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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12 22:31:35수정됨
Name   温泉卵
Subject   고지라를 쓰러뜨릴 수 없다면 도망쳐라


마츠이 히데키의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전설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너무 잘하니까 우타자에서 좌타자로 전향당했고, 중학 시절에는 6할 타율에 130m 홈런 빵빵 쳐내는 괴력 때문에 연식 야구공을 수없이 깨먹었고, 고등학교 감독이 매달려서 세이료 고교 진학, 입학식 하기도 전에 4번타자로 연습에 참가했습니다. 1학년 때 붙은 별명은 호쿠리쿠의 괴동(怪童), 공포의 1학년 4번타자. 1학년 때는 고시엔에 나가긴 하지만 3타수 무안타로 초전패퇴, 2학년 봄엔 센바츠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2학년 여름에는 고시엔 4강까지 올라갔고(우승팀 오사카토인에게 패배), 이후 체력 측정에서 키요하라 이후 최고 레벨의 수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고시엔 이후 팀의 주장이 되는데, 원래라면 부원들이 투표로 뽑는 게 관례였지만 감독이 '마츠이가 짱이니까 마츠이가 해'라는 이유로 주장행. 가을에 각 지방 우승팀들이 참여하는 진구대회에서 우승하는데, 결승에서 도쿄의 왕자 테이쿄를 상대로 4개의 고의사구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투수가 쫄아서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가 고의사구가 됐는데 나중에는 그냥 대놓고 걸렀다고 합니다. 2학년으로는 유이하게 고교 선발팀에 뽑혔고, 거기서 3학년들을 감탄하게 만들어서 드래프트 뽑히고 '마츠이보다 큰 홈런은 못 칩니다'라고 발언할 정도.

3학년 봄 센바츠에서 초대형 사고를 터트리는데, 당시 고시엔 구장은 럭키존이라고 부르는 홈런존을 철거해버려서 홈런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실제로 전년에는 대회 통틀어 18개의 홈런이 나왔었는데 이때는 단 7개로 폭락했죠. 근데 마츠이는 첫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치는 등 3경기 동안 혼자서 3개의 홈런을 쳤습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고, 요미우리의 나가시마 시게오가 감탄해서 마츠이를 뽑기로 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세이료는 8강에서 탈락, 우승은 진구대회 결승에서 꺾었던 테이쿄가 차지했습니다. 여담으로 마츠이를 상징하는 별명 고지라는 이 3학년 봄의 일인데, 홈런 빵빵 터트려서 붙은 게 아니라 대회 앞두고 스포츠지 여기자가 거대한 하체와 송곳니 때문에 붙여준 게 함정. 마츠이는 '고지라 같은 거 말고 좀 귀여운 걸로 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투덜댔지만 기자는 '어머 고지라 귀엽지 않니?'라고 일축했다고(...)

그리고 대망의 3학년 여름 고시엔. 2회전에서 마츠이는 전설적인 5타석 연속 고의사구를 당합니다. 2-3이던 9회 2사에서 3루타가 나와서 관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메이토쿠기주쿠는 끝까지 고의사구로 대응합니다. 결국 메이토쿠기주쿠의 승리로 끝났고, 메이토쿠기주쿠의 마부치 감독은 '고등학생 가운데 프로선수가 있었다', '정정당당히 겨뤄 깔끔하게 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 모르지만, 현의 대표로서 한 경기라도 더 이기고 싶었다', '싸워서 기뻐하는 건 관객과 상대팀뿐이다' 등의 발언을 남겼고요. 냉정히 이기려면 이렇게 하는 게 맞았습니다. 5타석 중 4타석이나 주자가 있었고, 설사 주자가 없는 상황이더라도 마츠이를 상대로 승부하는 건 홈런 맞을 각오를 했다는 거였거든요. 고시엔에서 마츠이를 상대로 한 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은 건 91년의 오사카토인 뿐이었고, 어차피 도망가는 피칭으로 도박할 바에야 확실히 거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긴 했습니다. 이 5타석 연속 고의사구에 묻혀서 그렇지 전년도 진구대회에서 테이쿄도 비슷한 행동을 했고요.

문제는 이게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그것도 일본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것 중 하나인 '고시엔'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겁니다. 중계하던 캐스터는 생방송인데도 '뭘 위해 고시엔에 온 것인가'라고 비난했고, 고교야구연맹의 회장은 '적어도 주자가 없을 때는 승부를 했어야 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고교야구에서 도가 지나쳤다.'고 디스했습니다. TV고 신문이고 잡지고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고, 독자 투고를 통해서도 찬반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특히나 고시엔의 주최자인 아사히신문에서 지독할 정도로 신랄한 디스를 퍼부었는데 이쯤 되면 애들 공놀이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거죠.

관중들의 비난도 경기장 물건 투척에서 끝나지 않고, 경기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협박전화부터 시작해 숙소를 경찰이 호위해줄 정도였고, 다음 경기를 위해 입장할 때도 경비원들의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연히 경기 도중에도 경찰관들이 대거 배치되었는데, 얼마나 살벌했는지 상대팀이었던 히로시마공고의 학부모회에서 '룰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 야구부도 그랬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전단을 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짓눌린 건지, 같은 해 두 번의 연습경기에서는 메이토쿠기주쿠가 대승을 거뒀음에도 이 경기에서는 반대로 0-8 참패를 당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의 미팅에서 마부치 감독이 눈물을 흘리고 학생들도 통곡하면서 메이토쿠기주쿠의 고시엔도 끝났죠. 마부치 감독은 사임하려 했으나 교장의 만류로 감독직을 유지, 지금까지 감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메이토쿠기주쿠는 이 사건 이후 악역 이미지가 자리잡혔고, 잦은 야구부원들의 일탈과 불상사(결국 마부치 감독은 한 번 사임했다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지나친 투수 혹사 등의 이유로 고교야구팬들 사이에선 여전히 이미지가 나쁜 편입니다.

한편 가을의 국민체육대회 야구경기는 고시엔에서 상위권에 든 학교들이 참가하는데, 이 사건의 여파였는지 원래라면 나오지 못했을 세이료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츠이는 고교야구 최후의 타석에서 홈런을 날리면서 60홈런을 달성하고 고교무대를 졸업하게 됩니다. 이게 당시 기준으로는 키요하라에 이은 2위였을 겁니다 92년 기준 키요하라가 2위, 마츠이가 3위였네요. 그 뒤로는 다들 아시다시피 요미우리에 입단해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고지라가 되었고,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는 기대치만큼의 대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시아 출신으로는 극히 드물게도 메이저에서 족적을 남긴 타자가 되었습니다. 무릎 망가진 상태에서 보여준 2009 WS의 퍼포먼스는 양키팬들에게는 감동, 또 감동일 뿐입니다.

이와중에 묻혀버린 이야기가 하나 더 남아있는데, 마츠이의 뒤에 있던 5번타자 츠키이와 얘기입니다. 5타석에서 스퀴즈로 1점을 뽑은 것 외엔 전부 범타로 물러났는데 이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고, 기자들에게도 당시의 감상을 묻는 질문공세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대학교는 오사카로 갔지만 거기서도 비난과 조롱은 계속됐고 결국 금방 대학 관두고 야구까지 그만뒀다고 합니다. 몇 년 뒤에 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연식야구로 야구를 재개, 나중에는 본인이 고의사구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 후속 타자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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