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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2/17 18:01:00수정됨
Name   AGuyWithGlasses
Subject   [사이클] 랜스 암스트롱 (1) - It's not about the bike.
0.

한 종목 분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스포츠 스타들은 때로 인지도가 종목 경계를 넘나들기도 합니다. 농구는 몰라도 조던은 들어봤고, 축구는 몰라도 메시 뽈 차는건 봤고, 골프는 몰라도 빨간색 상의에 깜장 바지 입은 흑인 선수는 기억하실 겁니다. 영세한 사이클 업계에도 이러한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로드 사이클은 몰라도 투르 드 프랑스는 들어보신 분이 많으실 거고, 다른 선수는 몰라도 미국 선수 하나가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했다는 것 정도는 한 번 정도는 들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도핑 사실을 고백하고 업계에서 영구제명되었다까지도 들으신 분들도 꽤 되실 거구요.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며,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랜스의 인지도를 넘어설 자전거 선수는 아마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유독 사이클은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가 많이 돌아다닙니다. 과거에 자전거를 보던 사람들의 무분별한 선수 찬양과, 부정확한 기억이나 와전에 의한 정보들로 인해 왜곡이 심하고, 저처럼 최근에 사이클에 입문한 사람들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이다 보니까 과거 선수들이 언급되면 뭐지? 하는 게 많습니다. 아니, 거의 다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들은 정말 지독하게 정치적인 문제로 엮여 있고, 지금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것들도 있으며, 아직까지도 약물 문제가 심각한 스포츠 중 하나라 현재진행형이기까지 해서 너무나 문제가 복잡해서 머리가 터집니다. 그래서 아 씨x 몰라가 사실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라는 사람은 이런 점을 절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성질머리를 가졌습니다. Cyclingnews같은 해외 언론에서 과거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게 뭐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재작년부터 사이클의 역사에 관해서 많은 정보들을 영어권 언론기사, 각종 블로그 토론들, 위키 등을 통해서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선수들 자서전이 제일 좋은 정보인데, 제가 구할 길도 없고 영어도 정말 드문드문 하는데 비영어권 선수들이 훨씬 많은 이 판 특성상 방법이 없습니다.

제 글도 사실관계가 아주 완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하지만 저는 2016년부터 사이클을 보기 시작했고, 랜스는 한참 전에 은퇴한 사람입니다. 그 시절에 완벽하게 이입할 수 없고, 남은 정보로만 이 시대를 바라봐야 하는 약점이 크죠. 하지만 정말 수 차례 이 스포츠에 대해서 고민하고, 다른 스포츠들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거치고 사이클 글 연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오래된 기억이나 와전된 정보, 팬심에 의거해서 쓰는 글들보다는 훨씬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은 판타니에 대한 글과는 달리 서술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썼습니다. 랜스에 관한 정보를 취합하면서 생각이 분명하게 모이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랜스의 사건에 대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범위를 다룬 글을 반드시 하나 남기겠다고 결정했거든요. 랜스의 문제는 랜스 개인이나 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클 전체의 문제기 때문입니다. 사이클 역사에서 랜스가 어떤 의미에서든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이 때문입니다.


1.

랜스 암스트롱은 1971년 9월 18일, 텍사스의 플레이노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랜스가 텍사스 출신이라는 것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하나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 봐도 스팀이 좀 올라오네요.


랜스 암스트롱은 12살에 수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수영에 재능이 있었는지, 바로 그 해 주 대회에서 1500m 자유형 부문 4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후 철인3종으로 종목을 전환하여, 다음 해인 13살에 주니어부 대회에서 우승하고, 15살에는 U19 대회를 우승하는 등 재능있는 철인3종 선수로 발전합니다. 16살에 프로로 전환하고, 1989년, 90년 2년 연속 미국 내셔널 챔프대회를 우승합니다. 랜스의 사진을 보면 자전거 선수치고는 굉장히 체격이 다부지고 근육량이 많은 편임을 알 수 있는데, 약을 빨아서 베이스가 처음부터 자전거였던 게 아니라 철인3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인3종에선 이룰 거 다 이뤘다고 생각했을까요. 랜스는 1992년 사이클 선수로 전향합니다. 미국은 랜스 시대를 제외하면 사이클에서는 변방 취급을 받습니다만, 그래도 시대마다 꼭 프로 팀 하나씩은 있는 나라입니다. 이 시절에도 미국에는 Jim Ochowicz(짐 오초위츠)가 이끄는 Motorola 팀이 있었습니다. 오초위츠는 미국 사이클링의 대부격 되는 사람인데, 지금도 이 업계에서 감독을 맡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랜스는 당시 원데이 클래식 선수로 여겨졌습니다. 체구가 너무 커서 산을 오르는 데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이야 크리스 프룸, 톰 드물랭처럼 키가 커서 TT에서 무적을 자랑하는데 산도 잘 타는 팔방미인들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그랜드 투어 리더가 키까지 큰 경우는 드뭅니다. 랜스가 한창 데뷔하던 시절에 미구엘 인두라인이라는 선수가 같은 방식(키가 무려 188cm였는데 산을 잘 탔습니다)으로 TDF 5연패, 지로 2연패를 기록하며 최전성기를 달렸지만 처음 있는 케이스입니다.
물론 인두라인도 선수시절 도핑 검사에서 적발되지 않았고 직접적으로 도핑 스캔에 연관된 적은 없습니다만 소속팀이었던 Banesto 팀 전체가 악명높은 페라라 3인방 의사들 중에서도 제일 보스격인 Conconi 박사 연구실을 뻔질나게 들락날락거리던 경력이 있어 사실상 약쟁이로 취급을 받습니다. 인두라인의 30분 파워 평균치가 랜스, 판타니보다도 높은데 판타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면 결과는 뻔하죠. 
정말 불편한 현실입니다만 빌 버가 말했듯 약쟁이가 약쟁이를 이기던 시절입니다...



여튼 모토로라 시절에는 주로 원데이 클래식 대회에 자주 나왔습니다. 당시까지는 그냥 전도유망한 클래식 선수로 알려졌고, 실제 결과도 그러했습니다. 순간적인 파워가 좋은 선수라(스프린터는 아니고 짧은 업힐 스프린터 내지 펀쳐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주로 아르덴에서 활약했죠. 프로 전향 2년차인 1993년 랜스는 당시 미국의 3대 클래식 대회로 불렸던 피츠버그 클래식, 웨스트 버지니아 클래식, 미국 내셔널 챔피언십을 모두 석권했고, TDF에도 참가하여 Stage 8(평지 스테이지였습니다) 우승하였고 12스테이지에서 경기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1993년 노르웨이에서 열렸던 월드 챔피언십 대회를 우승하여 신성이 탄생했음을 알립니다. 영화 '챔피언 프로젝트' 극초반부에서 1994년 'La Fleche Wallonne' 대회 시작(https://redtea.kr/?b=3&n=7785 여기에서 말한 대회를 말합니다. 이 파트가 잘 안 읽히시는 분은 위 링크의 글을 보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직전 브뢰닐이 암스트롱을 처음 꼬시고, 경기 끝나고 페라리 박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그 대회에서 랜스가 무지개 띠가 그려진 월챔 저지를 입고 있는 이유가 바로 랜스가 전년대회 우승자였기 때문입니다.

챔피언 프로그램 영화랑은 달리 랜스가 1994년에 딱히 약쟁이들 때문에 좌절한 거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로드사이클 대회들을 조금만 알면 말이 안 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랜스는 La Fleche Wallonne 며칠 뒤에 열린, 5대 모뉴먼트 중 하나인 Liege-Bastogne-Liege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사람입니다. 이 대회 둘에 한 주 전에 열리는 Amstel Gold Race까지 엮어서 아르덴 클래식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예전에 5대 모뉴먼트 소개글이나 UCI World Tour 구조에 관한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플래시 왈롱과 LBL은 코스 구조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LBL이 좀 더 빡센 대회인데 여기에서 2등까지 했던 사람이 그 전 대회에서 좌절한다? 영화적 각색인 겁니다. 결정적으로 랜스는 1996년 La Fleche Wallonne 우승자입니다(이는 영화에도 바로 나옵니다)...

여튼 아르덴 클래식의 성과(LBL 2위, 플래쉬 왈롱 우승), 1번의 월드챔피언, TDF 스테이지 2개 우승 등 랜스도 젊은 시절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1996년까지의 랜스는 아르덴 클래식에서 포텐을 터뜨린 훌륭한 미국 선수 1명이었던 것이죠. 랜스는 1996년 TDF에선 6스테이지까지만 출전하고 기권합니다. 그리고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하여 개인 독주 6위, 원데이 레이스에서 12위의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이정도만 해도 랜스가 당시 상당한 클래식 강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소속팀이었던 모토로라가 그 해를 끝으로 스폰을 종료하면서 팀이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랜스가 바로 내년부터 뛸 새 팀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Cofidis라는 프랑스 팀에서 2년간 연 200만불의 제안이 왔고, 랜스는 즉시 받아들입니다. 해당 팀은 지금도 프로 콘티넨탈팀으로 존재하는 유서깊은 팀입니다. 별거 아닌거처럼 보이는데 당시로써는 상당히 높은 연봉을 제시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180도로 바뀌어 버립니다.


2.



랜스 암스트롱은 1996년 10월 2일 3기 고환암을 선고받습니다. 암은 이미 뇌, 폐, 복부 등으로 전이가 되어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의사는 랜스에게 살 가능성이 20%에서 50% 사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만, 차후 인터뷰에서 "그건 랜스가 너무 낙담할까봐 희망적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실제로는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라고 밝힙니다.

랜스는 바로 다음 날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이후 인디애나 대학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습니다. 여러 약물을 섞는 칵테일 요법을 받았고, 몇 차례 화학적 순환 요법으로 치료받은 후에도 남은 뇌병변 요소는 수술로 제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2월 말 마지막 화학요법을 받은 랜스는 놀랍게도 암 선고를 받은지 4달 만인 1997년 2월, 완치 선고를 받습니다. 그렇게 심각했던 암이 4달 만에 나았다니 진단이 너무 심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인생에서 가장 컸던 위기는 다행히 벗어났는데, 좀더 현실적인 장벽이 그를 가로막습니다. Cofidis가 그와 맺었던 계약을 취소한 것입니다. 암 선고를 받은 시점이 계약이 유효해지기 전이니까 바로 취소해버린 거죠. 그리고 아무래도 다른 팀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랜스는 1997년 내내 팀을 구하지 못하다가, 창단되지 2년 밖에 안 된 미국 우정공사 팀(US Postal, 이하 USPS)에 간신히 자리를 구합니다. 2년 계약에 연 200만불의 연봉을 약속받았던 1년 전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연 20만불짜리 계약을 맺고 말이죠.



랜스는 1998년 초까지 그래도 아주 중요한 대회들은 아니지만, 지금의 2.1 카테고리 정도에 해당하는 대회들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자신의 재기를 알립니다. 그리고 그 해 늦여름에 열렸던 Vuelta a Espana에서 종합 4위를 차지하면서 자신이 부활했음을 알립니다. 클래식 선수에서 그랜드 투어 리더로의 변신으로도 성공하면서 말이죠.


여담으로 이때까지의 랜스가 클린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랜스의 기록말소야 1998년 Vuelta a Espana 이후의 기록들에 해당되는 것입니다만, 랜스는 그냥 데뷔 처음부터 약을 빨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글을 전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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