나갔고, 부엘타에서도 거의 40%를 BA로 나간 선수입니다. 한마디로 두 대회 더블을 달성한 프룸보다 방송 카메라에 더 많이 잡힌 선수입니다-_-;;; 올해 어느 투어였지... 한 스테이지에서는 무려 7분도 넘는 차이로 스테이지 우승을 먹어서 그날 펠로톤은 직무 유기라고 욕을 시원하게 먹었던 황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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