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5/30 14:05:15수정됨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팬보이와 영화. 트레키와 쌍제이


탐라에 팬보이 이야기가 나와서

요즘은 팬보이들의 불평과 제작진들과의 마찰이 PC 문제로 드러나지만 ㅋㅋ 사실 이건 오래된 프랜차이즈의 팬보이들이 근본주의자들이고 복음주의자들이라서 PC든 뭐든간에 프랜차이즈에 내제된 어떤 코드나 역사를 거스르면 용서하지 않는 애들이라 나오는 논쟁이거든여. PC는 새로움의 종류 중 하나일 뿐이고

근데 팬보이들이 숭배하는 프랜차이즈의 코드라는 게 사실 조금만 떨어져보면 별 게 아니에요. 심지어 똑같은 팬이라 해도 그 팬보이들의 코드에 영합하지 않으면 진짜 별게 아닌거처럼 보여요. 팬보이 출신도 제작자의 입장이 되어서 보면 다르게 보이고요. 그래서 많은 팬보이들이 자기들 중의 하나가 커서 제작자로 진출했는데 배신때리는 거 보고 상처입음


스타트렉에선 JJ 에이브람스의  영화가 팬보이들로 부터 여러 코드 위반으로 비토당했어요. 전 쌍제이의 스타트렉을 좋아하는 편인데.. 쌍제이의 트렉은 트레키니까 이해하고 넘어가줘야 하는 부분이 없어요. 엉성한 이야기나 설명되지 않는 불친절함을 40년된 시리즈니까 니가 이해해야해 원래 이런 코드가 있는거야 (찡긋) 하지 않는거죠.

게다가 비기닝과 더 다크니스의 오프닝은 정말 멋졌어요. 특히 더 다크니스의 붉고 창백한 숲에서 달리는 걸로 시작하여 물속에서 음악과 함께 부상하는 엔터프라이즈호와 아름답게 흩뿌려지는 화산재에서 죽음을 택하는 스팍의 숭고한 모습. 스팍을 극적으로 구해내고 플레어를 흩뿌리며 워프한 뒤 빛의 잔상을 따라 로고가 뜨는 장면까지.. 저 오프닝의 장면들은 영화 후반부 주연들의 선택을 뒷받침하기까지해요.

걍 오프닝 신만 봐도 제게 쌍제이의 스타트렉은 띵작이에요. 많은 팬들이 쌍제이가 트렉의 정신을 이어받지 않고 프라임 타임라인을 망친다고 욕하면서 스타트렉 영상물의 수준을 TV영화보다 조금 나아서 팬들의 힘으로 극장에 걸리는 정도에서 대중적 블록버스터로 끌어올렸다는 점을 간과해요.


팬들의 바람을 그대로 이루어주는 스타트렉 영화판은 드라마 시리즈의 스페셜 에피소드같은 구성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두 시간 남짓한 영화에서 블록버스터로 구현될 스타트렉은 필연적으로 트렉의 가치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거에요. 다행히도 제작자와 쌍제이는 새 시대의 스타트렉이 이래야함을 이해하고 있었고 희생을 감수했어요.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스타트렉 영화는 갑자기 팬들의 바람을 들어줘요. 스타워즈로 트렉을 배신한 쌍제이는 떠나가고 저스틴 린 감독이 들어와요. 그와 제작진은 불안하게도 스타트렉 시리즈를 팬들에게 돌려줄꺼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고 그 결과로 비욘드가 나와요.

비욘드는 트렉스러워요. 주제의식만이 아니라 연출부터가 그래요. 크루들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카메라를 비교적 평등하게 분배하는 건...드라마에서는 한 시즌에 한 두개정도 선원 중 한명이 주연이 되는 에피소드가 있는걸 영화로 옮겨온 느낌을 줘요. 작중 최대의 위기를 신박한 아이디어를 통해 해결하는 것도 결정적인 깨달음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40분짜리 드라마의 구성같아요.



근데 이 트렉스러워진 비욘드는 제가 보기엔 퇴화에요. 비욘드의 어떤 장면도 비기닝이나 더 다크니스의 액션연출 하나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요. 비욘드의 외계인과의 흥정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다크니스와 비기닝에 비교할 수도 없고, 오토바이를 타고 빙빙도는 커크는 비기닝의 어린 커크가 즐긴 조이라이드보다도 못한 드라이빙 신이었어요. 다크니스의 우주스케이팅과 비교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뭐 흥행이 전작들에 비해 실패한건 결과론이긴 해요. 사실 후속작들은 전작이 홍보를 대신해주기 때문에 영화가 구려져도 흥행에는 더 유리하다는 걸 간안하면 다크니스보다 매출이 저조한건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욘드를 끝으로 티란티노 스타트렉이라는 루머만 남긴채 스타트렉 영화프랜차이즈는 뒤집어져버렸죠. 아마 캐스트의 대대적인 개편이 없는 새 영화는 나오지 않을꺼에요.

전 비욘드의 내용물과 리셉션을 보고도 쌍제이는 구렸고 우리들이 원한 트렉 영화가 옳다는 트레키들을 보고 팬보이들을 무시하는 제작자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오래된 팬들이야 말로 작품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챙긴다는 콩깍지가 벗겨지고 보니 ㅋㅋ 이 프랜차이즈는 이래야한다는 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싫어진거죠.

그래서 지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가 트렉스럽지 못하고 뭐 오빌이 더 트렉답다느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비욘드를 치켜세우던 사람들이 생각나요. 그나마 디스커버리가 시즌1때 방영될 시기 디지털 컨텐츠 리셉션에서 1위했기 때문에 팬보이들에게 저항할 수 있지만 흥행이 조금만 더 부진해져도 어떤 소리를 듣고 드라마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생각하니 그저 떨림 ㅋㅋ 스타워즈만 하더라도 ㅋㅋ 뭐 라제가지고 이야기하기 전에 ㅋㅋ 루카스는 쇼를 판타지에서 SF로 만들기 위해 제다이가 포스를 다룰 수 있는 이유가 무슨 미트콘드리아 같은거 때문이라는 설정을 발표했어요. 팬들이 생각하는 제다이와 포스의 신성성 따위 원작자 입장에서는 쇼의 방향성을 조금 조정했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뒤집어 버릴 수 있는 설정이란거죠.

그러니 팬보이들이여 부여잡고 있는 팬덤의 역사와 해석과 로어를 조금만 내려놓으세요. 그건 당신을 상처주고 프랜차이즈를 상처줄 뿐이에요. 시대와 매체에 맞게 변화하는 작품을 즐기세요.


P.s 근데 팬보이질이 중독적이긴 해요.
당장 비기닝 때 스타트렉에 입문한 트레키들이 우리나라에 한 트럭인데 다크니스가 나올 때 쯤에는 스타트렉 정주행(실제로 봤건 위키로 봤건 ㅋㅋ)하고 다크니스가 트렉스럽지 못하다고 까는 사람도 한트럭이고 비욘드에 와서는 양덕들과 함께 비욘드를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한트럭이거든여 ㅋㅋ

다른 사람도 아니고 쌍제이로 트레키가 되었으면서 비욘드를 치켜세우다니! ㅋㅋ



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981 IT/컴퓨터퍼즐 맞추기, DNA sequencing 7 JUFAFA 16/10/21 4330 2
    8412 영화퍼스트맨 짧은 생각들 1 코리몬테아스 18/10/23 3997 7
    4438 방송/연예팬텀싱어 - 7화 2 tannenbaum 16/12/24 4865 0
    8066 게임팬텀 독트린 리뷰 2 저퀴 18/08/17 7433 0
    9510 일상/생각팬이 아이돌을 생각하는 마음은 매우 복잡하다 43 장생 19/08/05 8260 6
    7259 일상/생각팬의 죽음을 알게 된 지하 아이돌의 일기 6 Azurespace 18/03/21 9201 8
    1465 음악팬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21 새의선물 15/11/04 9402 2
    13885 일상/생각팬은 없어도 굴러가는 공놀이: 릅신이 주도하는 질서는 거역할 수 없읍니다. 8 구밀복검 23/05/20 2632 20
    10817 기타팬심으로 그렸습니다. '동물의 숲'의 이웃주민 '쵸이' 8 설탕이더필요해요 20/07/26 5009 22
    9255 영화팬보이와 영화. 트레키와 쌍제이 4 코리몬테아스 19/05/30 5874 7
    11113 일상/생각팬레터 썼다가 자택으로 초대받은 이야기 20 아침커피 20/11/06 3988 27
    5536 정치팬덤의 경제학 - 광신자들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11 우웩 17/04/27 4394 7
    12408 일상/생각패알못의 지난달 패션 입문기 및 지름 결산 14 박태 22/01/06 4357 12
    7379 요리/음식패스트푸드에 대한 기억 9 사슴왕 말로른 18/04/13 4702 3
    9796 기타패스트트랙 관련 수사가 제대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31 ArcanumToss 19/10/08 6210 0
    268 기타패션의 완성은 벨트...벨트는 좋은 걸 차야죠... 18 neandertal 15/06/08 9318 0
    14935 육아/가정패밀리카에 대한 생각의 흐름(1)-국산차 중심 28 방사능홍차 24/09/21 1253 0
    8239 도서/문학패럴렐 월드 러브 스토리 (소설/스포) 알료사 18/09/17 4437 0
    14948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14 나루 24/09/28 912 17
    3745 기타팡팡 우럭따. 66 관대한 개장수 16/09/21 6461 0
    4918 IT/컴퓨터팟플레이어(카카오TV) 개편을 보고... 13 저퀴 17/02/18 4880 0
    2510 의료/건강팟캐스트에 광고 문의가 들어왔대요~!! (뭐지?!왜지?!) 40 damianhwang 16/03/31 7136 0
    3845 일상/생각팟캐스트를 하나 시작했습니다 11 Raute 16/10/07 4178 3
    8747 영화팟캐스트 영화계 1년 결산 13 구밀복검 19/01/10 4134 15
    5377 일상/생각팔짱, 그리고 멍청한 고백 이야기 10 열대어 17/04/05 3611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