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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2/27 11:58:44수정됨 |
Name | 사탕무밭 |
Subject | 우리가 머물다 온 곳 |
검은 상복을 입은 세이렌이 노래보다 강력한 소리로 우리의 뱃머리를 아래로, 또 아래로 당겼다. 우리가 내려가고 있는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다가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도 했고 눈앞의 광경은 너울거려 시야가 흐려지기도 했고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굉음이 들렸다가 사라지기도 했고 우리는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서서히 증가하는 수압이 우리의 배와 이미 죽은 우리의 뼈를 우그리고 부수는 심해인지 아니면 시간과 공간마저 어그러뜨리다가 엄청난 장력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잡아찢는 사상의 지평선 아래인지 아니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림보인지 혹은 기다림이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하는 연옥인지 우리들 중 몇몇은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기도 했지만 실소가 터질 만큼 바보 같은 일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선장이 아니었고 그 어떤 선원도 귀를 막지 않았기에. 1. 출발 전부터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전날까지는 코가 막혀 이틀 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때문인지 차려 입은 터틀넥 스웨터와 몸에 붙는 모직코트가 몹시 덥게 느껴져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연주회장에서 식은 땀을 흘리고 신경이 쓰여 음악에 전혀 집중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몇 번 겪어봐서 안다. 길을 나서기 직전 나는 급히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검은색 얇은 셔츠와 가진 외투 중 가장 자주 입어 낡고 헐렁한, 왁스가 다 날아간 검은색 재킷. 옷이 주는 압박감이 사라졌다. 밖에서 좀 추울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좀 뛰지 뭐. 거기에 갑자기 오랫동안 깎지 않은 머리가 거슬려서 회색 벙거지 모자를 썼다. 회색 모직 슬랙스는 까슬거리는 느낌이 그날 따라 유독 거슬렸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냥 두기로 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단정한 아랫쪽과 노숙자같은 윗쪽. 남의 구두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쇼생크 탈출에서 듀프레인이 보인 트릭이 생각나서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사실 사람들은 의외로 남의 추레한 꼴은 잘 신경쓰지 않아.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조용히 의자에 등을 붙이고 있으면 아무도 날 의식하지 않을 거야. 공연장으로 가는 동안 나른하고 가벼운 몸살기를 느꼈다. 이럴 때 식은땀을 흘리지 않고 연주에 집중하기 위한 평범한 팁이 있다. 각성효과가 있는 음료를 충분히 마시는 것. 카카오를 우린 차를 보온병에 넣어 이동 도중 계속 마셨고,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급하게 털어넣은다음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커피와 카카오는 각성효과가 미묘하게 다르다. 카페인이 정신을 명료하게 만들어준다면, 테오브롬빈은 어떤 즐거움을 부가하는 것 같다. 나는 초컬릿을 너무 좋아해서, 예전에 엄청난 양의 코코아를 한꺼번에 먹었다가 조금 고생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흥분감이 가시지 않았다. 병적인 즐거움이 어떤 느낌인지,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 때부터 나는 뭔가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면 코코아나 카카오차, 커피를 적절한 비율로 마신다. 2. 나는 표를 받고 좌석을 찾아갔다. 합창석 왼쪽. 피아노 독주회가 열리면 곧잘 선택하는 좌석이다. 연주자와 가장 가깝고 무엇보다 손이 잘 보인다. 공연자가 이름난 테크니션일 경우 즐거움이 배가된다. 음향적인 면에서 손해를 좀 보기는 하지만 독주회의 경우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공연은 그렇게 표가 많이 팔리지 않았다. 3층좌석은 아예 오픈하지도 않았고, S석과 A석은 빈자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이렇게 3층을 막고 합창석을 개방한 덕분에, 관객이 연주자를 둘러싸는 보다 친밀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딱딱한 구두상자가 부드러운 구릉의 포도원으로 바뀌는 작은 마술. 그런데 좌석에 앉고 나서 보기에 따라서는 약간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 생겼다. 내가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눈 앞에서 뭔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길래 눈을 떴는데, 양 옆에 앉은 분들이 나를 사이에 두고 팔을 휘둘러가며 뭔가를 교환하고 있었다. 대화도 나누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일행인 듯 싶었다. 그런데 왜 가운댓자리를 비워두고 좌석을 예매했을까? 음, 급하게 현장예매를 했나. 내가 예매할 당시 내 주변에 표가 남아있었는지 팔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노숙자가 주는 위험한 느낌을 가급적 피하려고 최대한 점잖게, 좌석을 바뀌드리겠노라고 말했다. 두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음, 아무래도 무서웠나. 3. 서서히 공연장이 어두워지고 검은 옷을 입은 연주자가 입장하자 정갈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연주자는 공연 때 마다 늘 같은 옷을 입는다. 여성 연주자들은 보통 드레스를 입지만, 그는 화려한 복장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연주의 집중을 방해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신경쓰이지 않게 몸을 놀릴 수 있도록 스스로 옷을 디자인했다. 미니멀과 에스닉한 스타일이 썩 잘 조화된 옷이다. 옆 동네 시트러스 킹이 몸에 딱 달라붙는 관능적인 미니원피스를 입을 때, 그는 사제복 같은 옷을 늘 고수했다. 노년의 아르헤이치나 앨런 그리모 같은 스타일이랄까. 아니 그보다도 더 소박하고 엄격해보인다. 나는 그 옷차림에서 연습복을 입은 운동선수의 느낌을 받는다. 조금 더 미니멀한 쪽으로 중심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난 쇼케이스에서 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납득을 했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혈혈 단신으로 프랑스를 건너갔다.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서. 그의 집안에서는 아무도 서양고전음악을 즐겨 듣지 않았다. 그가 피아노를 배우게 된 이유도, 일찍이 음악에 비범한 재능을 보여서가 아니었다. 그의 모친은 양손을 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에 그를 피아노 학원에 다니도록 했다. 그 이후로는 보통 천재들이 겪는 흔한 이야기다.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버리는 제자를 다른 스승의 손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결국 국내교육에 한계를 느낀 그는 도불하게된다. 이후의 학습이력은 경이롭다. 루앙에서 파리음악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습과 졸업과정의 최단기와 최연소 기록을 갱신했다. 연주하는 모든 곡을 암보하고 그 곡들을 모든 조성으로 즉석에서 변주할 수 있는 괴짜천재, 파리 음악원의 교수였던 앙리 바르다는, 그가 처음 레슨비를 건내주었을 때, 거절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네 연주가 선물이야. 이후로 그는 죽 그렇게 무료로 레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루앙에서, 또 파리에서 이런 촉망받는 학생인 동시에 철저한 이방인이기도 했다.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하는 동안 개량한복을 입고다녔다는 에피소드는,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자아를 유지하기위해 분투했던 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4. 피아노 앞에 연주자가 착석하고 박수소리가 잦아든 다음 예의 순간적인 진공상태가 조성되었다. 내게는 연주자의 등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감정을 끌어올리는 연주자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의 들어올려진 손이 건반위로 천천히 내려 앉으며 관객을 침잠시켰다. 첫 곡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 바단조 작품 2의 1번.네 개의 짧은 악장으로 이루어진, 타이트한 곡이다. 고전절정기의 정갈한 느낌이 많이 남아있고 듣기에 부담이 없으나 베토벤 특유의 화성은 그 곡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고상한 양식의 가장 위대한 사이클의 시작을 알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연주자는 겁이 없게도 이 위대한 사이클 전곡을 자신의 데뷔음반으로 선택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음반사에서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집 인터너셜 취입이라는 위업도 이뤘지만, 데뷔 음반을,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으로 낸 것도,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 곡을 단번에 녹음한 것도 아마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브렌델은 평생 3번의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사이클을 녹음했지만, 그조차도 그렇게 이른 나이에, 그렇게 단기간내에 녹음을 완료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겁 없는 신예는 프로듀싱도, 보통 유명 평론가가 맡는 라이너 노트도 자기 손으로 썼다. 자신의 손으로 해냈다. 얘 뭐야. 무서워. 그러나 막상 기대에 부풀어 그 결과물을 접하고 나니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첫 악장 첫 번째 주제부터 곡의 템포를 극단적으로 늘리고 조이는 루바토를 구사하는데, 나는 여지껏 십여개가 넘는 베토벤 전집을 들어봤지만 이런 연주는 처음이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갓 바다에 나온 초보 낚시꾼이 기필코 한 건 하겠다는 느낌으로 릴을 감는 것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마치 낚싯대와 물고기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후 몇 번 더 들어보면서 그 기괴할 정도의 비틀림이 사실은 정교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라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잘 들어보면 느낌이 온다. 예전에 어떤 연주자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공연에 간 적이 있었는데, 역시 비슷하게 곡에 휘둘리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곡을 진행하면서 주선율과 반주의 템포가 미묘하게 어긋나버려서 그걸 다시 결맞추려고 종종 루바토를 구사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연주자의 퍼포먼스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곡을 통제하고 있다. 단지 통제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유가 뭘까. 왜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일까. 5.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회에서도 그 주법은 여전했지만, 다행히도 웬일인지 그렇게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앨범에서 곡들을 1번에서 32번까지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 32곡에서 곡의 수준에서, 작품 출판 당시의 사료적 이유에서, 격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19번과 20을 제외하고,(이 선택에 대해서는 나는 평가를 유보하겠다. 나도 사실 이 곡들을 그다지 주의깊게 듣지는 않는 편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축에 속하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집을 남긴 위대한 연주자 언드라시 시프는 왜 이 두 곡이 꼭 연주되어야 하며 중요한의의를 가지는 지를 역시 자신이 쓴 라이너 노트를 통해 잘 설명했다) 나머지 30곡을 8개의 테마로 정리하고 각 음반에 몰아서 재배치했다.(그 결과 충격적이게도 함머클라비어가 맨 첫 곡으로 포문을 연다) 그런데 피아노 소나타 1번의 테마는 "단호한 정신의 선언(Assertion Of an Inflexible personality)"이다. 이 주제의 작품 2의 세 곡이 묶여있다. 그런데 나는 이 주제가 왜 "뻣뻣한 성격의 고수"라고 읽히는 것일까. 베토벤의 융통성 없는 성격과 괴팍함이 떠오른다. 그러나 어쩌면 반대로 그에게는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괴팍함의 총체였을 지도 모른다. 막 세상에 나와서 세상의 일그러진 모습에 충격받고 이리저리 충돌하는 앳된 베토벤을 상상하게 된다. 이로서 의문이었던 1번 1악장의 이해할 수 없었던 루바토를 납득하기로 한다. 매우 자의적이고 유치한 발상이지만. 그러고 보니 이 전집에서 그는 템포 루바토를 아주 자주, 굉장히 표나게 구사한다. 뭔지 몰랐던 거부감이 사라지고, 앞으로 이 루바토를 더 이해해보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울러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도. 아무렴. 6. 1번의 연주가 끝난 후, 그는 오래 침묵했다. 또 다른 진공 상태.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미동하는 순간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첫 번째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도 잔잔하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리고 퇴장, 이어진 몇 번의 의례적인 커튼 콜. 나는 아직도 연주자가 의미 없이 들락거리는 이 순간이 항상 웃긴다. 어쩌면 연주자의 운동 부족을 메우려는 오래된 관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파아노 앞에 앉았다. 진공. 손을 들어올리고, 천천히 하강. 바흐 평균율 1권, 전주곡 BWV 846. 조금 많이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과 바흐 평균율 1,2 권 전부를 가장 많이 듣는다. 부끄럽게도 베토벤과 바흐의 곡을 모두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 연주들이 마음을 공명시키는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베토벤은 희망에 젖었다가 분노에 휩싸이고, 우울에 한 없이 빠져들다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정신을 고양하거나 비상케 하지만, 바흐는 침잠시키면서 세상을 굽어보도록 한다. "시간이 갈 수록 더 이상 베토벤과 모짜르트를 듣지 않았다. 그런 인간의 감정들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반면 바흐를 자주 들었다. 그의 음악은 인간의 사소한 감정에서 초월해 있었다."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에서 할을 죽이고 홀로 우주를 떠돌게 된 주인공이 하는 이야기. 그러나 평균율 첫 전주곡의 화성은 눈물이 나게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점차로 탈색되며 우리를 선禪적 명상 상태로 이끌어간다. 나는 바흐 연주자에게 엄정함과 객관성을 요구한다. 바흐의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모두 가장 인기 있는 곡은 아무도 노출 콘크리트 공법같이 내부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굴드의 연주일 테지만, 나는 굴드의 연주를 존중하되 최고로 여기진 않는다. 골드베르크는 투렉의 소박함에 숨겨진 정교함이, 평균율에서는 굴다의 명쾌하고 고민없는 정확함이 더 끌린다. 내가 들은 최고의 평균율 음반은 폴리니의 것인데, 모든 면에서 굴다의 업그레이드라 할만 하다. 제자가 스승의 방식으로 스승을 뛰어넘는, 진정한 청출어람이다. 왜 폴리니는 아직까지 2권을 연주하지 않는 것일까. 존 루이스 처럼 2권을 녹음하기 전 죽지는 말아야 하잖아. 그게 얼마나 아쉬운 일인 줄 알아? 반면 이 연주자는 이런 평균율의 신성한 이미지와 고정관념을 사정 없이 깨버린다. 그의 평균율은 심각한 내적 격랑을 통과하는 중이다. 대중적인 스타일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베토벤 연주를 피상적으로 감상하고 흥미를 잃은 나를, 다시 그의 연주에 관심을가지게 이끈 것은 바로 이 이탈리아인 바흐가 작곡한듯한, 아주 감정적인 평균율의 연주였다. 처음 들어보는 스타일의 연주였지만, 테크닉의 완성도가 높고 집중력이 대단했다. 유툽에서 이 연주를 듣는 순간, 나는 바로 이 연주를 꼭 실연으로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2년도 안되서 이렇게 일찍 기회가 올지는 몰랐지만. 가급적이면 전 곡 연주를 다 듣고 싶었지만 몇몇 중요한 부분들을 발췌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베토벤의 두 소나타 사이에 평균율을 끼워 넣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연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7. ....그리고 급속도로 정신을 잃어갔다. 무슨 고매한 예술적 이유가 아니라, 그 즈음부터, 공연에 오기 전 급하게 챙겨 먹은 식사가 식곤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운명(이 아니라 재수)는 가혹하다.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린다. 내가 그렇게 듣기를 고대했던 바흐는 내 한 쪽 귀로 들어와, 뇌를 우회해서 다른 쪽 귀로 나가버렸다. 그 소중한 음들이 남들 귀로 술술 들어가는 모습을 희미한 정신으로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몇 번이나 정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만큼 연주가 좋았다는 뜻이다.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하여튼 유명한 어떤 음악인이 말하길 "당신이 연주할 때 관객이 졸고 있다면 당신이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관객들은 부자연스러운 연주를 듣고 산만해질지언정 결코 졸지 않는다."라고 했단다. 나는 산만해지지 않았다 단지 졸았을 뿐이다. 아주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언젠가 다시 그의 평균율을 들을 수 있을까? 있을 거야. 있어야지. 8. 바흐가 끝나고 회장이 밝아지며 인터미션이 시작됐다. 바로 그 순간 귀신같이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고,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회복된 것을 느꼈다. 나는 이것을 좋은 연주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가서 카페인과 테오브롬빈이 사정없이 방을빼라고 재촉하는 소변을 몰아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이상한 좌석배치를 선택한 두 아름다운분들이 다시 양 옆에 앉았고(편한 마음으로 보니 세상 모두가 아름다워 보였다), 다음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다시 서서히 어두워지고, 연주자가 입장했다. 자리에 앉아 첫음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마지막 연주를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다. 32번의 아리에타는 베토벤의 팬이라면 모두가 가슴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과장된 제스처로 애정을 표현할 법한 곡이다. 비록 나는 31번의 마지막 악장을 그와 비슷한 정도로 좋아하지만, 이 아리에타의 분위기와 인기에 비견될만한 악장은 아마도 가장 유명한 23번의 2악장 안단테 콘 몰토 정도일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이 연주가는 전집앨범에서 이 두 곡을 공히 "운명"이라는 테마로 묶었다) 그런데 사실 함머클라비어의 광포한 페달링과 함께, 이 곡 1악장의 허둥거리면서도 인위적인 느낌의 템포가 이 연주자에 대한 관심을 급속도로 식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아리에타는 괜찮았던 것 같다) 연주가 시작되었고, 나는 아주 명료한 정신으로 온전하게 곡에 집중할 수 있었다.(다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머리가 흐리멍텅해서 그대의 느낌을 떠올리기 힘들어서 문제지만) 이십 사 분의 시간 동안 나는 좋은 컨디션으로 연주를 즐겼고, 곡이 시작되기 전 가지고 있었던 낮은 기대나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실망감을 대부분 날려버릴 수 있었다. 1악장은 음반처럼 허둥거리는 느낌이 없었고, 아리에타는 감동적이었다. 연주에 만족했던 이유들을 이리저리 분석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그런 역량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마법과 같았던 순간을 경험한 것이라고 해두자. 지금으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지막 음들이 울리고 나서, 연주자가 고요 속으로 자신과 함께 우리를 끌어들일 때,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그 환상에 저항했던, 똑똑하지만 멍청했던 오딧세우스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일명 "안다박수". 그 소란 속으로 몇 명의 다른 동조자가 끌려 나왔고,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이왕 일이 어그러진 걸 알았던 체념한 몇 사람이 할 수 없다는 듯이 또 박수를 치고, 그러나 지금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하는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미적지근한 박수를 잇고, 나는 이 마지막의 씁쓸함 때문에 팔짱을 끼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고. 9.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여왕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침잠함으로써, 우리의 뱃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끌고 다시 심해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로만 전해 듣던, 검은 모비딕을 보았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다시 진공과 같은 고요가 찾아 들어 한동안 머물렀다. 그때 그 공기가 희박해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 성층권에서는, 빛의 입자가 감히 찾아 들지 못하는 밀집된 파동의 바닷속에서는, 사상의 지평선 아래에서는, 림보에선서는, 연옥에서는, 너울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이그러지는 우리 스스로의 놀란 눈들과, 다시 찾아온 침묵에 안도하는 유령들의 감사한 마음만 있었다. 우리 마음 속의 유령. 이명이 들렸다. 나는 사실 이명을 앓은 지 십 수년이 넘었다. 막 베토벤의 소나타들에 빠져 하루에도 열 시간 씩 듣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나는 어떤 우스꽝스러운 이유로 정신과 약을 처방 받아 먹고 있었다. 이명의 이유가 너무 과도한 음악감상 때문인지, 아니면 향정신성 약물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야기를 그때그때 편한대로 골라잡아 이야기하곤 한다. 가령, 베토벤을 너무 많이 듣다가 귀가 이상해져버렸어요. 충분한 묵상을 마친 여왕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들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손을 늘어뜨리자,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순간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정을 마친 연주가의 얼굴에 비친 눈빛은, 처음 연주를 시작하던 구도가의 눈빛도, 가끔 보여주는 전사의 눈빛도 Coda. 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는 8~9곡 정도의 앙코르를 받았다. 처음 바흐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이유 중 하나인, 비니 무어의 April Sky가 차용한 Concerto no. 5의 부분과, 정말 세련된 화성을 들려주었던 "아리랑"의 변주곡(이렇게 닳고 닳은 곡을 장난스럽게 변주하는 식의 앙코르는 매우 싫어한다. 단 이번처럼 높은 난이도의 작곡과 연주 테크닉을 보여주는 경우는 다르다), 내가 이름을 잘 모르는 라벨의 곡이 기억에 남는다. 앙코르는 매우 흥겨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연주자가 마임으로 관객과 소통하기도 했고, 의자의 높이를 조절하면서 육성으로, 이 곡은 의자가 높아야 잘 쳐져요, 라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늘 밝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동네 주민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로비로 나왔다. 밖에서는 사인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연주회가 끝나고 사인회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그 짧은 시간 교감 없이 기계적으로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는 행위가 기다림에 비해서 지나치게 편익이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번 비교적 여유 있는 분위기의 쇼케이스에서 사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고 싶은 말이 몇 개 있었다. 지난 번 쇼케이스에서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는 목소리가 잠겨서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잠자코 웃으며 사인만 받았다. 이번에는 말해야지.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첫번째는, 사..사랑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연주가의 어이없음과 썩은 표정이 섞인 오묘함을 감상하는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기로 했다. 두번째는, 호호 우리 이종사촌도 피아노로 먹고 사는데 미국에가서 활동해요. 피아니스트님처럼 걔도 임씨에요. 호호 왜 임씨들은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죠? 임동혁도 그렇고요. 호호호, 하고 뭔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 유리멘탈은 그 뒤의 후폭풍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내키지 않는 이야기를 하나 하기로 했다. "사실 사인을 받는 것도, 좋지만 지난 번에 받기도 했고 피곤하실 것 같아서 생략하고요. 대신 실례가 안된다면 제 바람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네에." 토끼눈을 하고 그가 쳐다봤다. "제가 사실은 폴 뒤카의 피아노 소나타를 정말 좋아하는데 마땅히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언젠가 연주자님이 꼭 음반을 취입하시거나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걸 듣고 싶어요. 파리음악원 원장도 지내셨던 분이고 그 소나타는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이라고 평가도 받잖아요." "아 폴 뒤카! 좋아요! 네, 할께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면 얼마나 좋았겠냐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엄청나게 멘탈이 약하고, 공연장 폐장시간이 가까워져 있길래, 관계자들이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시간을 끄는 진상들에게 몹시 눈치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청 허둥거리며, 발음을씹어가며 간신히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어.. 폴 뒤카. 제가 엄청 좋아하는데요. 그거 한 번 음반이나 연주로 꼭 해줘요. 응?" "네!네 폴 뒤카. 네! 오케이!" 나는 관계자들 눈치에 쫓겨나듣 물러났고, 조금 걷다가 뒤늦게 내가 어떤 곡을 원하는지 말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서 말해. 고작 마법사의 제자나 듣겠다고 이 수모를 무릅쓴 건 아니라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그에게 빙 둘러가며 접근했다. 마침 그가 내 모습을 눈으로 쫓고( 여튼 나는 멀리서 큰 소리로 "피아노 소나타요!"하고 입모양을 크게 해서 (하지만 목소리는 모기소리 마냥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그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얼굴이 환해지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엄지 척. 왠지 호머 심슨의 표정과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불경한 느낌을 깊이 억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비록 병슨은 됐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도시남자였다. 앞에 공연을 본 모녀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다. 젊은 어머니와 그 피아니스트가 막 유학을 떠나기 직전즈음 나이대의 여중생이었다. "......그 부분에서 막 트릴 그거 엄청 멋졌어. 난 처음엔 잘 못봤는 데 진짜 멋졌어." 엄마는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딸이 다시 한번 흥분한 말투로 반복했다. " 그 손가락으로 이렇게 막, 하는데 너무 멋졌어. 그렇지 응?" 그랬다고 생각한다. -끝-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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