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9/22 18:23:48
Name   quip
Subject   상도동 秘史-하이웨이 민치까스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들이 조금 있기에, 독해에 주의를 요합니다. 어디까지나 픽션입니다.



-


그 해는 유독 추웠다. 상도동을 관통하는 도로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자주 얼어붙고 또 녹아내렸다. 얼고 녹고 또 얼어붙고 녹아내릴 때 마다 파편이 후두둑 후두둑 흘러내렸다. 오직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들만이 해가 떨어진 겨울 도로를 질주했다. 취객을 태운 택시 기사들, 자재를 실은 덤프 트럭들, 그리고 오토바이들. 오토바이들, 오토바이들.
오토바이는 아이들의 훌륭한 식량 공급원이었다. 얼어붙은 도로 곳곳의 패인 곳으로부터 쏟아져 흘러내린 파편들은 정상적인 주행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고, 청춘들은 언제나 불가능에 열광했다. 서울공고의 학생들이 성남고의 학생들이 영등포고의 학생들이 각자의 깃발을 발딱 세우고 새벽의 도로를 질주하다가 뒤엉키며 와장창 체액을 흘렸다. 그렇게 도로를 흘러간 것들이 상도국민학교 꼬맹이들의 끼니가 되었다. 그들은 오토바이 파편을 영도철물점에 팔고, 바닥에 눌러붙은 살점을 긁어내 하이웨이 민치까스에 팔았다. 일찍 일어나는 작은 새들은 매일 20키로 정도의 고철과 5키로 정도의 고기를 주울 수 있었다. 주먹이 강한 새들은 조금 늦게 일어나서, 그들을 삥뜯고는 했다. 아무튼, 하이웨이 민치까스는 7호선 시절 이전 시대의 상도동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맛집이었다(아쉽게도 당시의 상도동이란 선사시대 같은 곳이기에, 아무 데서도 이 기록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얼마나 역사적인 비극인가). 상도上道를 어설프게 번역한 가게의 이름이란 지금 떠올려보면 어딘가 힙한 느낌이 든다. 그 이름을 짓기 위해 하이웨이 민치까스의 사장은 아내를 신명나게 후려패던 두꺼운 손으로 곱게 콘시아스 한영사전을 뒤적거렸을 것이다.
물론 그곳은 겨우 동네 맛집에 불과했기에,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룬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백종원의 게르니카 불고기라거나 이강순 아우슈비츠 훈제청어 같은 제 1세계적 맛집에 비해 뭐랄까 개성이랄까 비극성 같은 것이 약간 모자란 음식점이었기 때문이다. 약간?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어제 저녁 먹었을 제육볶음과 그리 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음식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도동에 나고 자란 내게는 추억 깃든 음식인 것이다. 가솔린 냄새가 가득 베어 든 싱싱한 공고생의 육체를 아스팔트에 잘 갈아 튀겨낸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없는 일이다. 튀기면 신발 밑창도 맛있기 때문이다.

하이웨이 민치까스의 메뉴판 아래에는 이런 사인보드가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신선한 재료를 구합니다. 여름의 국사봉에서, 겨울의 신대방 삼거리에서.' 청춘들이란 언제나 발딱 세운 채로 뒤엉켜 액체를 흘리는 것에 열광하고는 하는 것이다. 여름의 국사봉에 올라 본 당신은 왜 밤나무 하나 없는 국사봉에 그렇게 밤꽃 냄새가 범벅인 지 궁금해질 지도 모르겠으나 상도동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렇고 저런 행동들이 이루어졌고 이렇고 저런 행동의 원치 않던 결과물도 제법 괜찮은 식재료가 되었다.

아쉽게도 하이웨이 민치까스는 7호선이 들어오고 폐업하게 되었다. 지하철만 들어오면 아파트만 들어오면 부동산이 오를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신통치 않은 성장세에 자경단을 조직하고, 온갖 마을의 더러운 것들을 구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복덕방 김 씨는 25mm 발칸포를 들고 폭주족 사무실을 급습해서 조만간 아스팔트에 갈려 고깃덩이가 될 사람들을 총알 박힌 고깃덩이로 만들어버렸다. 한동안 하이웨이 민치까스의 민치까스에서 쇠 냄새가 났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확인해 볼 길이 없다. 성대시장 귀퉁이에서 조개구이 집을 하던 박 씨는 마을의 오랜 전통이던 패싸움놀이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상도동민 모두가 중학생 시절까지 즐기던 이 놀이의 규칙은 단순했는데, 마을별로 패를 갈라 길에 떨어진 물건을 들고 상대와 춤사위를 벌이는 것이었다. 새벽에 취객끼리 한판 붙고 난 잔해들-그러니까 깨진 소주병이라거나 날카롭게 부숴진 뼈 조각이라거나 권총 같은 것-을 들고 상대를 후려치면 되는, 상도동 주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전통적 여흥이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또 여러가지 옛 것들이 사라졌으나, 부동산은 대체로 오를 기미가 없었다.

짜증을 느낀 상도동 상인연합회의 회원들은 정치적 논쟁을 진행하여, 마을에 가장 해가 되는 시설들을 차례로 철거하기 시작했다. 상도국민학교 병설 고아원이 사라졌고, 신상도 주산학원이 사라졌으며(그 자리에는 주산학원 원장의 쌍둥이 동생이 하는 신상도 콤퓨터 학원이 들어왔다) 뭔가 몇개가 사라지고, 그 와중에 하이웨이 민치까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412 영화퍼스트맨 짧은 생각들 1 코리몬테아스 18/10/23 3973 7
    8495 오프모임[급벙]2시간 달립니다. 22 무더니 18/11/09 4731 7
    8333 꿀팁/강좌[엑셀월드] #3. 함수만으로 데이터 추출하기 11 Iwanna 18/10/06 10183 7
    8264 창작상도동 秘史-하이웨이 민치까스 5 quip 18/09/22 5691 7
    8256 꿀팁/강좌다른 사람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하는 화법 6 라밤바바밤바 18/09/21 6838 7
    8194 방송/연예비밀의숲 7 알료사 18/09/10 5916 7
    8193 스포츠축구입문글: 나만 관심있는 리그 - 플레이오프 다시갑시다 18/09/09 5180 7
    8192 여행유럽이라고 다 잘 사는 건 아니라만 - 몰도바 9 호타루 18/09/09 6070 7
    8190 게임마블스 스파이더맨 리뷰 7 저퀴 18/09/09 4723 7
    14500 정치정당정치의 실패와 이준석, 이낙연의 한계 6 알탈 24/03/03 2047 7
    8413 역사물질만능주의 인류역사기 (1) 공정의 시작 12 다시갑시다 18/10/24 5769 7
    8013 게임스타 관련 옛 이야기 7 꿀래디에이터 18/08/08 3450 7
    7978 오프모임(일단마감) 화요일 저녁, 을지로 신도시 87 다람쥐 18/07/30 6070 7
    10545 기타구몬 일어 4A부터 2A까지 일지 대충 정리 8 수영 20/05/03 5957 7
    7928 일상/생각조던 피터슨이 세상을 보는 관점들 26 벤쟈민 18/07/24 7482 7
    7814 스포츠[사이클] 펠로톤(Peloton)에 대하여 7 Under Pressure 18/07/09 13730 7
    7787 사회아시아나 기내식 대란 사태를 나름 개조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5 CIMPLE 18/07/04 4451 7
    8285 기타창고에 있는 게임CD들.jpg 15 김치찌개 18/09/27 7865 7
    7757 스포츠프로스포츠와 Yak 20 Under Pressure 18/06/27 4230 7
    7750 일상/생각열려가는 사회 2 삼성갤팔지금못씀 18/06/26 3557 7
    7741 의료/건강전공의 특별법의 이면 21 Zel 18/06/24 5961 7
    7707 일상/생각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는 음식들 3 성공의날을기쁘게 18/06/18 4747 7
    7676 요리/음식[Cafe Carioca - 1] 나는 어쩌다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가? 22 Erzenico 18/06/13 4906 7
    7667 게임[Plants vs. Zombies] 식물vs좀비 모바일 무과금 모든 업적 공략 #1 8 Xayide 18/06/12 6377 7
    7659 스포츠[사이클] 3대 그랜드 투어, 지로와 부엘타 소개 8 Under Pressure 18/06/11 5125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