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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10/25 14:31:54
Name   하쿠
Subject   야구장 로망스
넌 야구장에 왜 가? 뭐가 재밌어?

나? 야구선수 덕질하고 응원하러 가는데. 아니 그냥 좋아할 수도 있지. 너는 걔네, 아, 이름도 기억 안나네. 암튼 너도 걔네 노래 맨날 듣고 앨범도 꼭 몇개 씩 사고 그러잖아. 어~ 너도 그냥 좋아서 그러잖아. 뭐랄까 이젠 잘해도 못해도 상관이 없다니깐. 아니 너넨 매번 1위를 해야지만 좋고 응원하고 그래? 아니잖아. 나도 그래. 그렇다니까...

하나뿐인 유니폼 때탈까봐 드라이 맡겨서 미리 찾아놓고 혹시 내가 잘 모르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응원가랑 손동작도 쭉 유투브로 예습하고 가는 게 좋아. 근데 야구장은 왠지 야구에 관심없는 친구들이랑 가면 좀 재미가 없어. 왜냐면 일단 우리 팀 공격할 때엔 응원하기도 바쁘고 보다보면 승질도 좀 내줘야 하고 좋아하는 선수 나오면 미친듯이 소리도 질러야 하고. 또 상대 팀 공격엔 수비하는 거 보면서 맥주로 목도 좀 축이고 치킨 뜯어먹느라 바쁜데 옆에서 야구 룰을 물어보거나 방금 저게 스트라잌인지 볼인지 저 선수는 누군지 잘하는지 못하는지 상대팀은 몇 위인지 잘하는지 어떤지 이런 거 물어보면 설명해 줄 시간도 정신도 없단 말이야. 맞아, 사실 나도 잘 모르기도 하고...암튼 그래서 같은 야구 팀 좋아하고 마음도 맞는 동지들이랑 같이 취미삼아 야구장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된거지.


오랜만에 집 근처 야구장에 원정 경기를 보러 간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야구장이 떠나가라 소리지르며 맥주도 들이키고 신나게 흔들어대고(?) 있는데 왠지 앞 자리 사람이 좀 자주 뒤를 돌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몇 번 정도는 누구 사람 찾는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이 마주치는 거 같.. 응, 이거..? 에이 설마. 아니겠지. 허나 동지여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시간따윈 없다네. 자주 있지도 않는 원정 경기에 마침 이기고!! 있는데!!! 끝까지 더 가열차게 응원해야 하잖아!!!! ... 그렇게 정신없이 몇 번을 꺅꺅대고 흔들고(?)나니 슬슬 여기저기 주황색 비닐공을 머리에 얹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네. 왜 어째서 매번 내가 휘두르는 봉다리엔 바람이 동글동글 빵빵하게 들어가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친구의 능숙한 손목스냅을 보면서 휭휭휭 휭휭휭휭 몇 번을 따라 해보는데도 영 모양새가 나지 않으니 보다못한 친구가 대신 만들어 주려는 참이었다.

"저기요, 이거 쓸래요?"
"네?"
"내 이거 잘 만들어서 야구보러 올 때마다 여기저기 만들어 주거든요."
"이게 뭔데요?"
"아, 딱 보믄 몰라요, 이거 도깨비 뿔인데요. 요고를 머리에 쓰고 어 글치 그라믄 된 거예요."
"아하.. 감사합니다. 리본은 자주 봤지만 이건 처음 봤어요! 안그래도 잘 못 만들겠던데.. 감사합니다."
"내 아무나 안 만들어 주는데 맘에 들어서 주는 거예요."
"큽... 아니, 다 만들어 준다면서요~"
"아 맞네. 근데 지금은 이거 하나만 만들었거든요??!"
"으흥흥~ 네 감사합니다."

과연. 처음 보는 도깨비뿔 봉다리에 신이 나서 셀카를 몇 장 찍다가 슬그머니 앞을 보니 눈이 또 마주쳤다. 살짝 상기된 듯한 옆 얼굴 속 눈꼬리가 휘어지고 입가엔 함박 웃음이 번져간다. 그 모습에 갑자기 쑥스러워져서 얼른 저 저기 먼 마운드로 눈을 돌렸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꾸밈없는 그 표정에 왠지 내 볼까지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저기요! 근데 야구 끝나믄 뭐해요?"
"어... 아마 집에 가겠죠?"
"아니 지금 미세먼지도 윽수 심하고 추버서 그냥 삼겹살이나 무러 갈라하는데. 같이 갈래요?"
"어... 그을쎄요..."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신이 난 친구들이 부싼갈매기~부싼가을매기~목청껏 부르면서 좋다고 하는 건지 그루브를 타는 건지 아무튼 끄덕끄으덕 엄지척. 그렇다면 나도 응 끄덕끄으덕. 꼴, 아니 콜!! 그렇게 참으로 간단하게 초면의 야구동지들과 승리의 삼겹살을 먹으러 가게 되었더랬다.


"하~ 그 니 취향 와 그래 독특하노. 살도 마 디룩~디룩 쪄가꼬 빠따질도 돈만치 몬하는데 머 좋다꼬 보러다니는데?"
"아 내 맘이예요. 취향은 존중해줘야 하는 거라고요. 귀엽기만 하구만."
"야, 봐라 으디가 귀엽노. 니 진짜 윽수로 좋아하는갑다."
"그렇다니깐요. 아까 말했잖아요. 자 짠이나 해요. 쨘!!!"

씩 웃으며 술잔을 부딪히고 나니까 그제서야 좀 더 눈을 바라 볼 용기가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시간을 거의 등짝과 뒷통수만 봤던 사람이었으니. 이렇게 마주 보니 더 착하게 생겼네. 덩치는 아까 뒷모습 봤을 때도 나쁘지 않았고... 그러게. 사실 덕분에 기분도 좋았고 즐거웠다. 근데 저 사투리 차암.. 왠지 아까보다 말투가 점점 세질수록 어째 더 귀엽게 느껴지는 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같은 팬인데 편하게 연락하고 지내는 거 어때요?"
"그러게요. 단톡방 만들어서 야구 얘기도 하고 그럼 좋겠다!"
"좋재~ 너들 사직구장은 와봤나? 난중엔 부산서 함 봐도 되겠다."
"부산 좋아하는데 너무 멀어서요. 이번에 가을야구 가면 한 번 가고는 싶은데..."
"맞다 가을야구도 하고 부산도 오고 그라믄 되재!"
"그래요 가을야구 가고 부산도 가고 가을야구 가즈아!!!"


하지만 슬프게도 나도 알고 그대도 알고 우리 다 알고 있듯이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질 수 없었고 한동안 그 단톡방엔 부산사투리 특유의 찰진 욕이 끊이질 않았더랬다. 대화들을 읽기만 해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똑같은 글자인데도 왜 이렇게 시끄럽게 보이는 거야. 하며 킥킥대고 있는데 순간 단톡방이 아닌 이름 세 글자만 있는 대화창이 띵동, 떠올랐다.


니 잘 지내나
-네ㅋㅋㅋ 저야 잘 지내죠잉
몸은 개안나
-네!ㅋㅋㅋ 괜찮고 안녕하답니다. 다 나았음요!
다행이네ㅋㅋㅋ 근데 니 부산엔 한 번 안올끼가?
-부산... 가고는 싶은데 일하는 게 우선이라 당장은 못갈 거 같아요ㅠㅠ
아 맞나ㅋ 어쩔 수 있나 가을야구도 못 간 빙시새기들 땜에 섭한거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꼭 온나 부산에
보고싶다
니는 내 안보고 싶나
와 말이 없노
머하는데


빨갛게 달아오른 볼에 손등을 살짝 대 본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피어난다. 아, 이런 감정은 숨길 수가 없겠구나. 그제야 실실 눈웃음이 함께 차오른다.

-아 죄송해요ㅠㅠ 저 기차표 보고 있었어요ㅎㅎㅎ
-그렇게 말하시면 안 갈 수가 없잖아요!
ㅋㅋㅋㅋㅋ그래 와라 온나 퍼뜩 온나
글면 보고싶다카면 오는거가?
-아뇨 내도 니 보고싶어서 가는 건데요.
왜 말이 없어요?
뭐해요ㅎㅎㅎㅎㅎ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으 간지러워라
이 글엔 약 50%의 실화만 담겨있습니다.
사투리 어색하고 틀렸어도 이해해주세요 제가 지역 사람이 아니다보니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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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메오메오메오메 야구장에서 뭐하는 거시여~
  •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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